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폭우에 60% 잠겨도, 생산량 1.9배 많았다…괴산 살린 이 농법 [위기의 국민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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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제홍 스마트농업지원센터장이 지난 5월 17일 충북 괴산군 불정면 노지 콩 스마트 생산단지 안 관제실에서 각종 콩 재배정보가 표시된 대형 화면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괴산 스마트팜 “최악 수해에도 콩 생산 1.9배 늘어”

지난 5월 17일 충북 괴산군 불정면 ‘노지(露地) 콩 스마트농업 생산단지’. 통합관제실에 들어서자 대형 스크린에 색깔별로 콩 품종 재배지가 표시돼 있었다. 이 단지(50㏊)에서 지난해 6월~11월까지 경작한 콩 재배 현황이다. 빨간색은 ‘선풍’, 노란색 ‘대찬’, 연두색 ‘서리태’, 하늘색은 ‘대원’ 품종으로 표시돼 있었다. 기상 센서와 토양 센서 위치, 수로와 자동 관수 시스템 현황, 기온과 습도, 강수량이 한꺼번에 표시됐다.

관제실에서 만난 연제홍(54) 스마트농업지원센터장은 “노지 스마트팜은 실내·시설 스마트팜과 다르게 사람이 예측할 수 없는 기상이나 재해 등 변수가 다양하다”며 “수집한 데이터를 토대로 생육 부진이나 병충해 발생에 따른 정확한 진단·처방, 신속한 조처를 하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괴산 콩 스마트 단지는 빅데이터와 정보통신(IT)을 활용해 콩 생산 효율을 높이는 곳이다. 2019년 농림축산식품부 공모한 스마트팜 사업에서 경북 안동시(사과)와 함께 선정돼 3년간 준비 과정을 거쳐 지난해 6월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국비 등 252억원이 투입됐다. 빅데이터 플랫폼을 운용하는 관제실과 서버실, 교육실, 자율주행 농기계 창고, 드론 등 설비를 갖췄다. 불정면 거주 44개 농가가 소유한 168필지(50㏊)가 스마트팜 경작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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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제홍 스마트농업지원센터장이 지난 5월 17일 충북 괴산군 불정면 노지 콩 스마트 생산단지 안에서 자율주행 드론과 기상센서, 토양센서를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수집한 데이터 토대로 정확한 진단 및 처방 

불정면 농민은 그동안 경험에 의존해 농사를 지었다. 그래서 집마다 파종 시기가 달랐고, 병해충 방제, 물 주는 시기도 제각각이었다. 기존에 990㎡(300평)당 콩 생산량은 200㎏ 정도이며 이마저도 농가마다 수확량 편차가 100㎏ 이상씩 났다. 스마트농업 단지를 본격 운영한 지난해 990㎡당 평균 콩 수확량은 380㎏였다. 단지 주변 농가보다 1.9배, 전국 평균(209㎏)보다 1.8배가량 많았다.

지난해 7월 15일 괴산에 폭우가 내려 생산단지 60%가 침수된 상황을 고려하면 이례적 결과다. 농축산부 담당자가 “믿을 수 없다”고 하자 2차례 재측정했다. 연 센터장은 “침수된 필지에 잎이 마르는 증상이 보였지만 곧 마름병으로 진단했고, 신속하게 광역살포기를 이용해 방제한 게 주효한 것 같다”고 했다.

이 단지에서는 사전 데이터 수집을 통한 품종별 맞춤형 대책을 내놓는다. 농장 곳곳에 기상 센서(3개)와 토양센서(50개)가 설치돼 있다. 기상 센서는 불정면 기상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기 위해 설치했다. 불정면에서 가장 가까운 기상대가 충주에 있어서 기상청 관측값과 대략 2도 정도 차이가 난다. 토양센서는 1분마다 경작지 정보를 수집한다. 지온·지습·수분·장력·전기전도도 등 정보를 파악해 무선으로 관제실로 보낸다. 토질은 물 빠짐 등에 따라 24개로 분류해 필지별로 적합한 품종을 재배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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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대전시 동구 삼성동 도심 빌딩에 문을 연 테마형 스마트팜 교육 체험시설인 대전팜을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전팜은 대전 원도심의 공실에 스마트팜을 조성해 버섯과 상추, 허브, 새싹 등 각종 농산물을 생산하고 활용하는 테마형 교육 체험시설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토양센서 1분마다 경작지 정보 수집 

