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고추 재배지 1975년 이래 최저…핵심작물 증발, 정부의 대안 [위기의 국민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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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7일 오후 경남 남해군 설천면 덕신마을에서 70대 할머니가 홀로 마늘을 수확하고 있다. 안대훈 기자

"올해까지 짓고 그만둘 생각" 

#장수마을로 알려 경남 남해군 설천면 덕신마을 주민 김정선(78) 할머니는 최근 약 0.03㏊(100평) 남짓한 밭에서 혼자 마늘을 수확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3대가 0.66㏊(2000평) 규모로 제법 큰 밭에서 마늘을 길렀다. 하지만 시어머니·시아버지·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마저 외지로 나가 취직하자 혼자만 남았다. 김 할머니는 “이제 힘들어서 올해까지 짓고 그만둘 생각”이라며 "마늘은 사람이 일일이 캐야 하므로 힘들고 젊은 사람도 없어 사양(斜陽)작물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경북 안동시 서후면에서 고추를 기르는 김상열(70)씨는 한때 1.32㏊(4000평)가 넘는 고추밭을 가꿨다. 하지만 그는 몇 년 전부터 0.33㏊(1000평)에만 고추를 심고 있다. 김씨는 “고추는 농약도 자주 뿌려야 하고 수확도 사람 손으로만 가능해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대표적인 작물"이라고 했다. 이 지역 일부 농민은 작물을 고추에서 대마로 바꾸고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현상은 작물 재배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고추·마늘·배추·양파 등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작물이 타격을 받고 있다. 농촌 인력이 급감하면서 재배 면적이나 생산량이 갈수록 줄고 있다. 이들 작물은 전 국민이 연중 소비하는 이른바 '국민 작물'이어서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일부 농민은 고추·마늘 대신 영농이 비교적 수월한 대마·시금치 등 다른 작물로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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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고추 재배면적 1975년 이래 최저 

고령화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작물로는 고추를 꼽을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고추 재배면적은 2만7129㏊(8206만5225평)로 10년 전인 2013년 4만5360㏊(1억3721만4000평)의 절반 수준이다. 고추 재배면적은 1975년 통계 발표 이래 가장 적다.

마늘 농사도 위기다. 마늘 주산지인 경남 남해군 재배 면적은 2004년 1548㏊(468만2700평)에서 지난해 490㏊(148만2250평)로 급감했다. 전남 해남 겨울 배추도 직격탄을 맞았다. 2018년에 22만4400t이던 생산량은 지난해엔 17만1000t으로 5년 만에 5만t 이상 줄었다. 배추는 산지유통인마저 고령화하면서 판매까지 어려워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에 등록된 산지유통인은 1만명에 달했다. 하지만 20여 년이 흐른 현재 1200명에 불과하다. 산지 유통인은 농민과 계약을 통해 배추 재배부터 판매까지 책임진다.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앞으로 고추와 마늘 등 노지(露地) 대표 작물은 점점 더 귀해져 국내산을 먹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며 “서서히 변해서 체감을 못 하지만 20년 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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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찾은 경북 안동 풍산읍 대마밭. 이종각(58) 안동대마작목반장이 대마 농사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안동=백경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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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농촌인구 2030년 943만명, 2050년 845만명 

고령화로 인한 농촌 인구 감소는 날이 갈수록 심화할 전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농업전망 2024’에서 2020년 976만명인 농촌 인구가 2030년 943만명, 2040년 900만명, 2050년 845만명으로 계속해서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표적인 것이 '스마트 농업’보급이다. 빅데이터와 정보통신(IT)을 활용해 적은 인력으로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는 게 목표다. 실제 충북 괴산 등 스마트팜에서는 일반 농가보다 콩을 2배 가까이 생산하고 있다.

집에서 채소를 키워 먹는 ‘자급자족형’ 소비자(홈 파밍)도 늘고 있다. 이들은 아파트 베란다와 옥상 등 자투리 공간에서 고추·대파 등을 집적 키워 먹는다. 홈 파밍은 특히 식재료를 관리하기 어려운 1인 가구에 인기를 끌고 있다.

민승규 세종대(농경제학 박사) 석좌교수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한국이 보유한 세계 최고의 ICT기술을 활용해 첨단화하는 등 농사짓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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