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비디오 시대의 렘브란트’…‘백남준의 조수’ 빌 비올라 영면, 7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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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서울에서 만난 빌 비올라는 "인생은 강과도 같기에 크든 작든 뭔가를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탄생은 시작이 아니며, 죽음이 끝도 아닙니다.”

‘비디오 시대의 렘브란트’ 빌 비올라는 생전에 장자의 이 말을 자주 인용했다. 탄생과 죽음, 삶의 이면을 비디오로 그려온 ‘영상 시인’, 빌 비올라가 12일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의 자택에서 영면했다. 73세. 그의 아내이자 스튜디오 디렉터인 키라 페로프는 사인을 “조기 발병한 알츠하이머의 합병증”이라고 밝혔다.

비올라는 1974년 백남준이 뉴욕주 시러큐스의 에버슨 미술관 전관에서 ‘TV부처’‘TV정원’을 선보일 때 조수로 일했다. 백남준이 비디오라는 새로운 매체가 우리를 즐겁게 해 주고 예술적 영감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줬다면, 비올라는 비디오를 통해 미술에 시간성을 부여하며 삶과 죽음 같은 근원적 질문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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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비올라 '순교자들' 중 '물' [사진 부산시립미술관]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했고,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순교자들’(2014)과 ‘마리아’(2016)를 영구 설치했다. 거꾸로 매달린 채 물ㆍ불ㆍ모래ㆍ바람을 사정없이 맞으며 조용히 견디는 사람의 모습을 느린 화면으로 보여준 그의 영상에서 르네상스ㆍ바로크 종교화가 줄 법한 감동을 맛본 이들은 비올라를 ‘하이테크 카라바조’라고도 평가했다. 2019년 런던 왕립 아카데미는 미켈란젤로의 작품들과 함께 그의 영상을 전시했다.

시작은 6살 때 호수에서 익사할 뻔한 경험. 삼촌에게 구조되기 전까지 수면 아래에서 본 세상이 가장 아름다웠노라고, "인생에는 보이는 것 외에 무언가가 더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그는 돌아봤다. 그의 영상 속 인물들이 쏟아지는 물이나 수막을 통과하면서 내면의 변화를 느끼는 것과도 겹쳐진다.

2011년 서울에서 만난 그는 “고통을 삶의 필수 요건으로 긍정하고, 인내에서 희망을 찾는다”고 했다.

“인생은 강과도 같습니다. 작은 개울에서 시작해 여러 물줄기와 이어지고, 때론 폭포도 되죠. 인류는 이 물줄기에 들어왔다가 언젠가는 사라져요. 그러니 크든 작든 뭔가를 남겨야 합니다. 예술도 기술도 그래서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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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비올라 '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 중 '행로' [사진 부산시립미술관]

2020년 부산시립미술관 개인전에서는 사람들이 줄지어 숲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 설치 '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가 소개됐다. 영상 속 사람들처럼, 그도 이렇게 피안으로 떠났을까. 오는 11월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그의 전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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