[문화] "철없던 소녀의 각성 표현하려 애썼죠"..김소향의 마리 앙투아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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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고 탈 많은 공연계에서 김소향(44)은 "20년째 성실한 배우"라는 칭찬을 듣는다. 2001년 뮤지컬 '가스펠'로 데뷔해 어느덧 23년 차. 앙상블로 7년 일하며 바닥부터 입지를 다져 이제는 믿고 보는 대극장 배우 반열에 올랐다.

그가 지난 2월부터 출연 중인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1700년대 프랑스 왕비였던 실존 인물 마리 앙투아네트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 뮤지컬은 프랑스 혁명 시대를 배경으로 마리 앙투아네트와 허구의 인물 마그리드 아르노의 대립을 다룬다. 빈민가에서 태어난 마그리드는 마리를 혐오하지만, 마리에게 씌워진 누명과 소문이 거짓임을 깨달으며 변화하는 인물이다.

작가 미하엘 쿤체·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 콤비가 만든 뮤지컬은 2006년 일본에서 초연했고, 국내에선 뮤지컬 제작사 EMK가 2014년 처음 선보였다. 김소향의 마리 앙투아네트 연기는 2019년, 2021년을 거쳐 이번이 세 번째다. 공연 횟수는 지난 3월 100회를 넘겼다. 지난달 1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이제야 마리를 알 것 같다"고 했다. 공연은 26일까지 서울 구로구 디큐브링크아트센터에서 볼 수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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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앙투아네트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연기 중인 배우 김소향. 해맑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값비싼 보석을 샀다는 누명을 쓰고 각성한다.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공연계에서 성실한 배우로 유명하다.
보통 공연 끝나고 집에 가면 자정이 된다. 너무 배가 고파서 밥 조금 먹고 소화를 시켜야 하니까 앉아서 대본을 보다 자는 것 외에는 하는 게 없다. 정말 재미없게 산다. (웃음) 팬들이 17만원(VIP석 기준) 내고 뮤지컬 보러 오시는데 당연히 성실하게 해야 하지 않겠나. 
궁에서 쫓겨난 마리가 수레에서 떨어지는 장면에서 전혀 몸을 사리지 않던데.
100번 넘게 같은 역할을 한 만큼 낙법 노하우가 있다. (웃음) 마리가 오스트리아 출신인데 처음엔 아무것도 모른 채 프랑스로 시집왔다가 누명을 쓰고, 아이들을 뺏기고 결국 단두대에 오른다. 감정 변화가 중요하니까, 늘 정신을 붙들고 있으려고 한다. 몸을 던지는 장면도 당연히 계산해서 한다. 
오열하면서 노래하는데도 가사가 또렷하게 들린다.
내세울 게 그것 뿐이다. 어떤 배우는 연기가 좋고, 어떤 배우는 음역이 좋고 그런 장점이 하나씩 있지 않나. 내 장점은 '한'을 잘 표현하는 거다. 절규하면서 노래하는 것. 한 서린 감정을 드러내는 것. 이걸 잘하는 게 김소향이라고 팬들이 생각해주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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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앙투아네트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연기 중인 배우 김소향(왼쪽). 누명을 쓰고 궁에서 내쳐진 뒤 감시 받는 생활을 한다.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성대 관리가 어렵겠다. 
목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울면서 지르는 연기를 하면 목에 무리가 가는 게 정상인데 무대에선 괜찮다. 신기하게도 몸이 적응한 것 같다. 마그리드 역의 주현(옥주현)이도 "어떻게 그렇게 울면서 노래를 하냐"며 신기해한다.
세 번째 마리 연기다. 무엇이 달라졌나.
재연까지는 나를 증명하려고 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달까. 그 전까지 강한 캐릭터를 많이 했기 때문에 철없는 왕비 연기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란 시선이 있었다. 그걸 깨기 위해 노력했다. 삼연이 돼서야 조금 편해졌다. 나만의 마리를 찾았다는 느낌도 들고. 나이가 든 영향도 있을 것이다. 
'사치하다 죽은 왕비'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내용인데, 특별히 공들인 장면이 있나. 
마리가 변하는 모습, 철없는 소녀가 각성하고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모습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목걸이 사건'을 기점으로 변화가 시작되는데 이때부터는 발성이나 눈빛, 목소리가 전부 달라져야 한다. 이 변화가 설득력이 없으면 관객들이 감동하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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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앙투아네트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연기 중인 배우 김소향. 화려한 의상과 무대 장치가 눈을 즐겁게 한다.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그 변화를 표현하는 넘버가 '독사'인가. (마리는 사치스러운 목걸이를 샀다는 누명을 쓰고 있다는 걸 깨닫고 이 넘버를 부른다)
맞다. '독사'가 변화의 시작점이다. 독사 부르기 전에 옷을 갈아입는데, 그때 늘 '이제 시작이다'란 생각을 한다. 그 전까지는 해맑고 사랑스러운 느낌이라 큰 에너지가 들지 않는데, 독사를 부르면서 모았던 기를 다 분출한다. 누가 쳐들어오는 느낌으로 불러야 한다. (웃음)
가장 어려운 넘버는.
'최고의 여자'다. 루이 16세와 결혼한 마리는 남 몰래 페르젠 백작을 사랑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한 것이 '최고의 여자'인데 지르는 대목이 전혀 없다. 애매한 음역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완급 조절이 어렵다. 
대극장 뮤지컬 주인공을 맡은 지 10년이 넘었다. 못해봐서 아쉬운 캐릭터가 있나.  
어떤 캐릭터를 못해봐서 아쉽다는 마음은 없다. 다만 앞으로 창작극을 더 하고 싶다. 창작극을 할 때는 캐릭터를 만들어간다는 자부심이 있다. 극장 크기는 상관없다. 이번에 '마리 퀴리'가 런던에 가는데, 정말 내 자식 같은 느낌이다. 그런 작품을 더 하고 싶다. 못 해본 작품 중 매력 있다고 생각한 건 뮤지컬 '이프덴'과 '레드북'이다. 
인간 김소향의 꿈은.
막연한 생각이지만 글을 쓰고 싶다. 3년 전 데뷔 20주년 콘서트를 열었는데, 뉴욕에 살며 겪은 일을 글로 써서 낭독했다. 그 이야기에 공감하는 분들을 보는 게 큰 감동이었다. '와, 작가가 되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다. 지금도 가끔 '내가 쓴 작품을 좋아하는 관객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한다. 직접 글을 쓰고 그 작품에 출연도 하는 그런 날을 꿈꾼다. 재능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꼭 글을 쓰게 해 달라고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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