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기차 캐즘에도…“맨땅에 헤딩” 돌파정신, 상사맨 다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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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그룹의 아르헨티나 리튬광산 모습. 중앙포토

‘사막에서 난로 팔고 북극에서 냉장고 팔던’ 상사맨들이 다시 뛰고 있다. 수십년간 글로벌 네트워크를 축적해온 역량을 발휘해,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있는 것. 최근 전기차 시장이 ‘캐즘’(신제품 수요 정체)에 빠져 있지만, 상사맨 특유의 ‘맨땅에 헤딩’ 정신으로 미래 시장을 뚫고 있다.

17일 상사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친환경차 부품 제조를 미래사업으로 정하고, 구동모터코아·영구자석 생산체계 구축과 2차전지 소재 밸류체인을 강화하고 나섰다. LX인터내셔널은 최근 인수한 인도네시아 AKP니켈광산을 발판 삼아, 다른 지역에서도 2차전지 소재 분야 광물 탐사를 확대하고 있다. GS글로벌은 아예 중국 비야디(BYD)의 전기트럭·전기버스 상용차 수입 국내 총판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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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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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 만화 '미생'은 상사맨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중앙포토

종합상사들은 1990년대까지 수출 첨병 역할을 하며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에 기여했다. 그러나 2000년대 개별 기업의 직수출 역량이 커지며 상사 업계에도 구조조정이 시작했다. 1975~78년 정부로부터 종합상사 사업자 지정을 받은 기업은 13개에 달했지만, 현재는 7개만 남았다. 이중에서 상사업을 주로 하는 회사는 현대코퍼레이션(옛 현대종합상사)뿐, 나머지 6개사는 이미 체질이 바뀌었다.

2010년 포스코그룹에 인수된 포스코인터내셔널(옛 대우)은 철강·식량·소재 트레이딩에 집중해왔지만, 지난해 포스코에너지와 합병한 뒤 친환경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자회사인 포스코모빌리티솔루션은 전기차 핵심 부품인 구통모터코아의 생산기지를 북미·유럽 등으로 확장할 것”이라며 “전기차 핵심 부품인 영구자석 사업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향후 수소차 연료전지스택 등 친환경차 부품으로도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석탄 광산에 집중했던 LX인터내셔널(옛 LG상사)은 2차전지용 신규 광물에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니켈을 생산하는 인도네시아 AKP광산의 지분 60%를 인수했는데, 이를 기반으로 제련 사업까지 확장해 원료에서 중간재까지 트레이딩 범위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니켈 광산을 발판 삼아 2차전지 소재 분야로 밸류체인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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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GS글로벌(옛 쌍용)은 2020년부터 BYD의 버스·트럭을 수입해 국내에서 판매 중이다. 다만 영업이익 기여도 기준으로 보면 무역·유통(68%, 2023년 기준)이 주력이고, 전기버스·태양광 사업은 17%선이다. GS글로벌 관계자는 “신사업을 모색하던 중 20여 년간 수입차 통관 후 보관, 인도전검사(PDI) 사업을 해온 점을 살려 BYD 상용차 수입·판매에 진출했다”며 “상용차 판매를 늘리기 위해 기업간거래(B2B) 플랫폼 확대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SK네트웍스는 지난해 전기차 충전 사업을 인수해 SK일렉링크(구 에스에스차저)를 운영 중이다. 다만 지난달 렌터카 사업을 매각하고, 자동차 관리 사업 부문인 스피드메이트 사업부와 무역을 담당하는 트레이딩 사업부를 각각 9월과 12월 물적 분할하기로 하는 등 사업 구조를 바꾸고 있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국내외에서 화학 제품(에탄올·메탄올) 트레이딩을 하고 있지만, 상사 비중은 전체 매출의 10%도 안 될 정도로 작다”며 “전반적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인공지능(AI) 기반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합무역상사 국내 1호인 삼성물산은 건설·바이오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상사 부문이 여전히 화학·철강 제품 트레이딩을 하고 있지만 지난해 삼성물산 연간 영업이익 중 트레이딩 사업의 비중은 13%에 그쳤다. 삼성건설(95년)·삼성에버랜드(2015년) 등 다른 계열사와 합병하며 사업 내용이 크게 바뀌었다. 현재 주력 사업은 바이오(38%)와 아파트 ‘래미안’을 짓는 건설 부문(36%)이다.

과거 현대중공업의 선박, 현대차의 자동차 수출 등을 담당했던 현대코퍼레이션은 현재 철강·자동차부품 트레이딩에 집중하고 있다. 지주회사인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의 브랜드 부문은 해외의 전자제품·공구·발전기 제조사들에게 ‘현대’라는 브랜드를 빌려주고 브랜드 로열티를 받고 있다. 해외에서 현대 브랜드의 TV·냉장고가 발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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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종합상사의 원조’ 격인 일본의 상사기업들도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있다. 삼성증권 분석에 따르면, 미쓰비시상사는 2015년만 해도 기계·금속·화학을 주력으로 했지만, 8년 후인 지난해엔 광물·식품·자동차·산업소재로 주요 사업 내용을 바꿨다. 에너지, 광물·금속, 기계·인프라 분야 사업을 하던 미쓰이물산도 같은 기간 에너지 사업 비중(23→15%)이 줄고, 광물·금속 사업 비중(17→26%)이 늘었다. 이토추상사도 광물·금속 비중(17→24%)이 높아졌고, 정보통신기술(ICT)·금융과 생활소비신사업 등에 새로 진출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종합상사들이 신성장 동력을 적극 마련하고 있는만큼 성장세를 기대할만 하다고 본다. 홍대순 광운대 경영대학원장은 “종합상사 기업들의 가장 큰 경쟁력은 시장을 보는 통찰력”이라며 “상사들이 트레이딩이나 서비스 오퍼링(제공)에서 벗어나 산업의 밸류체인 내에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더 움직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종합상사는 공급망 전체를 다룰 수 있는 비즈니스”라며 “앞으로는 이런 특성을 바탕으로 상사 기업들이 강력한 플랫폼이 될 수 있는 것이냐가 과제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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