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끝까지 함께 못해서 미안해…이선균 그 대사 편집 고민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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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선균(오른쪽)이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서 처음 선보인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가 12일 개봉한다. 사진 왼쪽은 극중 중학생 딸 역할의 배우 김수안. 사진 CJ ENM

“지난주 금요일까지 영화 후반작업을 했는데, 편집하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끝까지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밖에 없었어요. 그게 형을 위하는 길이니까요.”

12일 개봉 영화 ‘탈출’ #이선균 마지막 칸 초청작 #감독 “잘해야겠다는 마음뿐 #그게 형을 위하는 길이니까"

1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태곤(44) 감독의 목소리는 고(故) 이선균을 떠올리는 대목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김 감독이 공동각본·연출을 겸한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 12일 개봉)는 이선균의 유작이 됐다. 그의 또 다른 유작 ‘행복의 나라’는 다음달 14일 개봉한다.
‘탈출’은 올 여름 한국영화 중 최대 규모(순제작비 185억원)다. ‘신과함께’·‘더 문’의 김용화 감독이 시각특수효과(VFX) 전문회사 덱스터스튜디오를 통해 제작 및 공동각본에 참여했다.

"술잔 기울이며 촬영 얘기, 기억 선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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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공동 각본 및 연출을 맡은 김태곤 감독을 10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인터뷰했다. 사진 CJ ENM

영화는 짙은 안개 속 붕괴 위기의 인천 공항대교에서 차량 100중 추돌이 벌어지고, 통제 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이 풀려나며 벌어지는 생존자들의 사투를 그렸다. 이선균이 유학을 떠나는 중학생 딸 경민(김수안)과 함께 공항으로 향하던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 정원 역을 맡았다. 지난해 제76회 칸 국제영화제에 이선균의 또 다른 주연작 ‘잠’(2023)과 나란히 초청돼 상영 후 4분간 기립박수를 받았지만 현지 평가는 엇갈렸다. 지난해 말 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며 개봉이 불투명해졌다가, 올 여름 관객과 만나게 됐다.
전날 언론시사 후 간담회에서 김 감독은 “선균 형이 이 자리에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영화 준비할 때는 물론 촬영 현장에서도 제가 놓친 부분들, 동선이나 캐릭터 감정까지 선균 형과 논의하며 영화의 전체적인 답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카페에서 따로 만난 그는 “촬영 당시 팬데믹 기간이라 방에서 술 한 잔 하면서 얘기를 많이 나눴다”면서 “칸 영화제 첫 상영 때 관객 반응이 좋아서 저희끼리 자축했던 기억이 난다”고 돌이켰다.

안개·100중추돌·군용 실험견…3겹 재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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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에서 사고에 휘말린 정원(이선균, 맨오른쪽)은 렉카 기사(주지훈, 맨 왼쪽), 프로골퍼와 매니저 자매(박주현‧박희곤), 치매 노부부(예수정‧문성근) 등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사투를 겪으며 변화한다. 사진 CJ ENM

긴박하게 물량 공세를 쏟아내는 초반부 스케일은 압도적이다. 인천국제공항과 송도국제도시를 잇는 12.3㎞의 왕복 6차선 교량을 1300여평 촬영 스튜디오에 세트로 지어 300대 이상 차량을 동원했다. VFX로 만든 11마리 군견의 정교한 구현을 위해 무술팀이 수개월 간 개의 움직임과 사족 보행을 마스터해 CG용 블루 수트를 입고 배우‧카메라와 동선을 맞췄다.
하지만 중반 이후 전개 및 인물 사연이 다소 답답하게 느껴진다. 칸 현지 외신에서도 “‘괴물’ ‘부산행’ ‘해운대’ 같은 재난영화의 나쁜 복제판”(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비 오는 일요일에 보기엔 괜찮은 작품”(버라이어티) 등 평가가 나왔다. 군견 컴퓨터그래픽(CG)도 아쉽다는 반응이었다.

