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빵지 순례, 3시간 웨이팅도 OK"…순번표 받고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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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1시쯤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유명 빵집 앞이 입장 대기 중인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김서원 기자

21일 오후 1시쯤 서울 종로구 계동의 한 유명 빵집 앞. ‘빵지 순례’(빵+성지순례) 장소로 입소문이 난 이곳은 장맛비가 휩쓸고 난 뒤 찾아온 폭염에도 빈자리 없이 북적였다. 매장 입구에도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손님들로 붐볐다. 매장에서 식사하기 위해 대기 중인 손님은 60팀으로 예상 대기 시간은 약 2시간 30분~3시간에 달했다.

그런데 이날 빵집 앞에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손님들의 80~90%는 외국인이었다. 대부분의 한국인 손님들은 대기 순번 표를 받고 나자 근처 카페나 다른 볼거리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었다.

빵집 앞에서 만난 유지성(26)씨는 “대기 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빵집이어서 도착하자마자 대기 먼저 걸어놨다”며 “그 시간을 때우기 위해 식당이나 주변에서 구경할 거리 등 미리 계획을 세워놨다”고 말했다. 유씨처럼 줄에 서 있던 김모(25)씨는 “예약을 걸어놓은 다음 가게 앞에서 주구장창 기다릴 생각은 없다”며 “근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관람하려고 미리 (표를) 예매해놨다”고 설명했다. 가게에 들어가기 위해 1시간 넘게 기다렸다는 A씨도 “유명한 곳이다 보니 3~4시간 기다리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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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1시쯤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유명 빵집에서 한 손님이 입장을 위해 번호표를 받고 있다. 김서원 기자

유명 맛집·카페 등에 입장하기 위해 오랜 시간 대기하고 그동안 주변의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0차 문화’가 MZ 세대의 신풍속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0차’란 긴 대기시간이 소요되는 유명 맛집에서의 ‘1차’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거나 다른 일정을 소화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상에선 ‘OO 카페 웨이팅 중 주변 놀 거리 추천’ 등의 후기를 공유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 중구에 사는 조진현(42)씨는 “순번 표를 받아놓고 근처 카페 같은 데서 시간을 보내는 게 이젠 당연한 수순”이라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대기 예약을 걸어 두면 실시간으로 몇 번째인지 확인할 수 있고 입장 10분 전 알림에 맞춰 식당으로 오면 되니 편하다”고 했다.

테이블링·캐치테이블 등 앱을 활용해서 원격 대기 줄을 설 수 있게 된 게 0차 문화의 확산 요인으로 꼽힌다. 캐치테이블에 따르면 원격 대기(웨이팅) 기능이 도입된 지난해 6월부터 1년간 누적 웨이팅 수는 1710만건을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일평균 이용자 수도 4만600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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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의 한 유명 빵집 들어가기 위해 21일 오후 1시 8분에 대기를 걸었는데 약 2시간 후인 오후 3시쯤 '지금 입장'하라는 알림을 받았다. 독자 제공

전문가들은 0차 문화 배경에는 애플리케이션 등 기술 발전뿐만 아니라 SNS의 영향, 그리고 ‘직접 체험’에 가치를 두는 젊은 세대의 심리가 있다고 짚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과거 세대가 자산 등의 물질적 요소를 중요시했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비교적 사소하지만 행복을 줄 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는 데 가치를 둔다”며 “그런 체험을 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에 개의치 않아 하는 경향이 있다. 대기하는 시간에도 또 다른 체험을 추구하는 경향 등이 작용하면서 0차 문화가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들은 소유 가치보다는 경험 가치에 대한 희소성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오랜 시간을 들이더라도 ‘유명한 데를 갔다’라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는 등 여러 경험을 했다는 데 가치를 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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