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1조' 블루칩 내고 '192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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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은 지난 3월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 창원 본사에서 주요 경영진과 가스·수소터빈 제작 현장 방문 행사를 가졌다. 사진은 박 회장이 초대형 가스터빈 정격부하(FSFL) 성능시험 현장을 살펴보는 모습. 사진 두산에너빌리티

두산그룹이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로보틱스 계열사로 옮기는 등의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는 데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에너빌리티와 밥캣의 일부 투자자들이 “이러려고 두산은 밸류업을 안 한 것”, “손절 하고 나간다” 등 비판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계열사 간 합병 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① 캐시카우와 적자기업의 가치가 같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밥캣과 로보틱스의 교환 비율이다. 두산은 밥캣을 로보틱스의 완전 자회사로 만든 뒤 상장 폐지해 두 회사를 하나로 만들 계획이다. 둘 다 상장회사이기 때문에 합병 과정에서 밥캣 주주들에게 로보틱스 주식을 줘야하는데, 이 교환비율이 1 대 0.63이다. 밥캣 주식 1주를 로보틱스 주식 0.63주로 바꿔준다는 의미다.

논란의 핵심은 두 기업의 가치를 따졌을 때 이 교환비율이 적당하느냐다. 밥캣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10억6472만 달러(1조3899억원)에 달하는 두산의 대표적 ‘캐시카우’(현금창출원)다. 자산도 11조원에 달한다. 반면 로보틱스는 지난해 19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자산도 46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밥캣 주주로서는 캐시카우 주식을 갖고 있다가 적자 기업의 주식으로 교환받아야 하는데, 주식 수도 줄어드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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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두산은 법률에 따라 결정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자본시장법은 상장기업 합병 시 최근 1개월·1주일 평균종가와 최근일 종가를 평균한 값을 토대로 교환비율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로보틱스는 8만114원, 밥캣은 5만612원으로 정해졌고, 이 비율이 1 대 0.63이다.

그러나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자본시장법의 상장회사 합병비율 조항을 최대로 악용한 사례”라고 주장했다. 로보틱스가 ‘로봇 테마주’로 실제 가치보다 고평가된 시점을 선택해 합병을 실행하면서, 로보틱스 주식을 68% 소유한 지주사 ㈜두산이 이득을 보는 결과라는 것이다.

상장기업 합병시 시가만 기준으로 하게 한 자본시장법의 문제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SK(주)와 SK C&C 합병 당시에도 문제 제기가 있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해 ‘상장법인 합병가액 산정기준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합병가액 산정방식을 자율화하되 합병 당사 회사의 경영진이 공정한 합병비율을 도출할 수 있도록 간접 규제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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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② 비상장사 합병 방식도 논란

두산의 이번 지배구조 개편안에는 에너빌리티를 기존 법인과, 밥캣을 소유하고 있는 신설법인으로 나눈 뒤, 신설법인을 로보틱스에 합병시키는 안도 있다. 에너빌리티에서 떨어져 나온 신설법인은 비상장사가 된다. 비상장사와 상장사(로보틱스)가 합병하는 건데, 이때 주식 교환 비율은 비상장사의 경우 시가를 따르지 않고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미래 가치)로 회계법인이 계산한다. 이렇게 계산된 교환 비율이 1(로보틱스) 대 0.13(에너빌리티 신설법인)이다.

그런데 밥캣을 소유하고 있는 에너빌리티 신설법인의 가치가 너무 낮게 책정된 것이라는 비판이 에너빌리티 투자자 사이에서 나왔다. 과거에도 비상장사 합병 시 미래 가치를 추정하는 과정에서 부풀리거나 줄이는 ‘꼼수’가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금융위원회는 상장사와 비상장사 간 합병 시 독립성을 갖춘 기관이 합병가액의 적정성을 검토하도록 하는 내용의 기업 인수합병 개선안을 지난해 발표하고, 올 3분기 중에 시행하기로 했다. 두산이 이런 규제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합병안을 추진하는 것이라는 의심도 나오지만, 두산은 “그것과는 아무 상관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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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박 두산밥캣 부회장이 지난 1월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베이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두산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조종석을 없앤 무인 콘셉트 로더 '로그X2'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두산그룹

③ 상법 개정 논의에 영향?

결과적으로 다수의 전문가는 이번 개편이 실행되면 에너빌리티와 밥캣 주주 가치가 훼손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NICE신용평가도 “에너빌리티는 (캐시카우 밥캣을 넘기게 되면서) 배당수익 기반과 재무 대응력 약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라며 “에너빌리티 신용도 관점에서는 부정적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대신 로보틱스 대주주 ㈜두산이 이득을 볼 것이라고 봤다.

두산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외에 주주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근거라는 주장도 나온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이번 개편안으로 최종적으로 이득을 보는 건 로보틱스의 68.2%를 소유한 ㈜두산의 대주주 일가이고, 피해자는 일반 주주”라며 “만약 상법이 개정됐다면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이런 결정을 이사회가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상법 개정을 추진했던 정부는 현재 법 개정을 유보한 상태다.

반면 두산은 주주 가치를 훼손한다는 지적에 대해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로보틱스와 밥캣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며 이를 통해 사실상 ‘밸류업’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주주들의 반발에 대해선 “예컨대 밥캣의 주주는 에너빌리티가 46%, 기관 등 외국이 42%, 국민연금이 6%고, 소액주주는 2%밖에 안 된다. 개편안 발표 뒤 주주 다수를 차지하는 외국·국내 기관에게 설명회를 연 결과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두산은 오는 9월 25일 주주총회를 열고 개편안 결정을 위한 투표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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