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쟁 중이지만 혁신기술 투자 예산은 되레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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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알론 스토펠 이스라엘혁신청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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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론 스토펠 이스라엘 혁신청 의장이 지난 16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서 열린 한-이스라엘 최대 기술협력 행사 ‘이노베이션 데이’ 참석했다. 최준호 기자

이스라엘의 별칭은 ‘스타트업 네이션’(Start-up Nation), 즉 ‘창업국가’다. 스타트업 수가 인구 1400명당 1개로 세계 1위,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스타트업 수는 135개로, 미국·캐나다·중국에 이어 4위다. 이스라엘 내에는 인텔과 삼성전자 등 400개가 넘는 글로벌 기업 연구개발(R&D) 센터가 있다. 대부분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을 인수한 뒤 R&D 센터로 바꾼 형태다. 그 덕분에 이스라엘의 1인당 GDP는 5만1000달러(2023년 기준)에 달한다. 이 같은 숫자로만 보면 이스라엘은 성서가 말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같지만, 환경은 정반대다. 인구 920만 명. 면적은 2만2145㎢로, 우리나라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의 소국이다. 영토 절반을 사막이 차지하고, 중동 아랍국가들에 둘러싸여 한시도 편할 날이 없다.

이스라엘이 최악의 환경에서 세계 최고의 경제 성과를 내는 비결은 뭘까. 그들은 R&D도, 창업도, 전투하듯 한다. ‘R&D를 위한 R&D’는 적어도 이스라엘에는 없는 말이다. 적국에 둘러싸여 살아남아야 하는 그들은 R&D의 결과물이 국가 생존과 번영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물이 ‘스타트업 네이션’이다. 이스라엘혁신청(Israel Innovation Authority)은 스타트업 네이션 중심에 있는 정부기관이다. ▶스타트업의 차별화된 기술에 투자하면서 혁신기술 기반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양자과학기술·인공지능·바이오 등 미래기술에 투자하며 ▶신기술을 위한 정부 내 규제 개혁을 주도하는 것을 주업무로 하고 있다.

창업국가 이스라엘이 시련을 시간을 맞고 있다.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무장 정치 조직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전쟁이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2021년 8.2%의 높은 경제성장률로 코로나19 펜데믹에서 빠르게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던 이스라엘은 지난해와 올해 경제성장률이 각각 2.3%, 1.5%로 다시 하향세에 접어들었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시련을 극복하고 있을까. 이스라엘혁신청과 창업 생태계 주요 인사들이 지난 16일 한국을 찾았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꿈꾸는 경기도 성남 판교와 ‘한·이스라엘 이노베이션 데이’를 열고 양국 간 기술협력을 논의했다. 16일 오후 행사장이 마련된 판교 성남글로벌융합센터에서 이스라엘혁신청(Israel Innovation Authority)을 이끌고 있는 알론 스토펠(56) 의장을 단독 인터뷰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과학기술 정책을 이끄는 수석과학자(Chief Scientist)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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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말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의회 앞에 10만 명의 반정부 시위대가 모였다. 이들은 베냐민 네타냐후 전시 내각이 지난 6개월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을 데려오지도, 하마스를 말살하지도 못했다며 즉각적인 내각 총사퇴와 조기 총선을 요구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마스와 전쟁 때문에 이스라엘 혁신창업 생태계가 많이 어렵다고 들었다.
전쟁 초기에는 스타트업에 종사해 온 예비군들이 사병과 장교 신분으로 전쟁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기업 경영도 어려워지고, 계획됐던 투자 유치도 중단해야 했다. 이젠 좀 다르다. 아직 전쟁 중이긴 하지만 전장으로 갔던 예비군들도 돌아오고 있고 중단됐던 투자도 다시 살아나고 있다. 내 아들도 이스라엘 애플에서 일하는 전기분야 엔지니어인데, 전투병으로 참전했다가 최근 돌아와 직장에 복귀했다.
그래도 전쟁이 이스라엘 창업 생태계에 영향을 꽤 입혔을 것 같다.
전시 중이기는 하지만 글로벌 차원에서 보면 그다지 큰 차이는 없다. 기준금리 인상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은 다른 국가들과 비슷한 상황이라 생각한다. 다만 지역적으로 보면 유럽과는 비슷하고, 미국보다는 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분기부터는 줄어들었던 투자도 안정화 돼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스라엘 스타트업에 연간 투자되는 금액이 80억 달러(약 11조 500억원)에 달한다. 최근 큰 딜(계약)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다음 분기에는 이런 수치가 더 안정화할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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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아이는 이스라엘 창업생태계의 대표적 모범사례다. 암논 샤슈아 히브리대 교수가 창업한 자율주행 시스템 기업 모빌아이는 2017년 인텔에 약 17조원에 인수됐다. 사진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모빌아이의 시스템이 장착된 차량에 시승하는 모습.[UPI=연합뉴스]

여전히 전쟁 중인데 어떻게 창업생태계가 살아날 수 있나.
이스라엘혁신청이 전시 상황에 놓은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발 빠르게 내놨다. 첫째는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브리지펀드다. 혁신청이 기존 투자자들과 함께 6개월 미만의 딥테크(deep tech) 스타트업 250곳에 총 4억 세켈(약 1528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둘째는 ‘요즈마 2.0’이라 불리는 특별 프로젝트다. 옛 요즈마펀드와는 다른 거다. 정부가 총 6억8000만 세켈(약 2580억원)을 벤처캐피털(VC)에 투자하면, VC는 매칭 형식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요즈마 2.0 펀드가 스타트업에 30센트를 투자하면, VC가 1달러를 추가로 투자하는 식이다. 이렇게 총 10억 달러(약 1조 3800억원)의 자금이 스타트업에 들어가게 된다. 새로운 스타트업을 키우기 위한 인큐베이션 프로그램도 애초 계획보다 앞당겨 시작했다. 이 모두가 전쟁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일이다. 

