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동물병원도 CT 찍는데…아동병원선 장비 없어 치료 못해" [위협 받는 소아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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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의정부 튼튼아동병원 원장)이 지난 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병원에 입원했던 중증 소아환자의 초음파 검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남수현 기자

"소아 응급환자 진료, 우리가 해야 한다면 해야죠. 그런데 손에 도구는 좀 쥐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은 의료공백 속 아동병원의 '소아응급실화'가 현실이 된 만큼, 아동 환자를 잘 보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걸 수차례 강조했다. 지난 9일 그가 원장으로 있는 의정부 튼튼어린이병원 진료실에서 만난 자리에서다.

아동병원이 소아 응급·중증 환자를 받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장비'다. 최 회장에 따르면 아동병원들은 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MRI) 장치 등 중증 환자 진료용 장비를 두지 못한 채 응급 환자를 받고 있다. 아동병원은 대개 30~80개 병상을 보유한 2차 의료기관인데, 정부는 CT·MRI 등 고가의 특수의료장비를 200병상 미만 의료기관엔 설치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최 회장은 "요즘엔 동물병원에도 CT·MRI가 있는데, 아동병원은 이런 규제 때문에 검사와 치료를 하기 어렵다"면서 "얼마 전에도 병원에 뇌수막염 환자가 왔는데, 우리는 장비가 없어 검사해줄 형편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의료장비 규제는 무분별한 설치에 따른 과다 사용을 막기 위해 도입됐지만, 사실상 소아응급실 역할을 하는 아동병원엔 '족쇄'로 작용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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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의정부 튼튼아동병원 원장)을 지난 9일 만나 아동병원이 '소아 응급실'이 되어가는 현상의 문제점과 대책을 들었다. 남수현 기자

최 회장은 "CT가 없으니 (그보다 간단한) 초음파 검사로라도 어떻게 맹장염을 찾을지, 그런 노하우를 공유하는 게 요즘 아동병원 학회 내용"이라며 "응급실 같은 수준의 진료를 하려 해도, 그 수준의 검사를 했다간 '(수가)삭감 폭탄'을 맞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병원 응급실은 장비·인건비 관련 정부 지원이 많지만 아동병원은 없다. 응급실 일은 다 보게 하면서 치료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은 여의치 않으니 아이들 건강이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중증 소아환자 담당인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를 전국 14곳에 지정해 시설·장비 비용 등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의료기관으로 확대하려면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아동병원에 대한 장비 지원을 위해선 실질적인 근거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중장기적으로 소아의료체계를 정상화하려면 대형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중심으로 보상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봤다. 저출생에 따른 수요 감소 등이 예상되는 것과 달리, 보상은 적고 의료사고 부담이 큰 만큼 기피 현상이 심해졌다는 것이다. 이대로면 필수의료인 소아과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겼다. 그는 "소아과 교수에 대한 진료비, 야간 당직비 등 보상을 충분히 올려줘야 '소아과 해도 괜찮겠다'는 인식이 조금이나마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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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경기도 의정부시 튼튼어린이병원 진료 대기 공간이 어린이 환자와 보호자들로 붐비는 모습. 남수현기자

중증·응급 아동 환자 진료에 따른 의료소송 부담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소아과 중에서도 소송 부담이 큰 소아외과 기피가 특히 심해지면서 장중첩증 같은 질병의 치료 기술도 사라질 위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치료가 꼭 필요한 아이가 생겼을 때 우리에게 치료 역량이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냐"면서 "인력 수급 생태계부터 살리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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