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공주 햄릿’ 된 연극배우 이봉련 “지금도 내 안의 편견 깨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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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공주 역의 배우 이봉련은 “작품을 준비하는 시간은 제 안의 편견을 발견하고 깨나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나중에 이 작품을 한 게 천운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고 했다. [연합뉴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공주로 돌아왔다. 지난 5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햄릿’(연출 부새롬)의 주인공 햄릿은 덴마크 공주다. 연인 오필리어를 남성, 호레이쇼 등 친구를 여성으로 각색했다. 배우 이봉련이 햄릿을 연기한다.

8일 기자 간담회에서 부새롬 연출은 햄릿을 여자로 바꾼 이유에 대해 “남자와 다를 바 없이 왕권을 욕망하고, 복수를 꿈꾸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성별을 넘어 단지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집중하는 것이 작품의 본질을 보여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각색을 맡은 정진새 작가는 “단순히 남자 햄릿이 여자 햄릿이 된 게 아니라 고전적인 햄릿에서 현대적인 햄릿으로 진화했다는 컨셉트를 잡고 작업을 진행했다”고 부연했다.

빌런 캐릭터도 입체적으로 변했다. 원작에서는 햄릿의 숙부 클로디어스가 왕을 죽이지만, 이번 작품에선 누가 죽였는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부 연출은 “누구도 완벽한 악인 혹은 선인일 수 없다는 지점을 부각하고 싶었다”며 “선악의 경계를 모호하게 해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돌아보도록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원작의 기독교적 세계관과 만연체 대사는 현대적으로 고쳤고, 성차별적 단어도 들어냈다.

주연 이봉련은 데뷔 20년 차 배우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응답하라 1994’ ‘일타 스캔들’ 등 히트 드라마에서 ‘씬스틸러’ 조연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 와중에도 2012~2021년 한 해도 연극 무대에 오르는 걸 거르지 않았다. 그는 연습 과정을 설명하며 “햄릿을 맡은 저조차 편견을 계속해서 깨야 했다”며 “여성 배우에게 햄릿 역할이 올 거라고 흔히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를 햄릿으로 세우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별히 공을 들인 장면으로 이봉련은 “햄릿이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을 꼽았다. 그는 “모든 비극의 시작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며 “햄릿이 아버지(선왕)를 보는데, 그게 진짜 아버지인지, 망령인지, 왕이 되고 싶은 자신의 욕망인지 모른다. 그게 비극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또 “본인이 생각하는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면서 왕권에 대한 욕심까지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인물이라는 점이 내가 연기하는 햄릿의 특징”이라며 “성별이 상관없는 햄릿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지금이니 그걸 즐겨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연극 ‘햄릿’은 국립극단의 2020년 공연 라인업에 올랐다가 코로나19로 무산됐고, 2021년에는 온라인으로 관객을 만났다. 그해 이봉련은 햄릿 역으로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여자 연기상을 받았다. 오프라인 개막은 이번이 처음. 온라인 때와 다르게 ‘물’을 활용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무대 위 커다란 사각 수조가 “죽음의 공간이자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매개체”라는 게 부 연출 설명이다. 공연은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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