칸서 엇갈린 평가, 상영시간 줄이고 추가 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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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안개주의보가 발현된 공항대교를 배경으로 작품 전체 분량의 90%에 달하는 장면에 짙은 안개 효과를 구현했다. 홍경표 촬영감독은 한 공간에서,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의 특성에 맞춰 일정한 라이팅을 주기 위해 세트장 천장 곳곳에 거대한 라이트를 설치하고, 영화 속 시간의 흐름에 맞춰 색의 변화와 빛의 세기를 미세하게 컨트롤해 사실감을 불어넣었다. 여기에 매 장면마다 스모그의 농도를 섬세하게 조절했다. 사진 CJ ENM

이같은 지적을 감안해 김 감독은 후반 작업을 추가로 진행해 완성도를 높였다고 했다. “개가 착지할 때 근육‧털 움직임에 사실적인 무게감을 주기 위해 추가 CG 작업을 했다”면서 "상영시간을 줄이고 음악 등 감정 과잉된 부분도 완화했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재난 상황을 견인하는 이선균의 연기는 안정감이 느껴진다. 영화 ‘킹메이커’의 정치 모사꾼, ‘끝까지 간다’의 질주하는 부패 형사, '기생충'의 이기적인 사장 등 전작의 캐릭터들이 연상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쓸쓸한 얼굴, '하얀 거탑'의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면모도 스쳐 지나간다.
영화 ‘1999, 면회’(2013), ‘굿바이 싱글’(2016) 등 코믹한 작품을 해온 김 감독은 ‘탈출’에서 "일상적 공간이 이상한 요소로 인해 위협적으로 변질했을 때 그 안의 현실적인 인간 군상을 그리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선균을 캐스팅한 이유로는 '넓은 스펙트럼'을 꼽았다. “(이선균이) 재난영화를 한번도 안해서 오히려 신선했다”고 했다.

아들 둘 이선균 덕에 ‘현실 아버지’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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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이선균의 첫 재난영화다. 김태곤 감독은 배우로서 스펙트럼 넓은 이선균이 재난물을 안 해봤다는 게 오히려 신선했다고 돌아봤다. 사진 CJ ENM

드라마의 주축은 정원과 경민의 부녀 관계다. 정원은 자신이 모시는 국가안보실장(김태우)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권력지향형 야심가다. 동화작가 아내와 사별한 뒤 그가 홀로 키운 딸은 그런 아빠가 실망스럽다. 재난 현장에서도 '정무적 거짓말'을 일삼고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지나치려는 아빠를 질책한다.
7살 딸이 있는 김 감독은 시나리오를 준비할 때만 해도 자식이 없어 정원을 '전형적으로 따뜻한 아버지'로 그렸다고 한다. 10대의 두 아들을 둔 이선균이 정원 캐릭터에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김 감독은 “선균 형이 ‘츤데레’(보이지 않게 챙겨주는 것을 뜻하는 일본 속어) 같다. 자식들한테도 그런 듯하다. 그런 면모를 정원에게 투영했다”고 했다.

"끝까지 함께 못해서 미안해" 이선균 그 대사 

절체절명의 순간, 정원이 아내가 남긴 동화책을 읽으며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아내의 메시지를 읽는 대목은 실제 이선균의 부재를 떠올리게 한다. 김 감독은 "관객에게 부담스럽게 다가갈 수 있어 편집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남겨 뒀다"고 말했다. “영화 외적인 부분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없고, 선균 형에 대한 생각도 각자 다를 것 같다. 원래 계획대로 영화를 완성하는 게 소임이고 책임이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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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에서 이선균이 연기한 주인공 정원이 폐허 속에 홀로 서있는 모습이다. 사진 CJ ENM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가 7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이제훈‧구교환 주연 영화 ‘탈주’와 1‧2위를 다투는 극장가에 ‘탈출’이 가세하며 경쟁이 더욱 달아오를 전망이다. '탈출'은 칸 영화제 초청 당시 프랑스·미국·독일·스페인·이탈리아·홍콩·일본 등 전 세계 140개국에 판매됐다. 손익분기점 400만명 달성이 목표다.
김 감독은 “여름에 잘 어울리는 영화다. 긴장감과 영화적 체험, 속도감을 극장에서 느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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