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실크로드로 동서양 교류 이끈 '누에'는 어떻게 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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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과 중국의 서쪽에 있던 여러 나라를 이어 무역과 더불어 정치·경제·문화 등을 교류하게 해준 교통로를 실크 로드(Silk Road)라고 하죠. 실크로드는 중국에서 시작해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북 가장자리를 따라 파미르 고원, 중앙아시아 초원, 이란 고원을 지나 지중해 동안과 북안까지 이르는 길이에요. 험준한 산과 광활한 사막을 가로질러 상인들이 운반했던 다양한 품목 중에서도 실크, 즉 비단은 중요한 품목 중 하나였어요.

비단은 명주실로 짠 광택이 나는 피륙을 뜻해요. 가볍고 빛깔이 우아하며 촉감이 부드럽기 때문에, 근대에 화학적 공정에 의하여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합성섬유가 발달하기 전까지 매우 인기 있던 고급 의복 소재였죠. 비단을 만드는 명주실은 누에나방의 애벌레인 누에의 고치에서 뽑은 가늘고 고운 실입니다. 최대한 많은 명주실을 얻기 위해 인간이 누에를 대량으로 사육해 고치를 생산하는 일을 양잠(養蠶), 즉 누에치기라 한답니다. 많은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비단은 가격이 비싸 주로 왕족·귀족 등 상류층이 비단옷을 입었죠. 1980년대까지 번성했던 양잠 산업은 합성섬유가 대중화되면서 가격 경쟁력을 상실했어요. 하지만 인위적인 화학 물질을 사용하지 않은 섬유라는 점에서 여전히 수요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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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는 누에나방의 애벌레로, 비단을 짜는 재료인 명주실을 만든다. 인간은 명주실을 얻기 위해 수천 년 전부터 누에를 사육했는데, 이를 양잠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누에가 알에서 깨어나 고치를 만들기까지 약 40일 정도 소요돼 양잠 농가에서는 5월에 봄누에, 6~7월에 여름누에, 8~9월에 가을누에를 길러 실을 뽑아요. 대체 누에는 어떤 원리로 실을 만드는 걸까요. 또 사람은 누에가 만든 실을 어떤 과정을 거쳐 이용하는 걸까요. 누에와 명주실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변우빈·최은서 학생기자가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 누에생태체험장을 찾아 남명진 강사를 만났습니다.

누에란 누에나방의 애벌레를 뜻해요. 누에나방의 삶은 알→1령누에→2령누에→3령누에→4령누에→5령누에→익은누에→고치짓기→번데기→나방 단계→알 낳기의 11단계로 구분할 수 있죠. 누에의 먹이인 뽕잎이 자라는 뽕나무가 많은 노을공원에 있는 누에생태체험장에서는 5~10월 동안 1~5령누에, 누에고치, 누에나방 성충을 시민이 볼 수 있도록 사육하고 있어요. 남 강사가 우빈·은서 학생기자를 알 부화기 앞으로 이끌었죠. "부화기 안에 누에나방의 알을 넣고 온도는 26.5℃, 습도는 70% 이상을 유지하면 약 9일 정도 뒤에 1령누에가 알을 깨고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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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령누에가 먹은 뽕잎(오른쪽)과 4~5령누에가 먹은 뽕잎(왼쪽). 1령누에는 잎맥을 먹기에는 너무 어리기 때문에 뽕잎의 작고 연한 부분이나 즙을 빨아 먹는다. 4~5령누에는 잎맥이나 거친 부분도 먹을 수 있을 만큼 성장한 상태이기 때문에 뽕잎의 모든 부위를 먹는다.

부화기 옆에는 좁쌀만 한 크기의 흰색 껍데기가 있었어요. 1령누에가 깨고 나온 알의 껍데기죠. 그 옆으로 1령누에가 뽕잎 위에 있었는데, 너무 작아서 형태가 눈으로 잘 보이지 않았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현미경을 이용해 1령누에를 확대해 보니 몸에 털이 부숭부숭한 애벌레 모양이었죠. 1령누에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뽕잎의 잎맥은 갉아먹지 못하고 뽕잎에서 작고 연한 부분이나 즙을 빨아 먹죠. 남 강사가 보여준 1령누에 옆에 있는 뽕잎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잎맥만 남아 있었죠.

