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국 가면 OO 테스트부터"…요즘 외국인들의 K탐험 [비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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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트렌드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일들도 반복되면 의미가 생깁니다. 일시적 유행에서 지속하는 트렌드가 되는 과정이죠. 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에서는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서 유의미한 ‘통찰(인사이트)’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부산의 한 찜질방에 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손님들이 내국인 반, 외국인 반 정도인 데다 곳곳에서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가 들려와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헷갈릴 정도였죠. 압권은 때밀이 서비스에 긴 줄을 선 대부분이 외국인이라는 점이었어요.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에 따르면 올해 1~6월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486만6000명. 코로나19 이전 2019년 같은 기간 대비 88.8%까지 회복했죠. 실제로 서울의 주요 관광 거점인 명동이나 홍대에 가보면 외국인 관광객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어요. 물론 코로나19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점도 있죠. 기존 관광 거점이 아닌 한남동·성수동·연남동 등 이른바 ‘핫플’에 외국인들이 출몰하고 있다는 점이죠. 오늘 비크닉은 달라진 외국인 관광 트렌드를 다뤄요. 이런 트렌드에서 어떤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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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는 서울 성수동에 서울의 색을 담은 기념품 팝업 스토어가 열리고 있다. 사진 위클리 캐비닛 공식 인스타그램 @weeklycabinet

‘서울’ 박힌 에코백이 잘 팔리는 이유

지난달 22일 성수동 연무장길에 위치한 ‘서울 기프트 센터’를 찾았어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전시를 진행했던 ‘위클리 캐비닛’이 기획한 팝업 스토어로, 서울에 와서 살만한 선물이나 기념품을 판매하는 숍이에요. 식상한 기념품이 아니라 서울의 색을 담은 에코백부터, 예쁜 패키지의 약과 같은 선물용 간식거리가 주를 이뤄요.

지난 4월 30일부터 6월 24일까지 1차 숍이 열렸고, 호평에 힘입어 오는 7월 20일부터 약 두 달간 2차 숍이 예정돼 있어요. 허수돌 위클리 캐비닛 디렉터는 “하루 평균 300명 정도의 외국인들이 오는 데 요즘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전형적 기념품보다는 젊은 취향을 반영한 감각적 디자인 상품을 선호한다”고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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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관광이 아니라 개별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관광 콘텐트에 대한 요구가 나온다. 사진 위클리 캐비닛 공식 인스타그램 @weeklycabinet

명동·궁 관광 일색에서 ‘힙’ 찾아 성수·한남으로

인사동이 아니라 성수동에 기념품 숍이 생기는 건 요즘 서울 관광 지도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죠. 특히 20·30 젊은 외국인들은 단체 관광보다는 개별 관광을 즐기고, 궁궐이나 남산 같은 전통적 관광 지역보다 성수동 팝업 투어, 연남동 카페 투어 같은 취향 기반의 체험 관광이 가능한 지역을 선호하죠. 관광공사 데이터랩에 따르면 올해 1~4월 성수동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약 21만 명. 지난 2019년 같은 기간 대비 5배나 증가한 수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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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을 찾는 관광객들이 편의를 위해 지난 9일부터 운영되고 있는 '성수동 움직이는 관광 안내소' 사진 성동구

부동산 리서치 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성수동은 여타 어느 상권보다 높은 외국인 매출 증가율을 보인다고 해요. 특히 뷰티·패션·편의점 등에서 성장이 두드러져요. 성수동에 있는 한 헬스 앤 뷰티숍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에 전년 대비 외국인 결제 증가율이 1000% 상승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어요.

남신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이사는 “(관광객들 사이) 호텔이 몰려있고 교통이 편리한 명동과 홍대의 인기가 여전한 가운데, 최근에는 ‘K-컬처’ 유행을 타고 외국인들의 여행 패턴이 바뀌면서 한국 MZ세대가 좋아하는 상권에 개별 관광객이 증가하는 모습이 포착된다”고 진단했어요. 이들의 소비 패턴 역시 달라지고 있고요. 코로나19 이전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한국의 저가 화장품 인기에 힘입어 명동 화장품 숍이 잘됐다면, 최근에는 K컬처의 직접적 혜택을 받는 패션 브랜드들이 주목받으면서 관련 브랜드가 모여 있는 성수·한남동 상권이 떠오르는 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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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에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은 최근들어 급증하고 있다. 자료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아이돌 화장하고, ‘퍼스널 컬러’ 테스트

외국인들이 가는 동네가 달라진 것이 첫 번째 변화 양상이라면, 두 번째는 체험하는 콘텐트가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김치 만들기나 한복 입고 궁궐 거닐기 등 전통 체험이 전부였다면, 최근에는 퍼스널 컬러 테스트, 한강에서 라면 먹기, 아이돌 메이크업 후 사진 촬영하기 등 동시대 한국 문화 체험으로 확대하는 추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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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관광재단은 메이크업 브랜드 에스쁘아와 함께 매월 한 차례 한류 스타 메이크업 클래스를 무료 운영하고 있다. 사진 서울관광재단