당초 요즈마펀드(Yozma Fund)는 이스라엘 정부가 1993년에 설립한 국부펀드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초기에는 정부가 자본을 제공하고, 민간 투자자들이 추가 자금을 조달하는 형태였다. 이 같은 방식을 통해 이스라엘 VC 시장이 발전하고 현재의 창업 생태계로 성장하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혁신청은 과거 요즈마펀드를 요즈마 1.0, 최근 요즈마펀드를 요즈마 2.0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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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 남쪽 소도시에 위치한 와이즈만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의 정문. [사진 정수경]

전쟁에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되고 있을 텐데 여력이 있나.
스타트업, 특히 정보기술(IT) 분야는 이스라엘 경제의 핵심이다. 이스라엘 국내총생산(GDP)의 20%, 수출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IT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도 전체 인구의 12%나 된다. 이들이 전체 소득세의 30%를 내고 있다. 이 때문에 아무리 전시 중이라도 하이테크 분야는 반드시 지원해야 한다는 걸 정부는 잘 알고 있다. 전시 상황에서 다른 부분들에 대한 예산은 삭감했지만, 혁신청에 대한 예산은 오히려 10억 세켈(약 3795억원) 이상 늘린 이유다. 이게 정부가 시장에 보내는 시그널이기도 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GDP 성장률은 2023년 2.3%, 올해 1.5%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2025년에는 4.5%로 빠르게 회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스라엘의 혁신 기술은 어디서 싹트나.  
복합적이라 할 수 있지만, (와이즈만연구소와 같은) 연구소 아니면 대학의 R&D에서 먼저 싹튼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이 이런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면서, 또 그런 아이디어들이 시장에서 실패한 요인이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해 개선하면서 기술이 자라난다. 어떤 경우엔 회사에 근무하면서 나온 아이디어가 새로운 스타트업 창업으로 이어지고, 주말 저녁에 친구들과 모여 얘기를 나누다가 혁신 기술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다. 혁신기술은 이렇게 복합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런 R&D 기반 혁신기술이 창업과 성장으로 잘 이어지는 비결이 뭘까.
이스라엘의 모든 연구소와 대학은 TTO(Technology Transfer Office·기술이전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스라엘혁신청은 이들을 지원하고 협업하면서 R&D가 기술상용화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성공적인 기술사업화의 대표적 상징은 와이즈만연구소다. 세계 5대 기초과학연구소 중 한 곳인 와이즈만연구소는 한 해 평균 100여 건의 특허를 통해 지식재산을 사업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구기능과 별도로 독립 운영되는 기술이전회사 예다(YEDA)를 통해 세계 74개국에 기술을 수출하고 있다. 예다는 1959년에 설립된 세계 최초의 연구소 산하 TTO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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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즈만연구소 캠퍼스 내에 있는 기술사업화 전문 지주회사 예다의 건물. 로열티 수입만 연간 1000억원이 넘는 로열티를 거둬들이는 곳이지만, 건물도 단층으로 소박하고, 직원은 20명에 불과하다. 최준호 기자

『스타트업 네이션』(Start-up Nation)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창업국가 이스라엘은 여전히 유효한가.
적어도 지금은 스타트업 네이션이라는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다. R&D와 스타트업, 기업공개(IPO) 등의 통계를 보면 이스라엘이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의 리더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전환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 네이션에서 유니콘(Unicorn) 네이션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간 성장해온 스타트업들이 중견·대기업으로 갈 수 있도록 육성되고 있는 단계다. 유니콘은 원래 상장 전 기업가치가 10억 달러를 넘는 경우를 말하는데, 내가 말하는 이스라엘의 유니콘은 연간 매출 10억 달러를 넘는 기업들이다.
이스라엘이 한국과 협업하려는 이유는 뭔가.
한국은 기술 강국이다. 자동차·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한국의 첨단 기술 역량과 이스라엘의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 사고를 결합해 양국 기업 간 세계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협력 관계를 형성하는 게 이번 방문의 주목적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말하고 싶다. 반도체산업은 이스라엘과 한국이 상호 보완적이다. 아시다시피 한국의 반도체 제조기술은 세계적이다. 이스라엘엔 반도체 설계 디자인에 종사하는 인력만 4만 명에 달한다. 양국이 이런 강점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알론 스토펠 이스라엘혁신청 의장

1968년생. 테크니온공대 전기공학 학부를 졸업하고 텔아비브대에서 경영학으로 석사학위를, 전자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스라엘 국방부 군사 무기 및 기술 인프라 연구개발국을 거쳐, 다국적 방산 및 항공우주 기업 엘빗시스템스의 부사장 겸 수석과학자를 지냈다. 지난 2월 이스라엘혁신청 의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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