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세계 최대 구리광산 가졌다…독립 앞둔 섬나라, 미·중 눈치싸움 [세계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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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의 파푸아뉴기니로부터 분리독립을 추진 중인 부건빌이 미국과 중국 패권전쟁의 새로운 격전지로 떠올랐다. 중국은 부건빌을 ‘미국의 앞마당’으로 불리는 남태평양에서의 영향력을 키우는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 부건빌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 구리 광산 개발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치르는 부건빌에선 ‘미국이냐, 중국이냐’ 하는 선택이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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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마엘 토로아마 부건빌 자치정부 대통령. 페이스북

194번째 국가로 독립 준비 중

현재 자치 정부가 상태인 부건빌은 파푸아뉴기니와 솔로몬제도 사이에 위치한 두개의 섬(부건빌섬·부카섬)으로 구성됐다. 총면적은 9384㎢으로 제주도(1848㎢)의 5배 크기다. 인구는 25만 명이다.

부건빌은 18세기 프랑스에 의해 발견돼 프랑스·독일·영국·호주·일본 등 여러 나라에 점령된 적 있다. 2차대전 이후 호주의 신탁통치를 받던 파푸아뉴기니의 일부가 됐고, 1975년 파푸아뉴기니가 독립할 때 강제 편입됐다.

하지만 파푸아뉴기니와 민족·역사·문화가 전혀 다른 부건빌에서 분리 독립 요구가 커졌고, 1988~97년 9년간 내전으로 최대 2만여 명의 부건빌 주민이 사망하는 희생도 치렀다.

2001년 내전을 공식 종식하며 맺은 평화협정에 따라 자치 정부로 인정받았다. 2019년 독립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치러 98% 지지율로 독립이 가결된 바 있다. 부건빌은 내년 대선을 치른 뒤, 2027년 분리독립을 완성하는 게 목표다. 이에 성공하면 부건빌은 세계에서 194번째 신생 국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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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하지만 독립 추진은 주민들의 열망과 달리 지지부진한 상태다. 일단 2019년의 독립 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없으며, 파푸아뉴기니 의회 비준을 거쳐야 공식화된다. 파푸아뉴기니에선 부건빌의 독립이 다른 섬들의 분리독립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양측 간 회담도 결렬된 상태다. 게다가 재정 기반이 취약한 부건빌은 독립 자금 확보도 시급한 지경이다.

美, 파푸아뉴기니 눈치 VS 中, 구리광산 손 뻗쳐

때문에 부건빌은 파푸아뉴기니를 압박하고 독립 자금을 지원할 '파트너' 찾기에 나섰다. 부건빌 자치 정부는 미국·호주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2020년 자치정부 대통령에 당선된 이슈마엘 토로아마는 부건빌혁명군 출신으로, 평생을 독립을 위해 싸워온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DC를 찾아가, 미국이 다른 태평양 국가에 제공하는 지원을 부건빌로 확대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부건빌은 미국의 친구가 되고 싶다” “부건빌 주민들은 자유와 정의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은 부건빌에 대한 지원이 자칫 파푸아뉴기니를 등 돌리게 할 수 있어 고민하고 있는 상태라고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전했다. 파푸아뉴기니는 오세아니아주에서 호주 다음으로 큰 국가이자 호주 바로 위에 자리한 전략적 요충지다. 만약 이곳이 중국과 손잡으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인도·태평양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 미국·호주·일본·인도)에 큰 위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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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뉴기니 총리 제임스 마라페가 지난 4월 수도 포트모르즈비에서 중국 외교부장 왕이와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실제로 파푸아뉴기니는 지난해 미국 ·호주와 안보 ·치안 분야 협정을 체결했고, 중국과는 몇년 동안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정책을 통해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진행하는 등 경제 협력을 강화하며 줄타기 행보를 보여왔다. 올초 중국은 파푸아뉴기니에 경제뿐 아니라, 안보·치안까지 협력하자고 제안해 미국과 호주를 긴장시킨 바 있다.

미국이 머뭇거리는 사이, 중국은 재빠르게 접근했다. 중국은 부건빌을 새로운 독립국으로 만들어 '일대일로'에 끌어들이는 게 목표다. 워싱턴포스트(WP)는 “남태평양이라는 중요한 입지, 취약한 정치·경제 상황, 그리고 세계 최대 구리 매장지라는 부건빌의 여러 상황은 중국 공산당에 너무도 매력적인 조건”이라면서 “2022년 솔로몬제도와 안보협정을 체결한 중국에게 부건빌은 손쉬운 다음 타깃”이라고 전했다.

이미 파푸아뉴기니에서 일대일로를 시작한 중국은 2016년 파푸아뉴기니 내 14개 연안 도시와 부건빌을 잇는 해저 케이블망 사업을 수주했고, 이후 부건빌의 그린필드(생산 시설을 새로 짓는 투자) 채굴 프로젝트도 벌이는 등 부건빌의 인프라 사업에도 야금야금 손을 뻗쳐왔다.

최종 목표는 부건빌의 구리 광산 채굴권이다. 부건빌섬에 위치한 팡구나 광산에는 현재 530만t의 구리와 1930만 온스의 금이 매장돼 있어 약 600억 달러(약 82조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의 구리 매장량은 단일 광산 기준, 세계 최대 규모다. 중국은 세계 최대 구리 소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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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팡구나 광산은 내전이 한창이던 1989년 폐쇄됐다. 토로아마 대통령은 팡구나 광산을 재개해 부건빌 독립 자금의 일부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35년간 폐쇄된 광산 재개에는 천문학적인 자금과 첨단 기술이 필요해 외국 기업의 투자가 절실하다. 현재 호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는 물론 중국 광산기업들이 팡구나 광산 채굴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내년 대선, 친중·친미 대결 양상 

내년 대선을 앞둔 부건빌 정치권은 이미 친미와 친중으로 갈라졌다. 대표적인 친중 후보인 야당의 샘 카우오나는 중국과 안보협정을 맺은 솔로몬제도의 마나세 소가바레 전 총리를 칭찬하며 “나 역시 유사한 협정을 맺는 데 열려 있다”고 공언했다. 또 “중국의 일대일로에 우선순위를 주는 것이 정상적인 판단”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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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구나 광산의 모습. 부건빌 자치정부 페이스북

재출마를 준비 중인 토로아마 대통령은 중국이 아닌 미국과 손잡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상태다. 하지만 그의 당선을 확신할 수 없다고 WP는 전했다. 미국 안보분야 싱크탱크인 미국평화연구소(USIP)는 “남태평양을 베이징에 더 가깝게 옮겨선 안된다”면서 “지금은 미국이 부건빌과 파트너십을 구축할 작은 기회가 열린 중요한 순간일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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