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외국인 노동자도 외면한다…하동 녹차·무등산 수박 명맥 끊기나 [위기의 국민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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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녹차, 무등산 수박, 광양 매실 등 전국적으로 유명한 지역 특산품도 위기를 맞았다. 청년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심해지면서 농사지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특산품은 일반 농산물과 달리 농법이나 기술이전까지 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이 힘들다 보니 그나마 농촌에 남아있는 젊은이마저 외면하고 있다고 한다.

1200년 역사 ‘왕의 차’…농가 절반 ‘증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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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군 화개면의 한 차밭에서 일꾼들이 수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하동군

전국 자치단체에 따르면 경남 하동 녹차 재배 농가는 10여 년 사이 절반 가까이 준 것으로 나타났다. 하동은 제주, 전남 보성과 함께 국내 차(茶) 3대 주산지로 꼽힌다. 하동 차는 삼국시대 왕에게 진상돼 ‘왕의 차’로 불린다. 2015년 국가중요농업유산에 지정, 2017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하동군에 따르면 이 지역 녹차 재배 농가는 2012년 1918가구에서 지난해 1050가구로 감소했다. 이 기간 무려 868가구(45.25%)가 녹차 농사를 접은 셈이다. 같은 기간 재배 면적도 1042㏊에서 328㏊(31.47%)가 사라진 714㏊로 집계됐다. 생산량도 크게 줄었다. 2016년 2058t에서 지난해 1252t으로 반 토막이 났다.

녹차는 수확기가 되면 일꾼을 대거 동원해 찻잎을 일일이 손으로 따야 한다. 녹차밭이 있는 산비탈을 오가며 일해야 하는 중노동이다. 하동 녹차 재배지의 90%(645㏊)는 지리산 자락 화개면에 집중돼 있다.

숙련 일꾼 고령화…“일손 부족해 농사 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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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경남 하동군 화개면의 한 녹차밭에서 한 일꾼이 잎을 따고 있다. 사진 농민 김태종

그런데 수십년간 하동에서 찻잎을 따온 숙련자가 고령화로 하나둘 줄면서, 수확기(4월 초순~5월 중순)에 일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하동에서 약 1만평(3.3㏊) 규모 녹차밭을 제초부터 수확, 완제품 생산까지 관리하는 농민 김태종(50)씨는 하루 인력을 10명을 쓰려 했지만, 절반도 구하지 못했다고 했다.

외국인 근로자 등 비숙련자는 숙련자 하루 수확량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해 “인건비 대비 손해”라는 말도 나온다. 화개면 이장협의회장(전 하동차생산자협의회장)인 김태종씨는 “녹차는 수확기가 한 달 정도로 짧아서, 외국인 등 비숙련자는 일을 배울 만하면 그만둔다”며 “숙련된 일손을 못 구해 녹차 재배를 접은 농가도 많다”고 했다.

그는 “산비탈에 녹차밭이 몰려 있어 기계를 쓰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하동 차의 특징은 수제 차여서 (일부 수출용을 제외하면) 손으로 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 통에 수십만원인데…‘왕의 수박’ 농민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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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무등산수박마을에서 한 농민이 수박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무등산 수박도 재배 농가가 크게 줄면서 사라질 위기다. 광주광역시 등에 따르면 무등산 수박은 한 통에 수십만원을 호가(呼價)하는 명품 수박이다. 조선 시대에는 광주에서 임금께 올렸던 유일한 진상품이었다. 당도는 낮지만, 특유의 감칠맛이 있어 소비자에게 인기다.

하지만 정작 재배 농가가 줄면서 그 명맥이 끊길 위기다. 2000년 무등산 수박 재배 농가는 30가구였다. 20여년이 흐르면서 지난해 8가구로 급감했다. .

무등산 수박은 농사짓기가 쉽지 않고 생산량이 불안정한 탓에 재배하겠다고 나서는 농부가 드물다. 한 번 경작하면 지력(地力)을 잃어 매년 재배지를 바꿔야 한다. 3년이 지나 땅의 영양분이 회복돼야 같은 장소에 다시 심을 수 있다. 햇볕이 너무 강하거나 일조량이 너무 부족해도 안 되고, 화학 비료가 아닌 유기질 비료나 완숙한 퇴비만 써야 하는 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작은 상처에도 ‘빈 수박’…재배가 까다로운 무등산 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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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무등산수박 공동판매장에서 주민들이 상품성이 뛰어난 수박을 전시 하고 있다. 중앙포토

재배지도 한정적이다. 해발 300m 이상 무등산 기슭에서만 자란다. 지형 조건 등이 비슷한 강원·경상·전남 일부 지역에서 재배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문광배(52) 무등산수박생산자조합 총무는 “일반 수박처럼 이상기후에도 잘 자라는 종자를 개발해야 다른 농부도 재배에 참여할 것”이라며 “하루빨리 젊은 농부에게 재배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해야 무등산 수박의 1000년 역사를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명품 수박인 경북 고령군 ‘우곡그린수박’도 위기다. 고령 우곡면에서 나는 이 수박의 재배 면적은 2015년 248㏊에서 지난해 110㏊로 반 토막이 났다. 이창희(68) 우곡그린복합영농조합 대표는 “수박농사는 외국인 노동자조차 피하는 고된 농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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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양시 다압면 청매실농원. 뉴스1

광양 매실 농가도 감소 

전남지역 대표 특산품인 광양 매실 재배 면적도 감소하고 있다. 광양 매실 농가는 2019년 4095가구에서 지난해 3468가구로, 최근 4년 사이 15%(2633t) 감소했다. 광양시 관계자는 "매실은 묘목 심기부터 수확까지 대부분 과정을 사람이 할 수밖에 없다"라며 "이 때문에 젊은 사람이 외면하는 대표적인 농산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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