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그걸 신어? 용감하네"…제니퍼 로렌스에 굴욕 준 이 양말 [세계한잔]
-
9회 연결
본문
※[세계 한잔]은 우리 삶과 맞닿은 세계 곳곳의 뉴스를 에스프레소 한잔처럼, 진하게 우려내 한잔에 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용감하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보그지가 할리우드 스타 제니퍼 로렌스의 패션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매체는 그가 미국 뉴욕 거리를 산책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게재했는데, 시대에 뒤처진 옷차림으로 거리에 나선 모습을 “용감하다”고 조롱한 것이다.
보그지가 문제삼은 건 그의 양말이다. 복숭아뼈에 걸치는 짧은 길이가 문제라는 거였다. 매체는 로페즈 착용한 양말을 ‘밀레니얼 양말’이라 규정하면서 “Z세대가 나이든 세대와 미학 전쟁을 벌이는 가장 최신 아이템”이라고 전했다.
한때 ‘MZ’라는 한 단어로 통칭되던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패션 전쟁을 통해 갈라지고 있다. 특히 Z세대는 ‘밀레니얼의 모든 것’을 ‘Cheugy’(츄기, 구식의·촌스러운)로 몰아세우며 자신들을 차별화하고 있으며, 패션 업계는 Z세대의 편에 서서 이들의 패션에 ‘쿨함’을 인증해주고 있다고 뉴스위크·인디펜던트 등은 전했다.
"밀레니얼은 츄기" 저격하는 Z세대
양말에 앞서 Z세대에 저격당해 ‘츄기’로 전락한 밀레니얼 패션의 대표적인 예는 스키니진, 옆으로 쓸어넘긴 앞머리다. 해리포터에 대한 팬심은 물론, 스타벅스를 선호하고 아보카도 토스트를 즐기는 것조차 ‘밀레니얼의 촌스러움’으로 조롱 대상이 됐다.
양말에 대한 이번 논쟁은 한층 공격적이라고 인디펜던트는 평가했다. Z세대가 즐기는 소셜미디어인 틱톡에는, 발목 양말을 신은 밀레니얼에겐 ‘나이 인증’이라 폄훼하고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을 신은 밀레니얼에 대해선 ‘힙하게 보이고 싶은 몸부림’이라 놀리는 글이 가득하다고 매체는 전했다.
Z세대 틱토커들이 “공공장소에서 발목양말을 신는 건 정말 거슬리는 일”이라면서 밀레니얼 세대의 습관을 비난하고, 그들을 “절망적인 수준으로 쿨하지 못한 세대”로 치부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밀레니얼을 거부한 Z세대의 패션은 뭘까. 일단 오버사이즈를 선호한다. 상·하의 모두 낙낙한 오버핏으로 갖춰입고 앞머리는 가운데로 쓸어내린다. 신발이 운동화든 하이힐이든 (심지어 샌들이든) 되도록 정강이 절반까지 끌어올리는 긴 양말을 신는다. 이런 면에서 2024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 빨간색 긴 양말을 신고 등장한 빌리 아일리시가 Z세대 패션의 대표격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소개했다.
패션업계도 "긴양말=쿨하다" 편승
패션 업계는 밀레니얼 패션을 저격한 Z세대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럭셔리 브랜드부터 “긴 양말이 쿨하다”는 Z세대의 트렌드를 적극 반영하고 있다. 구찌는 지난 1월 밀라노 패션 위크에서 남성복 컬렉션에 블랙로퍼와 흰색 긴 양말을 매치했다. 미우미우 여성복 패션쇼에 등장한 모든 모델은 럭비 선수처럼 두꺼운 긴 양말을 착용했다. 로에베와 자끄뮈스는 50파운드(약 8만8000원)짜리 흰색 긴 양말을 출시했다.
긴 양말의 판매량도 치솟는 추세다. 미국 의류 업체 봄바스의 창립자이자 최고 브랜드 책임자인 랜디 골드버그는 긴 양말이 최근 2년새 갑작스럽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면서, 현재 봄바스의 전체 매출 5%을 긴 양말이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디다스는 지난해 긴 양말에 대한 웹 트래픽이 확연히 증가했고, 언더아머는 글로벌 시장에서 긴 양말의 판매량이 최근 30~50% 가량 늘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발목양말에서 긴 양말로 ‘유행 전환’이야 흔한 일이지만, 이번 양말 논쟁은 과한 측면이 있다고 인디펜던트는 전했다. 이에 대해 WP는 “틱톡과 같은 플랫폼이 패션을 주도하면서 생겨난 소비주의에 대한 극단화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유행의 흐름이 바뀌면, 이전의 아이템을 ‘혐오의 대상’으로 몰아가 옷장에서 완전히 방출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또 소셜미디어와 패스트패션이 결합해 유행의 흐름을 초고속으로 바꾸면서 패스트패션 회사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면서, 셰인(Shein)의 경우 2000년 100억 달러를, 2021년엔 160억 달러를 벌었다고 전했다.
양말로 인해 ‘츄기’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밀레니얼 세대의 반응은 어떨까.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한마디로 “뭐, 비웃으라지”다. Z세대가 열광하는 버킷 모자, 오버핏 카고 바지, 커다란 운동복, 쭉 뻗은 앞머리는 사실상 밀레니얼 세대가 “촌스러워서” 거부했던 90년대 패션의 부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매체에 따르면, 이들은 “우리 세대는 샌들 위에 긴 양말을 신으면 비난당했고, 아직도 그건 별로”라며 “내가 공공장소에서 발목 양말을 신고, 아보카도 토스트를 주문하는 것에 대해 ‘OK, 밀레니얼’이라고 맘껏 비웃어도 괜찮다”고 반응하고 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