1령누에는 태어난 뒤 4일부터는 허물을 벗기 위한 잠을 자고, 약 5일째부터 2령누에가 됩니다. 2령누에는 1령과는 다르게 몸에 털이 사라지고, 먹이도 얇은 잎맥 정도는 먹을 수 있죠. 태어난 지 7일째까지 뽕잎을 먹던 2령누에는 8일째에 허물을 벗기 위한 잠을 자고, 9일째부터 3령누에가 돼요. 3령부터는 매우 활동적이어서 관찰하기에 용이하죠. 누에생태체험장에는 1령부터 5령까지 모든 성장단계의 누에가 뽕잎이 담긴 바구니에 놓여 있었어요. 1령·2령에 비해 3령누에는 확실히 움직임이 많아 관찰이 용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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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 학생기자단이 남명진(맨 왼쪽) 강사와 함께 누에의 일생과 실을 뽑는 원리를 알아봤다. 남 강사가 부화기에서 깨어난 1령누에에 관해 설명했다.

꼬물거리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3령누에를 보던 우빈 학생기자가 "누에가 좋아하는 환경이 궁금해요"라고 말했어요.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누에도 성장에 적합한 고유의 환경조건이 있어요. 령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지만 고온다습한 조건이 좋죠. 1령의 경우 26~27℃, 상대습도 90%가 좋은데, 2령·3령 등 다음 령으로 올라갈수록 온도는 1℃, 습도는 5%씩 낮춰서 사육하는 게 좋아요."

태어난 지 약 13일 정도 되는 4령누에부터는 맨눈으로 머리·숨구멍·가슴다리·배다리·꼬리발·꼬리뿔 등 누에의 몸 기관을 부위별로 자세히 관찰할 수 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4령누에를 직접 손바닥 위에 놓고 만져봤습니다. "몸통의 촉감이 되게 부드러워요."(변) "제 손바닥 위에서 기어 다니는 누에의 촉감이 낙지 빨판 같아요."(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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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의 일생과 이들이 만든 실로 어떻게 비단을 직조하는지까지 알아본 최은서(왼쪽)·변우빈 학생기자. 누에는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 탄생의 주역이기도 하다.

체험관에는 흔히 누에 하면 떠오르는 온몸이 하얀 흰누에 외에 몸에 줄무늬가 있는 호랑누에도 있었어요. 누에는 몸 표면의 무늬에 따라 종류를 구분할 수 있죠. 예를 들어 몸에 아무 무늬도 없으면 흰누에, 몸에 줄무늬가 있으면 호랑누에, 몸에 갈색 반달 무늬가 있으면 얼룩말누에예요. 우리나라 양잠 농가에서는 흰누에를 많이 기르죠. 누에는 종류에 따라 고치의 색깔이 다른 경우도 있어요. 흰누에는 흰색 실을, 호랑누에는 노란색 실을 만들어요. 남 강사는 "누에에게 염료를 넣은 사료를 먹이면 다양한 색 실을 뽑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죠.

태어난 지 19~25일 사이에 해당하는 5령누에는 1령과 비교했을 때 몸길이는 약 30배 정도 커지고, 몸무게는 약 1만 배 정도 증가한 상태예요. 그만큼 먹는 양도 많죠. 1~5령 사이 누에가 먹는 뽕잎의 양 중 약 80~90%가 5령기에 먹는 양이랍니다. "누에를 많이 기르는 양잠 농가에 가면 5령누에가 '서걱서걱' 뽕잎을 먹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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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의 먹이는 뽕나무의 잎이다. 누에가 뽕잎을 가장 많이 먹는 시기는 5령기로, 이때 먹는 뽕잎이 1~5령 동안 먹는 양의 약 80%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렇게 뽕잎만 먹는 누에가 어떻게 실을 만드는 걸까요. 누에는 태어난 지 26일 정도가 되면 뽕잎을 더 이상 먹지 않고, 머리를 흔들어 대면서 고치를 지을 장소를 찾기 위해 계속 돌아다녀요. 이 상태를 익은누에라고 해요. 누에생태체험관의 벽에도 고치를 지을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 누에가 여럿 있었죠.

누에는 몸에는 견사샘(실샘)이라는 기관이 있어요. 익은누에의 몸속 견사샘에는 액체가 가득 차게 되는데, 집을 짓기 위한 장소를 찾으면 견사샘 속 액체를 실을 토하는 관을 통해 뱉어내요. 이 액체는 공기와 만나 굳어지면서 실의 형태가 되고, 이를 이용해 누에는 고치를 짓죠. 누에가 토해내는 비단실의 굵기는 0.02mm 정도이며, 1분에 20cm 정도의 실을 만들 수 있어요. 누에 한 마리가 토하는 실의 길이는 1500~1700m 정도에 달하죠. 고치만들기 3일 차 정도가 되면 속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고, 4일 차가 되면 고치가 딱딱하게 완성돼요. 몸속에서 액체를 계속 토하면서 실을 만들기 때문에 고치가 커질수록 누에의 몸집은 계속 작아지죠.