자동 관수(灌水) 시스템도 노동력을 크게 절감케 했다. 토양센서에서 토양 수분 함량이 기준치 이하로 떨어지면 해당 농가에 알린다. 밭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한 농가는 자동 관수 되고 토양 산성도에 따라 적절한 양분 공급을 제시한다. 자율주행 드론을 활용해 필지별 생육상태를 확인해 방제 지점을 알려주기도 한다. 지리정보를 활용한 자율주행 트랙터, 파종기, 퇴비 살포기. 폐비닐 수거기 등 장비를 활용해 파종~수확까지 작업 대부분은 기계화했다.

연제홍 센터장은 “밭 갈기와 두둑 만들기, 콩 파종, 방제, 수확 등 콩 농사 전 과정에서 노동력 60% 이상 절감 효과를 봤다”며 “한 예로 콩밭 2000평(6600㎡)을 방제하려면 2~3명이 밭에 들어가 분무기를 갖고 5일 동안 일한다. 노지 스마트팜 단지는 전체 필지(50만㎡)를 드론 공동 방제로 3일 만에 끝낸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괴산 스마트 생산단지서 콩을 재배한 김영애(54)씨는 "농장 곳곳에 설치된 토양센서로 필요한 부분에 관수할 수 있어서 노동력과 시간이 훨씬 줄었다”며 “최적의 품종과 파종 시기를 알려줘 콩 발아율이 높아졌고, 이게 수확량 증가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5년까지 의성 마늘 재배에도 노지 스마트농업 기술을 접목하기로 했다. 마늘은 고령화에 일손 부족으로 타격을 입은 대표적인 작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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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옥천터널에 들어선 넥스트온(NEXTON)의 인도어팜(Indoor Farm). 중앙포토

폐터널·온실 활용…수직형 설계로 집적도 높여

국내 스마트팜 기술은 시설 원예 작물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시설원예 스마트팜 면적은 2014년 405㏊에서 지난해 7695㏊로 급증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3월 발간한 ‘스마트팜 산업 활성화 전략’ 보고서에는 국내 스마트팜 시장 규모는 2020년 2.4억 달러에서 2025년 4.9억 달러로 연평균 15.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마트팜 방식도 다양하다. 스마트팜 기업 ‘넥스트온’은 2018년 16년간 방치된 충북 옥천터널에 세계 최대 터널형 인도어 팜(Indoor Farm)을 만들었다. 약 6700㎡에 달하는 수직형 실내 농장에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과 자동 관개 시스템 등을 활용해 딸기와 엽채류·허브 등을 생산한다.

충남 부여에 있는 스마트팜 전문기업 ‘우듬지팜’은 지난해 9월 농산물 생산 기업으로 국내 최초로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2011년 영농조합법인으로 시작한 이 기업은 10.8㏊ 규모 비닐·유리온실 스마트팜을 운영하고 있다. 반밀폐형 유리온실을 활용해 여름에도 토마토를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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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농업기술원이 개발한 '간이비가림형 양액 재배 장치'는 시설비를 절반 가까이 줄인 소형 스마트팜 재배시설이다. 사진 충북도

설치비 반값, 소형 스마트팜도 등장 

지자체도 스마트팜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충북농업기술원은 최근 국내에서 가장 작은 스마트팜을 개발했다. 이 시설은 비닐하우스에 양액배드(식물 성장에 필요한 수용액을 채운 모판)를 설치해 재배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간이 비가림 시설이 있는 야외에 양액배드를 놓는 것이다. 기존 스마트팜은 너비 8m, 높이 4m 안팎의 비닐집 형태로 조성하지만, 이 스마트팜은 너비 1m, 높이 2.3m로 작다. 이렇게 하면 설치 비용을 종전보다 50%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최대근 한국벤처농업대학 교수는 "스마트팜은 기술 발전과 인구 감소라는 세계적인 흐름에 맞는 새로운 영농 방법"이라며 "단순 생산량 증대 차원을 넘는 농업혁명 단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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