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수분 도울 벌 없다고?’ 닭의장풀은 다 계획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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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점점 더워집니다. 그나마 한 번씩 비가 내리면 잠깐 더위를 식힐 수 있어서 한숨 돌리곤 하죠. 비가 그치면 주변 공원이나 뒷산에 산책을 한번 가보세요. 참나리나 능소화처럼 강렬한 색으로 꽃을 피우고 있는 것들도 있고, 진한 초록으로 이파리 색을 만들어가는 나무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길가 옆이나 밭, 산비탈, 하천 근처 등 습한 곳에 보면 뾰족뾰족 잎을 달고 자라는 식물을 하나 만날 수 있습니다. 닭의장풀입니다. 작지만 아주 선명하게 파란색 꽃잎을 두 장 달고 있는 모습이 예뻐서 한참 쳐다보다가 가게 되는데요. 이번에는 작지만 신기한 삶을 사는 닭의장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닭의장풀은 초등학교 자연 시간에 현미경으로 기공세포를 관찰하기 위해 준비해야 했던 것 중의 하나였어요. 그래서 어린이들도 이름을 알고 있지요. ‘달개비’라고도 하고 ‘닭의밑씻개’라고도 합니다. 닭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닭장 근처에 잘 자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고, 꽃잎이 닭 볏을 닮아서 그렇다고도 합니다. 닭의 장은 닭의 내장을 말하는 거라고도 하는데, 닭의 장은 길고 가늘어 닭의장풀을 보면 그 닭의 장이 연상돼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죠. 그래도 정확한 것은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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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52 닭의장풀

자연에서는 파란색 꽃을 보기가 힘들기 때문에 닭의장풀 꽃을 한번 보면 기억에 오래 남지요. 아이들은 두 장의  꽃잎이 마치 귀 같아서 ‘미키마우스’풀이라고도 부릅니다. 실제로 꽃잎은 반투명하게 한 장 더 있는데요. 그것은 눈에 띄는 용도보다는 암술과 수술을 잘 고정하기 위한 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닭의장풀의 학명은 ‘commelina communis’인데요. 꽃잎의 모양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 합니다. 17세기 네덜란드에는 ‘commelin’이란 이름의 학자가 3명이 있었는데 그중 두 명은 활발한 활동을 했고 나머지 한 명은 별다른 업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닭의장풀의 꽃잎이 두 장은 눈에 띄지만 하나는 작고 눈에 잘 띄지 않으니 린네가 나름의 유머감각을 발휘해서 학명을 정했다고 하는데요. 나머지 한 사람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거 같네요.
닭의장풀의 암술은 한 개이고 수술은 6개인데요. 수술 모양이 제각각입니다. Y자 모양의 꽃밥 모양을 한 게 1개 있고, X자 모양의 꽃밥 모양을 한 게 3개 있습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꽃가루가 들어있는 타원형 꽃밥을 달고 있는 수술이 2개 있죠. 모두 6개인데, 정상적인 꽃밥을 달고 있는 것 외에는 모두 꽃가루가 거의 없는 헛수술입니다. 헛수술은 좀 더 색이 밝은데 아마도 벌이나 등에 등 곤충을 유인하는 데 사용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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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52 닭의장풀

닭의장풀은 나팔꽃처럼 아침에 피었다가 오후에 시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어로는 ‘common dayflower’라고 부르고, 일본에서는 ‘이슬 풀’(쯔유쿠사·露草)이라고 부릅니다. 하루 동안 피어있을 때 곤충이 와서 꽃가루받이를 하게 되면 그대로 열매를 맺겠지만 만약 비가 오거나 곤충이 오지 않아서 꽃가루받이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죠. 닭의장풀은 그럴 때 제꽃가루받이를 합니다. 헛수술 말고 진짜 꽃밥을 지닌 두 개의 수술이 암술을 감싸듯 길게 나와 꽃가루를 수분하는 거예요.
게다가 닭의장풀은 씨앗을 만들지 않고도 덩굴식물처럼 뻗어 나가면서 개체를 늘려갑니다. 주변 상황에 따라 위로도 자라고 옆으로도 자라는데, 옆으로 비스듬히 나와 바닥을 기는줄기에서 마디 부분이 흙에 닿거나 물에 담그면 금세 뿌리를 내리죠. 이런 작전 저런 작전 다 사용하는 생존력이 강한 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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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52 닭의장풀

사실 이런 작전을 쓰는 풀들은 닭의장풀 외에도 생각보다 많아요. 나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고 약하다 보니 다양한 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죠. 우리도 어떤 일을 계획할 때 하나에 모든 것을 다 걸기보다는 안 될 경우를 상정해 다른 대안을 준비하는 게 더 안전하고 좋다고 생각하곤 해요.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겠지만, 하나의 일에 너무 모든 것을 걸면 그만큼 실망도 클 수 있기 때문이죠. 요즘처럼 하루하루 변화가 많은 시대에서는 더욱더 대안을 준비하는 삶이 필요할 듯합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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