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구명 통했다" "부풀려서 얘기"…의혹설 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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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고(故) 채 상병의 안장식이 지난해 국립대전현충원 장병묘역에서 엄수됐다. 안장식에서 채 상병의 어머니가 아들의 영정을 어루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은 도이치모터스 사건에서 김건희 여사 계좌를 관리한 블랙펄인베스트 대표 이모씨를 통해 구명 로비를 벌였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임 전 사단장이 채 상병 사망에 책임이 있다는 해병대 조사 결과에 왜 격노했을까.

고(故) 채수근 해병대 상병의 순직 1주기가 오는 19일로 다가왔지만 ‘수사 외압 의혹’의 실체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핵심인 VIP 격노설, 임성근 로비설은 당사자의 주장이 엇갈린다. 며칠 전엔 이씨가 “내가 VIP에게 얘기할테니 절대 사표 내지 말라”고 말하는 구명 정황이 담긴 통화 녹음이 공개됐지만 이씨는 “부풀려서 얘기한 것”이라며 부인했다.

장관 결재했는데…하루 만에 바뀌었다

지난해 폭우로 인한 경북 예천군 실종자 수색 작전에 나섰던 채 상병이 내성천 급류에 휩쓸렸다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건 지난해 7월 19일이다. 박정훈 대령이 이끌었던 해병대수사단은 이튿날 곧바로 조사에 착수해 관련자와 관련 부대를 조사했다. 채 상병이 왜 불어난 강물에 입수해야 했는지, 지휘관과 현장 간부들의 과실은 없었는지가 쟁점이었다.

열흘간의 조사를 마친 수사단은 임 전 사단장 등 8명에게 혐의가 있다고 봤다. 그리고 이들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하겠다”고 최종 결재권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했다. 이 전 장관은 별다른 수정 요구 없이 결재를 마쳤다. 이때가 지난해 7월 30일 오후 4시 30분쯤이다. 남은 절차는 두 가지였다. 국회에 채 상병 사망 경위를 보고하는 것, 그리고 경찰에 사건을 이첩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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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전 국방부장관. 뉴스1

이첩보류, 사건회수, 항명 수괴…VIP 관여설

그런데 다음 날인 7월 31일, 통상적으로 진행되던 사건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계획된 언론 브리핑은 취소됐고, 경찰로의 사건 이첩도 보류됐다. 이유가 무엇일까. 박정훈 대령 측은 그 진원지를 이날 오전 11시쯤 열린 윤 대통령 주재 외교‧안보 분야 수석보좌관 회의로 꼽았다. 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고 질책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실제로 이런 말을 했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 다만 수석보좌관회의가 끝날 쯤인 오전 11시 54분 이종섭 전 장관은 대통령실이 사용하는 ‘02-800’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아 2분 48초간 통화한다. 그 직후 본인의 비서 역할을 한 박진희 당시 군사보좌관의 전화로 김계환 사령관에게 전화를 건다. 경찰 이첩을 보류하고 언론 브리핑을 취소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통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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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지난 3월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3차 공판에 출석하기 전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이틀 뒤인 8월 1일, 박 대령은 윗선의 ‘수사 개입’을 의심하고 대응했다. 군검찰 수사기록 등에 따르면, 이날 유 관리관은 박 대령에게 전화해 “혐의 사실을 특정하지 않고 기록만 넘기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 대령은 이에 대해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고 답했다.

박 대령과 해병대수사단은 이튿날인 8월 2일 오전 10시 30분쯤 경북경찰청에 사건 이첩을 강행한다. “이첩을 중단하라”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지시도 통하지 않았다. 이첩이 끝난 직후 박 대령은 김 사령관으로부터 “지금부터 보직해임”이라는 통보를 받는다. 국방부 검찰단은 이날 저녁 경북경찰청에서 사건을 회수해 온다. 그리고 8월 24일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기록을 재검토한 국방부 조사본부는 임 전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고 경북경찰청에 사건을 재이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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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왼쪽)과 대화하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임 전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려고 대통령실이 관여했다는 의심은 현재진행형이다. 주요 국면마다 대통령‧대통령실‧국방부 관계자 사이 통화 내역으로 이 의혹은 증폭됐다. 사건 이첩 보류 지시 직전(7월 31일 오전 11시 54분, 대통령실 일반전화→이 전 장관), 박 대령의 보직해임 직전(8월 2일 낮 12시 43분, 윤 대통령 개인 휴대전화→이 전 장관)에도 통화는 계속됐다.

특히 경북청에서 사건 기록이 회수된 8월 2일 윤 대통령이 바쁘게 움직였다. 윤 대통령은 순차적으로 국방장관→국방비서관→국방차관에게 개인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이날은 온열 환자가 대규모 발생한 새만금 잼버리 대회 개영식 날이자 대통령의 여름휴가 첫날이었다.

박 대령 측은 이 통화를 근거로 “대통령실의 개입과 압력이 있었던 것 같다”고 주장한다. 유재은 관리관이 지난달 채상병 특검법안 입법청문회에서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이 (8월 2일 통화에서) ‘경북경찰청에서 저에게 전화가 올 것’이라고 말해줬다”고 진술한 것이 대표적이다. 임 전 비서관이 기록 회수에 관여했을 거란 의미다.

임성근과 도이치모터스, 그리고 통화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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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수사 외압 의혹의 마지막 퍼즐은 임 전 사단장이다. 구명 로비 의혹의 ‘동아줄’로 지목된 건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인 이모씨다. 이씨는 해병 출신 카카오톡 단체대화방 ‘멋쟁해병’ 멤버이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공익신고자 A 변호사와 통화 녹음 파일이 잇따라 공개되며 로비 당사자란 의혹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8월 9일엔 임 전 사단장과 관련해 “VIP에게 얘기할테니 절대 사표 내지 마라(고 했다)”, 올해 3월 4일 통화에선 “쓸데없이 내가 거기에 개입이 돼서. 사표 낸다고 할 때 내라고 그럴 걸”이라고 말한다. 임 전 사단장을 “성근이”라고 지칭하는 등 친분을 의심케 하는 대목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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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한 채 상병의 직속 상관이었던 이용민 전 해병대 1사단 포병여단 포병7대대장(중령)이 지난달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채수근 상병의 묘역에 참배했다. 사진은 이 대대장이 작성한 방명록. 뉴스1

이씨는 11일 중앙일보에 “VIP 언급 등은 내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부풀려 말한 것”이라며 “실제 구명 로비는 없었고, 임 전 사단장과 일면식도 없어 구명할 사이도 아니다”고 말했다.

임 전 사단장은 “누군가에 의해 임성근 구명 로비가 있었다면 늦어도 이 전 장관이 결재를 번복한 시점(지난해 7월 31일) 이전에 이뤄졌어야 한다”며 통화가 이뤄진 지난해 8월 9일은 구명 로비가 불가능했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관련자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채상병 1주기인 19일 국회에서 열리는 윤 대통령 탄핵 청원에 대한 청문회에 임성근 전 사단장과 김계환 사령관, 이종섭 전 장관도 증인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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