누에를 관찰할 때 고치를 짓고 있는 누에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돼요. 만약 짓고 있는 고치의 형태를 손으로 망가뜨리면 누에는 죽게 됩니다. 고치가 딱딱해질 때까지 절대 손을 대지 말고 눈으로만 관찰하는 게 좋아요. 완전히 딱딱해진 고치를 조심스럽게 만져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촉감이 부직포 같다고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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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는 생후 26일 정도가 되면 몸속 실샘에서 액체를 뿜어내는데, 이 액체가 공기와 만나면서 실이 된다. 누에는 실을 사용해 자신을 보호할 고치를 만든다.

누에가 실을 토해 고치를 만드는 이유는 허물을 벗기 위한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예요. 고치 안에서 허물벗기를 끝낸 누에는 번데기가 되는 과정을 거쳐 나방이 되어 고치를 뚫고 나오죠. 나방은 짝짓기한 뒤 알을 낳고, 그 알에서 다시 1령누에가 탄생한답니다. 참고로 번데기 상태의 누에를 가공하면 우리가 먹는 번데기 통조림이 돼요.

비단을 제작하는 명주실을 만들려면 누에고치에 감긴 실을 풀어서 물레로 감아 실타래를 만들어야 해요. 남 강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을 미지근한 물이 담긴 그릇과 물레 앞으로 이끌었죠. "미지근한 물에 누에고치를 넣으면 칭칭 감겨있던 실이 풀려요. 그러면 실의 끝부분을 핀셋으로 집어서 물레의 고리에 감고, 물레를 돌리면 누에고치의 명주실이 풀리죠." 우빈·은서 학생기자가 남 강사의 지도에 따라 누에고치에 감겨있던 명주실을 물레에 감아봤습니다.

물레에 감긴 실은 매우 부드럽고 질겼어요. 남 강사가 "요즘 우리는 합성섬유를 많이 소비하죠. 양잠으로 생산한 명주실은 뽕잎을 먹은 누에가 만든 실이기 때문에 친환경적이고, 인간의 피부에도 합성섬유와 비교했을 때 자극이 거의 없어요"라고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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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고치는 누에가 만든 실이 여러 겹으로 감긴 타래다. 고치에 감겨있는 실을 풀려면 미지근한 물에 넣고 조심스럽게 굴려줘야 한다.

은서 학생기자가 "양잠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었죠. "일단 누에의 먹이가 되는 뽕잎이 자라는 넓은 뽕밭이 필요해요. 또한 누에는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기 때문에 농약이나 담배 연기 등에 민감하게 반응해요. 그래서 양잠을 하는 농민들은 산골 깊숙한 곳에서 누에를 키우곤 하죠."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곤충을 익충(益蟲)이라 하죠. 인류는 수천 년 전부터 누에를 통해 명주실을 얻어 비단을 직조했습니다. 이 비단은 옷감은 물론 그림을 그리는 화폭, 글로 정보를 기록하는 종이 역할도 했죠. 즉, 인류 문명의 발달과 누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겁니다. 이 작은 곤충이 동서문명을 잇는 실크로드 탄생의 주역이었다니 정말 놀랍지 않나요.

동행취재=변우빈(경기도 화남초 5)·최은서(경기도 행정초 4) 학생기자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이번에 취재한 누에생태체험장은 시민이 누에의 성장과정을 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누에를 사육하는 곳이었어요. 남명진 강사님이 누에에 대한 저의 궁금증을 풀어주셨고, 누에와 관련된 여러 신비한 사실을 알려주셨어요. 저는 누에가 그냥 '실을 뽑는 곤충'으로만 생각했는데 통조림이나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번데기가 바로 이 누에였더라고요. 또 누에는 흰색 고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노란색 고치도 있었어요. 신기하고 색이 너무 예뻐서 키우고 싶었어요. 강사님의 재밌는 설명과 누에의 신비로움과 소중함을 경험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변우빈(경기도 화남초 5) 학생기자

누에의 일생에 대해 취재하기 위해 누에생태체험장으로 향하는 길은 정말 특별했어요. 노을공원 주차장에 도착하면 누에생태체험장까지 걸어갈 수 있지만 맹꽁이전기차를 타고도 갈 수 있어요. 맹꽁이전기차를 타고 달리며 잠시 더운 날씨에 흘렸던 땀도 식히고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금세 체험관에 도착하죠. 어렸을 때 누에가 징그럽고 못생겨서 해로운 곤충인 줄 알았는데 취재하며 누에가 이로운 곤충이라는 걸 알고 놀라웠어요. 우리가 비단으로 된 옷을 입을 수 있는 것도 누에 덕분이라고 합니다. 또한 누에는 뽕잎 말고는 다른 잎을 먹지 않는다는 것과 누에가 살기 위해서는 환경조건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누에가 계속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깨끗한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최은서(경기도 행정초 4)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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