자기 고유의 색이 ‘쿨톤(차가운 색)’인지 ‘웜톤(따뜻한 색)’인지, 어울리는 계절감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퍼스널 컬러 테스트가 특히 이목을 끌고 있어요. 퍼스널 컬러 진단 업체 ‘컬러가 산다’에 따르면 홍대 인근 지점의 경우 하루 평균 30~40명의 외국인 손님들이 방문해 컬러 진단을 받는다고 해요. 성수기 기준 한 달에 1000명 넘게 방문하는 셈이죠. 이곳 정재욱 대표는 “지난해부터 외국인 손님들이 물밀 듯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외국어로 진단할 수 있는 상담사를 배치하고, 인스타그램 DM으로 외국어 안내를 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주로 일본 취재진들에게 한국 콘텐트를 안내하는 타노인터내셔널 송신해 실장은 최근 도자기 만들기, 향수 만들기 클래스나 아이돌 메이크업 받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어요. 아이돌 메이크업을 받은 뒤 즉석 촬영까지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특히 인기래요. 즉석 촬영도 K-팝 뮤직 비디오에 나오는 것처럼 부감으로 위에서 촬영하는 것을 선호하죠. 송 실장은 “20년 정도 같은 일을 했는데, 요즘처럼 실시간으로 서울 구석구석에 대한 정보를 궁금해하는 경우가 없었다”며 “인스타그램으로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더 빠르게 ‘힙’한 장소를 찾아내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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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퍼스널 컬러 테스트를 받는 외국인들의 콘텐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 유튜브 화면 캡처

라면 도서관, 호텔에선 ‘K-푸드의 날’ 운영도

기업도 이런 외국인 관광객들의 수요 맞춰서 다양한 문화 콘텐트를 선보이고 있어요. 편의점 CU의 ‘라면 라이브러리’가 대표적이죠. 지난해 말 서울 홍대 인근에 230여 종의 라면을 망라한 이색 편의점 공간을 만들어 한국에 관광 오는 외국인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곳이에요. CU에 따르면 이곳의 전체 라면 매출에서 외국인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68%로 내국인을 압도해요. 지난 6개월간 이곳에서 판매된 라면만 총 9만여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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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인근 편의점 CU의 '라면 라이브러리'. 외국인 고객이 더 많은 곳으로, 지난 6개월간 9만개의 라면이 팔렸다. 사진 CU

호텔가에서도 변화가 감지돼요. 조선호텔앤리조트 관계자는 “지난해 4월을 기준으로 서울권 호텔들은 외국인 투숙객 비중이 80%를 상회하는 등 거의 회복 단계며, 과거 비즈니스 투숙객에서 여가 목적으로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느는 추세”라고 말했어요. 실제로 이 호텔 컨시어지에도 유명 맛집이나 유행하는 장소, 현재 진행 중인 팝업 등을 묻는 경우가 많아 이를 위한 별도의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매번 업데이트할 정도죠. 소맥·도토리묵 등 한국 음식을 주제로 라운지에서 한 달에 한 번 ‘K-푸드 데이’ 행사를 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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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틴 조선 서울에서는 한 달에 한번 클럽 라운지에서 'K-푸드'를 테마로한 행사가 열린다. 사진은 광장시장 테마. 사진조선호텔앤리조트

관광객들, ‘찐’ 로컬 감성 원한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으로는 ‘개별 관광객 증가’와 ‘K-컬처’가 꼽혀요. 패키지 여행객이 줄고 개별 관광객이 늘면서, SNS를 활용해 직접 관광 정보를 파악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한국의 실제 소비 트렌드가 관광에까지 반영됐다고 분석돼요. 예를 들어 최근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지로 꼽히는 여의도 더현대 서울은 내국인에게도 핫한 장소죠. 지난해 더현대 서울에 방문한 외국인 고객 수는 전년 대비 891% 증가했어요. 반면 단체 관광객에게 주로 의존했던 면세점은 관광객이 늘어도 좀처럼 회복 신호가 보이지 않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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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뉴욕 로어이스트사이드에 한글 간판을 단 기사 식당이 문을 열어 화제가 됐다. 사진 구글맵

지난 봄 뉴욕 맨해튼에 기사 식당 ’KISA’가 등장해 화제가 된 적이 있어요. ‘돼지 불백’ ‘계란찜’ 등 한국식 백반을 제공하는 식당인데, 메뉴는 물론 한글 간판과 특유의 복고 감성 인테리어로 개점 직후부터 긴 대기 줄이 늘어섰죠. 단순한 한식 메뉴가 아니라, 기사 식당이라는 한국 특유의 문화를 함께 소개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얘기가 나와요. ‘찐’ 로컬 감성. 지금 한국을 탐험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느끼고 싶어하는 지점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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