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지금껏 남을 감쌌던 호른, 이제 내 이야기 마음껏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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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른은 숨 들어가는 구멍은 좁고, 음역은 넓은 악기다. 그래서 흔히 부정확하다. 하지만 호른 연주자 김홍박(42)은 청중을 안심시킨다. 오케스트라에서 안정적이고 깊은 소리로 호른의 역할을 다하기 때문이다.
호른 연주자 김홍박 인터뷰 #첫 독주 음반 내고 13일 공연
그의 경력은 한국 호른 발전사의 한 페이지와도 같다. 지휘자 정명훈에게 발탁돼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수석으로 활동했을 때 25세였다. 이어 스웨덴 왕립오페라 오케스트라를 거쳤고 런던ㆍ스톡홀름ㆍ예테보리 등의 악단에서 연주했다. 2015년에는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의 수석으로 선임됐다가 지난해 서울대학교 교수로 임용되며 귀국했다. 어려운 악기 호른으로 쓸 수 있는 최대치의 경력이라 할만하다.
“다른 악기들의 배경이 되는 악기로서 호른에 집중해왔다. 이제 독주 악기로서 호른의 가능성을 탐구하려 한다.” 지난달 말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김홍박은 호른에 대한 애정과 기대를 드러냈다. 중학교 1학년에 처음 악기를 잡아 호른과 함께 지낸 지 올해로 30년이다. 그는 이달 5일 첫 솔로 음반을 낸다. 오케스트라 주자로서 녹음한 음반은 많았지만, 피아노 한 대와 함께한 독주 녹음은 처음이다. 같은 곡으로 곧 독주회도 연다. 그는 “지금까지 가졌던 악기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는 중”이라고 했다.
- 많은 청중이 김홍박씨를 호른 연주자의 모범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악기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고요.
“네, 6월 1일과 2일이 다르고, 3일, 4일이 달라요. 다르게 연주해야 한다고 느끼고,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들죠.”
- 무엇 때문인가요?
“로베르트 슈만과 요하네스 브람스의 작품을 5월에 녹음했고 곧 연주하게 돼요. 독주 녹음은 생전 처음이었어요. 오케스트라 녹음할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통영에서 첫날 녹음하고 들어보니 너무 절제하고 위축돼 있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이튿날부터 싹 지우고 다시 녹음했어요.”
-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할 때와 많이 다른가요?
“호른은 오케스트라에서 좋은 배경이 되는 악기죠. 교향곡 작곡가들이 호른과 오보에는 길게 끄는 음들을 특히 많이 썼어요. 그 안에서 다른 악기들이 움직이게 하는 거죠. 저는 불면서 귀를 열고, 다른 악기들의 독주에 맞춰주는 역할이었죠. 부드럽고 안정되게 받쳐주는 소리를 내려고 노력해왔어요. 호른은 오케스트라의 영혼이라는 말이 좋았죠. 그런데 독주로 녹음을 해보니 제 모든 감정을 다 뿜어내는 소리를 내야겠더라고요.”
- 이번 음반에 슈만이 다른 악기를 위해 쓴 걸 호른으로 바꿔 연주한 곡들이 있죠.
“특히 감정의 변화가 많은 작곡가잖아요. 첼로·클라리넷 같은 악기들은 격정적 표현이 가능한데 호른은 호흡이 제한돼 있으니 감정도 담고 긴 호흡으로 부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한계에 계속 부딪히니까 스트레스를 받고,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느라 시간도 많이 썼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어요. 이 곡들을 쭉 연결해 녹음하고 연주하는 건 다른 악기로도 미친 짓이라고 하더라고요.”
- 오케스트라에서 안정적인 플레이어였기에 명성을 얻었는데, 이제는 그걸 뛰어넘어야 하는 거네요.
“사람의 호흡은 아주 예민하고, 호른은 그 예민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악기에요. 그래서 틀리지 않으려고 생각하면 더 틀려요. 긴장해서 호흡이 충분히 안 실리거든요. 표현에 집중하면 알맞은 호흡이 나와요. 다른 사람의 소리를 감쌀 수 있도록 부드러운 호흡을 내야지, 이 표현에 맞는 숨을 넣어야지 그렇게 생각해야 하죠. 사실 훌륭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호른이 틀리는 데 신경 안 써요.”
- 호른 독주 음반은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네요. 독주자로서 어디까지 가보고 싶나요.
“제 선생님인 라도반 블라트코비치를 비롯해 옛 시대의 데니스 브레인, 헤르만 바우만 정도가 솔리스트로 꼽히는 것 같아요. 한 너덧 명이죠. 저는 이제 첫 솔로 음반을 냈으니 호른 인생의 2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호른의 가능성을 더 많이 보여드리고 싶죠. 다음에는 20세기 이후 작곡가들이 악기의 한계를 실험한 곡들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호른은 스타 독주 악기는 아니죠. 하지만 이번 독주회에서 5명, 10명만이라도 관심을 가진다면 그 사람들하고 같이 더 나아가 보는 거죠.”
그가 녹음했고 연주하는 곡 중 브람스의 호른 3중주,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는 작곡가가 호른을 위해 쓴 음악이다. 브람스는 하나의 관에서 호흡과 오른손으로 음정을 바꾸는 내추럴 호른을, 슈만은 새로운 밸브 시스템으로 관의 길이와 음정을 자유롭게 바꾸는 개량된 호른을 이용했다.
슈만의 환상소곡집(클라리넷 또는 첼로), 세 개의 로망스(오보에)는 호른용으로 편곡해 연주한다. 어린 시절부터 성악을 하다 우연히 호른 소리에 끌려 악기를 시작한 김홍박은 “잘츠부르크 유학 시절 라도반 선생님이 한 허름한 교회에서 연주한 브람스 3중주의 첫 두 음을 잊지 못한다”며 이 작품을 이번 공연의 결정적 한 곡으로 꼽았다. 공연은 이달 13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피아니스트 박종해,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원이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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