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84년생 비보이’ 김홍열 “파리 한바탕 휘젓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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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이 된 브레이킹에 출전하는 김홍열. 불혹의 나이에 태극 마크를 단 그는 ‘올림픽 사상 첫 브레이킹 금메달’에 도전한다. [사진 CJ그룹]

생동감 넘치는 비트가 심장을 울린다. 배틀이 시작되면 댄서가 현란하게 스텝을 밟으며 무대를 휘젓는다. 일반인은 쉽게 흉내 낼 수도 없는 헤드스핀과 윈드밀, 프리즈, 에어트랙 등 고난도 기술이 잇달아 펼쳐진다. 그 순간, 객석에선 환호성이 끊임없이 터져 나온다.

길거리 댄스로 출발해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한 브레이킹이 마침내 정식 스포츠로서 세계무대 데뷔전을 치른다. ‘비보잉’이란 이름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브레이킹은 26일(한국시간) 개막하는 2024 파리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정상급 비보이 16명과 비걸 16명이 출전하는 이번 브레이킹 종목에서 유일하게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는 김홍열(40·활동명 홍텐)의 출전 소감을 들어봤다.

김홍열은 “어릴 적 우연히 시작한 춤으로 올림픽 무대까지 밟게 됐다. 파리올림픽은 브레이킹 종목으로서도, 나 개인으로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최초의 댄서 올림피언으로서 춤으로 파리를 휘젓고 오겠다”고 밝혔다.

브레이킹은 1970년대 초반 미국 뉴욕에서 힙합 댄스의 한 장르로 시작됐다. 과거에는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의 거리 문화쯤으로 여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난도 기술과 예술성이 결합된 스포츠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파리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일반인의 인식도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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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김홍열과 춤의 운명적인 만남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홍열은 “1998년으로 기억한다. 친구가 내게 춤 동작 하나를 보여주면서 ‘따라 춰볼 수 있겠냐’고 묻더라. 그 자리에선 쉽지 않았는데 집에서 다시 동작을 따라 해보니 의외로 괜찮게 나오더라. 그때부터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2001년 처음 나간 세계 대회를 시작으로 춤이 내 인생의 전부가 됐다”고 밝혔다.

1984년생인 김홍열은 비보이로서도 적잖은 나이다. 그래서 이번 파리올림픽에는 출전하지 않으려고 했다. 처음에는 실력이 뛰어난 후배들에게 양보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성적을 떠나 즐거운 추억을 쌓은 뒤 커리어를 마무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김홍열은 “불혹의 나이지만, 뭔가 새롭게 도전해볼 수 있는 무대가 열렸다는 사실이 가슴을 뛰게 했다. 최초의 브레이킹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란 타이틀에도 욕심이 났다”고 했다.

파리올림픽에서 브레이킹은 4명씩 4개 조로 나뉘어 라운드 로빈 방식으로 열린다. 한 경기는 3라운드로 구성하는데 2개 라운드 이상에서 승리를 거둬야 한다. 두 선수는 무작위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이에 어울리는 춤을 60초 동안 번갈아 춘다. 9명의 심판진은 기술성과 다양성·독창성·수행력·음악성을 따져 승자를 결정한다. 김홍열은 “브레이킹은 어려운 기술을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인간의 한계를 깨뜨리는 무한한 가능성이 브레이킹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부터 CJ그룹이 김홍열을 후원하고 있다. 골프와 수영·테니스·빙상·육상 등 다양한 스포츠 종목을 지원하는 CJ그룹은 2021년 김헌우(윙)와 박인수(킬), 전지예(프레시벨라) 등과 계약해 뒷바라지를 했고, 2022년 10월에는 세계브레이킹선수권대회를 후원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국내 대회(비비고 얼티밋 배틀)를 개최해 브레이킹 종목의 ‘키다리 아저씨’로 자리매김했다.

김홍열은 “스포츠로서는 아직 생소한 브레이킹 종목을 후원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한국 선수들이 국제무대에서 계속 좋은 성과를 내는 원동력이 된다”며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파리 무대를 한바탕 휘젓고 오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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