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가사·육아 부담 오롯이 짊어져…출산 후 女 절반이 일 그만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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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2일 오후, 영등포구 소재 한 공동육아방. 다양한 장난감, 교보를 가지고 아이들이 놀이하는 모습. 박종서 기자

결혼 3년 차인 김모(32)씨는 지난해 10월 첫째 아이를 출산했다. 오는 9월 복직 예정인 김씨는 “일단 친정엄마한테 아이를 부탁할 예정”이라며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기 어려워 1~2년 뒤 직장을 그만두는 쪽으로 남편과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을 다니던 여성의 절반은 출산 이후 일을 그만두는 것으로 조사됐다. 근로시간이나 임금을 유연하게 조정할 여지가 없어 일과 양육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22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김민섭 부연구위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일·가정 양립을 위한 근로 환경’ 보고서를 발표했다.

1998~2021년 한국노동패널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남성은 결혼·출산 전후 고용률에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던 반면 여성은 상당 수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결혼 직후부터 4년까지(단기) 여성의 고용률은 39%, 결혼 5년 후부터 10년까지(장기)는 49.4% 하락했다. 즉 결혼하기 전에 일하던 여성 10명 중 4명이 결혼 후 5년 이내에 일을 하지 않았고, 10년 후에는 절반이 일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특히 요리사·검침원 등 업무상 마감 시한이 촉박하고 근무시간이 불규칙한 업종에 종사하는 여성일수록 고용률 하락 폭이 더 컸다. 마감 압박이 상대적으로 낮은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결혼 3년 뒤 고용률은 결혼 직전보다 46.5% 감소했지만, 시간 압박이 큰 여성은 59.1%나 줄었다.

결혼뿐 아니라 출산도 여성의 고용률 하락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드러났다. 출산 전까지 일하던 여성은 아이를 낳은 직후부터 4년까지 고용률이 47.1%, 출산 5년 후부터 10년까지 43.4% 하락했다. 김민섭 부연구위원은 “출산 5년 이후부터 다소 점진적인 회복 추세가 나타나지만, 그 폭은 한정적”이라며 “고용률 하락 여파가 매우 크고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하락 폭이 두드러졌다. 출산 5~10년 기준, 미국·유럽 5개국(영국·오스트리아·독일·스웨덴·덴마크)과의 고용률 하락 폭을 비교하면 한국(43.4%)이 영국(43.7%) 다음으로 하락 폭이 높았다. 스웨덴(5.2%)·덴마크(12.5%)·독일(29.7%) 등과의 차이도 컸다.

김 연구위원은 “노동시장에서 결혼·출산 이후 근로자가 가사·육아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 된 경우 근로시간이나 임금을 유연하게 조정할 여지가 없고 노동시장 이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향이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일자리를 포기할 필요 없이 근로시간이나 임금을 조정해 육아와 경력 형성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지가 필요하다”며 “근로시간 압박이나 장시간 근로 관행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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