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총탄 이긴 사나이'에 돈줄 돌아온다…이젠 중도 겨눈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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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대통령의 나이와 행동을 비롯해 바이든의 모든 것을 비난하며 ‘패배자’, ‘호구’ 등 원색적 막말을 쏟아붓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전략이 대선 4개월을 앞두고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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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 토요일 펜실베이니아 버틀러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미국 비밀경호국 요원들에게 둘러싸여 무대를 떠나면서 손짓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비난과 막말, 대결과 복수 대신 전면에 새롭게 내세운 말은 그동안 생소했던 ‘통합’이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암살범이 쏜 총알에 부상을 입고도 성조기를 배경으로 주먹을 불끈 쥔 사진이 만들어 낸 결과다. 승세를 타고 통합을 외치는 트럼프에게 한때 등을 돌렸던 경쟁 후보, 재계 거물들이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다.

“‘바이든 비난’ 연설문 바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4일 보수 성향 매체인 워싱턴이그재미너와의 인터뷰에서 “암살 시도는 나라 전체와 세계 전체가 함께 뭉칠 기회”라며 “18일 후보 수락 연설은 역사의 요구에 부합하는 연설이 될 것이고, 내게 우리나라를 하나로 모을 기회가 주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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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 토요일 펜실베이니아 버틀러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미국 비밀경호국 요원들에게 둘러싸여 무대를 떠나면서 손짓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면서 “후보 수락 연설문을 완전히 새로 썼다”며 “완전히 다른 연설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초 바이든의 정책을 비난하는 데 초점을 맞춰 강성 지지층을 자극하려던 연설의 내용을 통합과 포용의 메시지로 수정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도 “부패하고 끔찍한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로 매우 강력한 연설을 준비했지만, 그것을 버렸다”며 “이는 미국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언제나 욕설에 가까운 수식어를 붙여 불렀던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서도 전날 통화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며 “매우 친절한 사람”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선거운동은 더욱 예의 바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죽을 뻔했다"며 "(당시 피격이) 매우 초현실적인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총격을 받은 후 "신발 좀 챙기겠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선 "요원들이 나를 너무 강하게 쳐서 내 신발이 벗겨졌다. 나는 평소 꼭 맞는 신발을 신는다"며 웃으며 뒷얘기를 전했다.

‘말조심’ 경고…“1차 목표는 당내 통합”

워싱턴포스트(WP)가 입수해 보도한 트럼프 캠프의 크리스 라시비타·수지 와일즈 수석고문이 작성한 메모에는 “암살 미수 사건과 관련한 위험한 표현을 피하라”는 취지의 지시가 담겨 있다.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말라. 모든 형태의 폭력을 비난하며 소셜미디어에서 쓰는 위험한 수사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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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14일 미국 플로리다주 하일레아에서 열린 트럼프 지지 시위에서 트럼프의 얼굴이 피를 흘리는 이미지가 담긴 티셔츠를 바라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메모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연설을 ‘통합’의 내용으로 수정하라고 지시한 때와 거의 동일한 시점에 작성됐다. 캠프 차원의 전략 전환 결정이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로버트 슈뮬 노트르담대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이번 암살 미수 사건을 계기로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아 대의를 위해 싸우는 투사의 이미지를 얻게 됐다”며 “극단적 분열의 상황에서 기존 지지층을 결집했다고 판단한 트럼프가 통합을 내세워 표의 확장과 정치적 명분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시도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양극화가 고착된 상황에서 트럼프가 주장하는 통합은 중도확장보다 일차적으로 공화당 세력의 통합을 유도하려는 측면이 강하다”고 진단했다.

“신의 선물”…‘정적’ 니키 헤일리·가족 가세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암살 시도 직후 긴박한 상황에서도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들어 올린 이유에 대해 “사람들에게 내가 괜찮다(OK)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였고, 또 미국은 계속 굴러가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우리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존에 대해 “나는 원래 죽었어야 했는데, 신에게 선물을 받았고 이는 초현실적 경험”이라고 했다. 통합의 메시지를 내기로 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기독교도 많은 미국인의 정서를 자극하기 위해 ‘신적 경험’을 접목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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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9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니키 헤일리 당시 유엔 주재 미국 대사와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는 이날 이들 매체와 인터뷰하면서도 부상 부위에 대한 사진 촬영을 거부했다. 전당대회가 열리는 밀워키에 도착하는 장면에 대한 근접 촬영에도 응하지 않았다. 전당대회 때 ‘총탄을 이긴 사나이’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란 해석이 나온다.

이날 중앙일보가 밀워키 전당대회장 인근에서 만난 트럼프 지지자 스티브 그레이브는 “트럼프는 총을 맞고도 벌떡 일어나 ‘싸우자’고 외쳤다”며 “트럼프는 미국인과 세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할 확실한 전사이자 신과 함께하는 사람”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와중에 대선 경선에서 마지막까지 트럼프와 맞서 '정적'이나 다름없었던 니키헤일리 전 유엔 대사도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겠다고 나섰다. 헤일리 전 대사는 당초 공화당 전국위원회(RNC)가 공개했던 연설자 명단에는 빠져있었다.

헤일리 전 대사는 경선 과정에서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층인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의 확산을 경계하는 공화당 내 정통 보수, 중도 보수층의 지지를 받아왔다. 그래서 그의 전당대회 연설은 대선을 앞둔 공화당의 분위기가 경쟁에서 '통합' 국면으로 전환하는 상징적인 순간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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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지지자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는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 AP=연합뉴스

또 공개 석상에 좀처럼 나서지 않던 배우자 멜라니아 여사 딸 이방카 역시 “우리는 다시 단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며 4개월 남은 대선 레이스에 뒤늦게 합류했다. 이들은 전당대회 때도 총출동해 트럼프가 대선후보로 공식 지명되는 장면을 지켜볼 예정이다.

‘돈’ 가진 재계 ‘거물’ 잇따라 반응

트럼프에 대한 암살 시도와 통합의 메시지에 선거판을 움직일 막대한 ‘돈’을 가진 재계 거물들도 반응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암살 미수 직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미국에 이처럼 강인한 후보가 있었던 것은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마지막이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을 극찬했다. 이어 이날은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회장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겠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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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전 대통령의 피습을 1면톱으로 보도한 한국의 신문. 연합뉴스

한때 트럼프와 불화를 겪었던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도 “트럼프는 엄청난 우아함과 용기를 보여줬다”며 “그가 무사한 데 감사드리고, 희생자와 가족에게도 애도를 표한다”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와 각을 세워온 대표적인 매체인 워싱턴포스트의 사주이기도 한 베이조스는 트럼프를 ‘멍청이(Bozo)’로 칭한 적이 있다.

앤디 재시 아마존 CEO, 팀 쿡 애플 CEO,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CEO, 브라이언 체스키 에어비앤비 CEO 등도 트럼프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고 이번 사건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냈다.

또한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14일 밤 밀워키 시내 호텔에서 공화당의 주요 기부자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NYT는 트럼프가 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캠프는 암살 미수 사건 전 2~3일에 한번씩 일반 유권자들에게 보내던 기부금 독려 문자를 이날 하루에만 4건 이상 발송하면서 선거자금 확충에 한층 노력하고 있다. 독려 문자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총에 맞은 뒤 성조기를 배경으로 주먹을 치켜든 사진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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