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복날 보신탕 특수? 가게 내놨다"…흑염소집은 수십팀 대기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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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인 15일 오전 11시30분쯤 서울 동대문 경동시장 보신탕 골목에 손님 인적이 드문 모습. 김서원 기자

“평소에도 손님 없는 마당에 복날 특수가 뭐예요. 장사 접으려고 가게 내놨어요.”

지난 2월 6일 ‘개식용 종식법’이 공포된 뒤 첫 초복인 15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만난 보신탕집 사장 안모(67)씨는 “어르신들만 먹어서 가만히 놔둬도 10~20년 뒤면 없어지는 업종인데 정부에서 ‘죽어라’ 하니 별수 있나”라며 이같이 말했다.

개식용 종식법은 식용 목적으로 개를 사육·도살하는 행위, 개를 원료로 조리·가공한 식품을 유통·판매할 경우 최대 징역 3년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처벌은 3년 후인 2027년 2월부터지만 이미 폐·전업한 보신탕 가게들과 뜸한 손님들로 적막한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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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손님 한 명이 15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보신탕 골목에서 복날 보신탕을 먹기 위해 도·소매업자로부터 개고기를 사고 있다. 김서원 기자

이날 오전 11시 30분쯤 점심시간이 다 됐지만 안씨 식당에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안 사장 가게 인근 500m 반경은 1980~90년대만 해도 건강원이나 보신탕 업소가 22곳 넘게 몰려 있어 ‘보신탕 골목’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개 식용 금지 바람이 불면서 줄줄이 폐업해 현재 보신탕을 파는 가게는 5곳 남짓에 불과하다.

안씨도 공식적으로는 보신탕을 팔고 있지 않다. 간판과 메뉴판에서 개고기를 원재료로 하는 음식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에 가끔 찾는 단골손님을 상대로 ‘탕’이란 이름의 메뉴로 보신탕을 팔고 있다고 한다. 안씨는 “지난해 말부터 구청 단속이 심해지면서 간판을 바꿨다”며 “생계가 걸려 있는데 대책 없이 팔지 말라고만 하니 막막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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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메뉴를 바꾼 보신탕 가게 간판에 ‘보신탕’이란 글자 위에 ‘염소탕’이란 글자를 덧댄 흔적이 남아있다. 김서원 기자

경동 시장에서 59년째 보신탕을 팔아온 배현동(77)씨도 최근 ‘염소탕’ 집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간판에는 ‘보신탕’이란 글자 위에 ‘염소탕’이란 글자를 덧댄 흔적이 남아있었다. 복날이 되면 손님들로 북적여야 할 식당이지만 오후 12시 손님은 단 한 테이블에 앉은 2명뿐이었다. 배씨는 “지난해부터 ‘개고기 파냐’고 물어 들어오는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 다들 아예 안 파는 줄 안다”며 “한때는 직원도 여러 명 썼었는데, 오늘은 사람이 없어서 나랑 와이프 둘이서 일해도 된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신진시장 안 보신탕 거리에서도 복날 특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4대에 걸쳐 60년째 보신탕 가게를 운영해온 이모(62)씨는 “매출이 반의반 토막 나면서 팔지도 못하고 버리는 개고기도 많다”며 “수입이 줄어드니 직원을 줄이거나 영업시간을 조정해서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껴볼까 한다”고 했다.

보신탕집을 찾은 60~70대 손님들은 “복날 문화로 식용 개를 먹는 건데 문제 될 것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박종윤(68)씨는 “초복에 개고기 먹고 몸보신 하는 건 우리 세대 문화”라며 “사회적 논의도 없이 너무 급하게 금지한 것 같다”고 했다. 이진성(71)씨도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몰래 개고기를 판다든지 분명히 뒤탈이 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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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신진시장 인근 보신탕 거리에는 삼계탕을 먹기 위한 인파가 몰렸다. 해당 백숙집은 분점 등 총 3곳이 몰려있었지만 오전 11시 30분부터 만석이었다. 이찬규 기자

반면 보신탕의 대체재로 백숙이나 장어·흑염소 식당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신진시장 인근 ‘닭 한 마리’ 가게는 오전 11시 30분쯤부터 손님들로 만석이 되며 약 30분 만에 17팀의 긴 대기 줄이 생겼다. 한 흑염소 식당 사장은 “개고기 수요를 노리고 한 달 전에 개업했다”며 “복날을 맞아 개업 이래 최다 매출액을 찍을 것 같다”고 했다. 일부 보신탕집으로는 주메뉴 전향을 권하는 흑염소 도·소매업장이 보낸 판매 영업·광고 우편물이 하루가 멀다고 날아든다고 한다. 장어집 사장 A씨도 “개고기 금지로 복날 수요가 넘어와 평소보다 매출 50% 늘었다”고 말했다.

특별법이 시행되면 식당은 물론, 폐업이나 전업이 불가피한 사육 농가와 도축·유통업체 등에 대한 철거와 운영 자금 등을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다음 달까지 전국 5625곳 사육 농가와 도축·유통업체, 음식점 등에서 폐업·전업에 관한 이행 계획서를 받을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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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식용종식법이 통과되면서 2027년부터 개식용이 금지된다. 개고기식당 관계자들은 ″먹는 자유까지 제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한 개고기식당 종업원이 개고기를 삶는 모습. 이찬규 기자

그러나 사육 농가를 대표하는 대한육견협회 측은 폐업·전업에 앞서 지원책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업손실 보상 명목으로 사육 농가에 개체당 200만원을 지급하라”는 주장이다. 현장 상인들도 법 시행까지 남은 3년간의 처벌 유예기간을 ‘시한부’로 규정하고, 생계유지를 위한 현금 지원을 바라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현금 보상은 과도하다며 폐업·전업 지원에 대한 보상방안을 아직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주영봉 대한육견협회장은 “이달 말까지 구체적인 지원책이 발표되지 않으면 개 식용 종식에 협조할 수 없다”며 “상황이 악화하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고발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농가에서 손실을 추정한 정도가 지나치다고 판단해 합리적 수준에서 지원될 수 있도록 조사 중”이라며 “9~10월쯤 현금 지원책을 담은 보상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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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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