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수도관엔 자물쇠, 멈춘 엘리베이터…화곡동 피해자들 두 번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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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서울 시내의 부동산 사무실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이른바 ‘빌라의 신’ 등 대규모 전세 사기 일당이 휩쓸었던 서울 강서구에서 사기 피해자들이 관리비 분쟁까지 겪으며 이중고를 호소하고 있다. 전세금 반환보증 보험에 가입해 보증금을 돌려받고 떠난 임차인들의 집이 대거 공실이 되면서, 남은 이들이 공용 관리비 등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보증 보험에 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빌라에 사는 이들이다.

최근 강서구 화곡동 P빌라 입주민들은 공실 관리비를 두고 관리 업체와 갈등을 겪고 있다. 입주민 A씨의 집엔 지난 5월부터 물이 나오지 않는다. 관리 업체는 A씨세대의 수도관을 잠근 상태로 자물쇠까지 설치했다. 평균 4만5000원 선이었던 관리비가 꾸준히 인상돼 지난해 11월 23만원에 달하자, A씨 등 입주민들은 인상 원인을 공개하라고 관리 업체에 요구했다. 업체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관리비 납부를 중단했고, 업체는 결국 단수라는 초강수를 뒀다. 지난 15일부턴 공용 전기도 끊겼다. A씨는 “관리 업체가 집 주소까지 알고 있으니 외출할 때마다 두렵기도 하다”며 “집 앞에 붙은 독촉 고지서를 보면 가슴이 철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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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A씨 세대의 수도관에 자물쇠가 잠겨있는 모습. 자물쇠에는 ‘본 잠금함을 무단 개폐하거나 파손 시 형사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박종서 기자

17일 중앙일보가 확인한 강서구 내 전세 사기 피해 빌라 12곳 중 4곳에서 관리비 분쟁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우편함에 수도·전기 미납 요금 통지서가 빽빽하게 꽂혀있거나, 관리비 미납으로 엘리베이터 운행이 중단된 곳도 있었다. 화곡동에서 20년간 부동산을 운영해 온 김모(60)씨는 “인근 빌라 대부분이 전세 사기 매물로 나왔던 점을 고려하면 관리비 분쟁을 겪는 빌라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돈을 돌려받기 위해 소송에 나선 전세사기 피해자들도 있다. 화곡동 H빌라에 사는 B씨는 빌라의 신 일당 중 한 명인 박모(52)씨로부터 전세 사기를 당했다. 별도 보험에 들지 않은 데다 박씨가 징역 5년형을 선고 받으면서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어졌다. 그러던 중 지난 2022년 1월 평소보다 관리비가 많이 부과된 통지서를 받았다. 총 22세대가 거주하던 빌라에서 14세대의 입주민들이 주택보증보험공사(HUG)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고 나간 직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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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 빌라 우편함에 수도·전기 미납 요금 통지서가 빽빽하게 꽂혀있는 모습. 박종서 기자

B씨 등에 따르면 2019~2021년 평균 관리비는 4만 5000원 수준이었지만 2022년 6월엔 15만원으로 올랐다. 2022년 8월 관리 업체와 계약이 끝난 뒤엔 소방점검 후속 조치 비용 85만원, 공용 전기료 2개월 치 약 44만원 등이 미납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입주민 7명이 미납금 약 130만원까지 대신 내야 했다.

B씨 등은 같은 해 11월 서울남부지법에 관리업체를 상대로 관리비 반환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4월 1심에서 승소했다. B씨는 “당시 변호사 선임비가 500만원부터라고 들었지만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아 5개월 동안 직접 관련 법을 알아보고 혼자 소송을 진행했다”며 “전세 사기 소송까지 하며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관리 업체가 남은 입주민들에게 공실 관리비까지 청구하는 것이 위법이라고 지적한다. 집합건물법 제17조가 공용 부분(공동 현관, 복도 등)에 대한 관리비 부담은 임대인(건물주)에게 있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임대인에게 공실 관리비를 청구하는 것이 원칙이고 임차인은 납부할 의무가 없다”고 말했다. 김규엽 변호사도 “임차인에겐 공실에 대한 지분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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