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주도에서 포획한 들개. 제주=최충일 기자

전국 곳곳에 들개가 출몰해 시민을 위협하고 있다. 들개떼가 자동차를 에워싸는가 하면 산책 중인 시민을 물기도 한다. 이에 지자체는 들개와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포획에 나섰다.

9일 대구 동구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자정이 가까운 시각 대구 동구 혁신도시 한 도로에 들개 무리가 나타났다. 들개떼는 삼거리에 진입한 흰색 승용차를 순식간에 에워쌌다. 들개 대다수는 몸무게 10㎏ 이상인 중형견으로 보였다. 들개떼에 놀란 운전자는 승용차를 후진해 세웠다. 이 장면은 한밤중 개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깬 아파트 주민이 촬영한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들개 떼가 나타난 곳에서 걸어서 30초 거리에는 유치원이 있고 10분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다. 영상이 퍼지자 학부모들은 “대낮에 들개가 또 나타나 아이들을 공격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대구 동구 혁신도시에 나타난 들개 무리. [사진 TBC 캡처]

동구에는 최근 6개월 사이 혁신도시 일대뿐만 아니라 공산동·도평동·방촌동 등 전역에 들개가 활보한다는 목격담이 이어졌다. 들개 무리가 방촌동 농가를 습격해 닭 20여 마리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동구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6월까지 접수된 들개 관련 민원만 30건 이상이다.

이에 동구는 대구시 9개 구·군 최초로 9000만원을 확보해 들개 포획과 구조에 나섰다. 지난 8일부터 다음 달까지 2개월간 ‘2024년 유기동물보호사업’을 진행해 50여 마리를 포획할 계획이다. 또 지역에 들개 출몰을 알리는 현수막 10개를 걸고, 들개 출몰 주요 지점인 혁신도시 일대에 포획틀 6개를 설치했다. 들개 포획에는 수의사 등으로 구성된 유기동물보호센터 소속 들개 전문 포획단이 나선다. 들개 포획 시 마리당 30만원, 포획 출장비는 하루 15만원 지급된다. 포획한 들개는 유기동물 보호센터로 인계된다.

대구뿐 아니라 다른 지역도 들개 출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인천에서도 들개 무리가 농장을 습격해 가축 20여 마리를 물어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9일 새벽 서구 공촌동 농장에서 우리 안에 있던 염소 2마리와 병아리 20마리가 떼죽음을 당해 농장주가 폐쇄회로TV(CCTV)를 확인해보니 들개떼가 이빨로 철망을 뚫고 구멍을 낸 뒤 침입했다고 한다.

서구에 따르면 올 1~5월까지 포획한 들개는 50마리다. 올 상반기 구에 접수된 들개 관련 민원은 이미 100건을 넘은 상황이어서, 서구는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2000만원을 추가 확보해 올해 총 4000만원을 들개를 소탕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인천 서구가 포획한 들개. [사진 인천시 서구]

최근 경북 북부 지역에도 야산과 주택가에 야생화된 들개가 자주 출몰하며 주민들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봉화·영주소방서 등에 따르면 지난 5~6월 봉화소방서에 접수된 야생 들개 출몰 신고는 총 11건이다. 이 중 5건은 포획했지만 6건은 들개가 야산으로 도주해 포획에 실패했다. 지난 1월 부산의 한 도심 공원에서도 산책하던 시민이 들개에게 얼굴이 물려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소백산 자락에서는 지난해 겨울부터 들개 4~7마리가 출몰하면서 이들에게 물려 죽은 노루와 고라니 사채 10여 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동물보호단체 등에 따르면 들개 출몰이 잦은 것은 반려견 증가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유기된 반려견이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본성을 회복해 무리지어 다니는 들개떼가 된다"라며 "반려견을 함부로 버리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소방당국은 들개 피해 방지를 위해서는 거주지 주변에 음식물 쓰레기 투기를 금지하고, 어두운 시간에 반려견을 동반한 산책을 자제해야 한다. 들개를 만나면 최대한 침착하게 자리에서 벗어나야 하고, 공격을 당하면 얼굴과 목을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 만약 물렸다면 즉시 119에 신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