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1400만 도쿄 움직이는 '이 사람'…&a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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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정당 추천 없이 도민 추천으로 싸워왔습니다. 보수 여러분들로부터 지원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도민 여러분, 누구든 살기 좋고 아이 키우기 쉬운 그런 도쿄를 만들어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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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도쿄도지사 선거 출구조사 발표 직후, 당선이 확실시된 고이케 유리코 현 도쿄도지사가 지지자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AP =연합뉴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71)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7일 오후 8시 출구 조사 발표 직후, ‘당선 확실’이란 소식을 접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의 답은 당선 소감과 같았다. 자민당의 정식 추천을 받지 않고, 무소속으로 ‘물밑 지원’을 받으며 보수표 집결에 성공한 고이케는 자신감에 넘쳤다.

아랍어 통역사에서 뉴스 앵커

고이케의 이력은 화려하다. 그에게 ‘스타 정치인’이란 별칭이 붙는 이유기도 하다. 여성 총리 후보군에 이름을 올릴 정도의 유명세를 탔지만 처음부터 정치인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1952년 효고현에서 태어난 고이케는 원유 거래업을 하는 부친의 조언으로 대학 시절 카이로 유학을 떠난다.

당시 흔치 않던 아랍어 통역을 맡으면서 일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카이로대 졸업은 도쿄도지사 출마 때에도 ‘학력 위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그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다니던 대학을 중퇴한 뒤 퇴로를 끊고 카이로 유학을 떠났다고 설명했다. 졸업하면 피라미드를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정작 피라미드를 오른 뒤 다급히 기모노를 입어서 옷매무새 방향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아랍 각국 왕족과 장관을 시작으로 통산성(현 경제산업성) 의뢰로 왕실 통역을 맡은 일도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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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의 아랍어 통역사 시절. 출처 고이케 유리코 홈페이지

뉴스 앵커로의 변신은 아랍어 통역이란 경력이 열어줬다. 아라파트 의장 회견을 코디하면서 인터뷰를 맡았는데 이 일을 계기로 니혼TV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TV 도쿄 초대 앵커를 맡으며 일본 최초 여성 경제 분야 앵커라는 기록을 세웠다. 고이케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일본인이 쿠웨이트에 인질로 잡혔는데, 현지 취재를 계속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이라크 측의 인질석방 교섭을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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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앵커시절 고이케 유리코의 모습. 출처 고이케 유리코 홈페이지

무소속으로 출마한 도쿄도지사

정계에 발을 내디딘 것은 1992년 그의 나이 40세의 일이다. 일본신당 소속으로 참의원(상원)에 당선, 이듬해 중의원에 도전했다. 지역구는 출신지인 효고현으로 당선됐다. 이후 환경상을 거쳐 아베 정권에서 첫 여성 방위상을 지냈다. 도쿄도지사 선거에 첫 출마한 것은 2016년의 일로 ‘도쿄 대개혁’을 앞세워 출마해 당선됐다. 도쿄올림픽 개최, 보육원(어린이집) 대기 아동 문제 해결, 보육 무상화 등의 아동정책을 펼치면서 재선에 성공했다.
비판 없는 탄탄대로만을 걸은 것은 아니다. 정치 흐름에 따라 ‘실력자’에 접근한다는 의미로 일본 정계에선 ‘정치 철새’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도쿄도지사 당선 뒤 역대 도지사들이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를 추모하는 추도식에 보내는 추도사를 거부하는 등 우익 성향을 보이고, 제2 한국학교 설립을 위한 부지 제공 약속을 백지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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