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0년 전엔 품앗이 했는데…" 해남배추, 수확할 사람이 없다 [위기의 국민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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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는 옛말…“마을에 사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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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전남 해남군 화원면 한 배추밭에서 농부들이 가을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남 해남군 옥천면에서 배추 농사를 지으면서 김치 공장까지 운영하는 임태정(52)씨. 50ha(15만평)에서 배추를 기르는 그는 10년 전부터 배추 수확을 전문 업체에 맡기고 있다. 배추 수확 업체는 고객이 원하는 기간에 인력을 데리고 와 수확을 대신해준다. 수확 인력은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를 쓴다고 한다. 임씨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어르신과 ‘품앗이’를 해가며 배추를 수확했다"라며 "하지만 고령화가 심각해지면서 농사지을 동네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임씨는 “배추 농사는 기계로 할 수 없어 수확 철에 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동네에 일할 사람이 거의 없어 수확 전문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생산량·농가 수 모두 감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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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전남 해남군 화원면 한 배추밭에서 농부들이 가을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연합뉴스

겨울배추 최대 주산지인 전남 해남군이 고령화로 인한 일손 부족에 직격탄을 맞았다. 해남은 전국 겨울배추 가운데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지역이다. 해남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겨울배추 재배 면적 3590㏊ 가운데 해남은 1902㏊(53%)를 차지했다. 해남 배추 생산량은 전국 28만3000t 중 17만1000t(60.4%)이다. 2018년에 22만4400t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5년 만에 23.8%가 줄었다. 농가 수도 점차 줄어 지난해 해남지역 배추 농가는 4371곳으로 10여 년 전인 2013년 5247곳과 비교해 876곳(16.7%)이 감소했다.

“계약재배 필수, 업체 없이 생산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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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전남 해남군 화원면 한 배추밭에서 농부들이 가을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추 재배는 어르신 농민이 파종부터 출하까지 모든 과정을 감당하는 게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농가는 계약재배를 선호한다.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모종 심고 물주는 작업만 직접하고 나머지는 모두 산지유통인에게 맡긴다”며 “아예 모종을 심는 작업부터 수확까지 다 맡기는 농가도 있다”고 말했다.

산지유통인 마저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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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전남 해남군 화원면 한 배추밭에서 농부들이 가을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지유통인’은 남의 땅을 빌려 배추나 무를 키운 후 판매하거나, 농민이 키운 농산물을 사들여 시중에 공급하는 사람을 말한다. 수확만 하는 전문 업체 인력과는 차이가 있다. 산지유통인과 거래하면 농가는 파종까지만 맡고 비료, 농약, 상·하차 등 생산비용을 모두 산지유통인이 부담한다. 배추를 수확한 산지유통인은 판매까지 책임진다.

문제는 배추를 키우고 파는 산지유통인마저 크게 줄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까지 해도 연합회에 산지유통인으로 등록된 회원은 1만명이 넘었다. 하지만 20여 년이 흐른 지금은 1200명 수준이다.

산지유통인 줄어드는 건 고령화와 중국산 김치 수입 확대로 인한 수익 감소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 해남 문내면 박은자 이장은 “마을에 일할 사람이 귀해지면서 인건비가 올라 농가 자체 힘으로 배추 농사를 짓는 건 불가능하다”며 “산지유통인이나 수확 전문 업체까지 줄어든다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관계자는 “산지유통인 연령대만 봐도 대부분 60~70대로 고령화했다”며 “농업에 종사하는 것이 도시에서 일하는 것보다 소득이 높아야 젊은 층이 유입될 텐데 일은 힘들고 소득은 낮으니 설상가상”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남지역 또 다른 대표 농산물인 무안 양파도 5년 전보다 재배 면적은 39%(1068ha), 생산량은 58%(11만8000t) 감소했다. 전남도와 무안군 등에 따르면 무안 농민들은 양파 농사를 포기하고 땅을 놀리거나 다른 작물을 심는다고 한다. 인건비도 비싸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30년간 양파를 재배했다는 김덕형(62) 전국양파생산자협회 무안지부장은 "최근 몇 년간 잦은 비와 병충해 등으로 단위 면적당 수확하는 양이 너무 적다. 한평당 양파 수익은 1100원에 불과하다"며 "양배추 등 다른 작물로 바꿀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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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전남 해남군 화원면 한 배추밭에서 농부들이 가을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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