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비한계 "패트 파동 심각성 몰라"…韓캠프 "사과하지 말 것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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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가 한동훈 후보에게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를 둘러싼 ‘읽씹’(읽고 무시)으로 시작했던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가 막판에는 5년 전 발생한 패스트트랙 사건의 ‘공소 취소’ 논란으로 치닫고 있다. ‘넥스트(next) 보수의 진보’라는 전당대회 슬로건이 무색할 만큼 과거를 둘러싼 공방만 부각되고 있다.

전당대회 책임당원 ARS 투표 마지막 날인 22일에도 당내 공방은 패스트트랙 논란에 집중됐다. 한 후보가 17일 TV 토론회에서 나경원 후보를 향해 “본인 패스트트랙 사건을 공소 취소해달라고 (법무장관인 내게) 부탁하지 않았나”라고 지적한 발언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온종일 당내 곳곳에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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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30일 새벽 여의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위)가 열린 정무위원회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특히 이날 저녁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는 패스트트랙 사건에 연루된 여당 전·현직 의원 10여 명이 모였다. 이만희 의원과 강효상·곽상도·김선동·김성태(비례)·민경욱·윤상직·정태옥 전 의원이 참석했고, 당권 주자인 나 후보, 원희룡·윤상현 후보도 식당을 찾았다.

복수 참석자에 따르면 식사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지만 한 후보의 발언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일부 참석자는 “한 후보가 사건 당사자도 아니고, 직접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통화에서 “민주당 폭주에 몸을 던져 기소당한 희생, 자부심이 통째로 부정당한 것 같다”고 밝혔다. 나 후보는 “재판 동지끼리 속상해서 밥 한 끼 먹기로 한 것”이라고 했지만, 당내에서는 “전당대회 전날 한 후보에게 경고장을 던진, 비(非)한동훈계의 실력행사이자 결선투표를 겨냥한 연대 움직임”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당권 주자들은 이날도 패스트트랙 발언을 고리로 한 후보를 비판했다. 나 후보는 라디오에서 “한 후보가 일부러 발언했다고 본다. 그게 이미지 정치”라고 공격했다. 윤상현 후보는 “한 후보가 나 후보에 대해 인간적인 사과를 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원희룡 후보는 “한 후보는 ‘우리’, ‘동지’가 되는 정치의 기본조차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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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22일 오후 경기 이천시 송석준 의원 사무실에서 열린 이천시 당원협의회를 찾아 연설하고 있다. 뉴스1

반면에 “상대가 인신공격에 집중할 때 미래로 가겠다”며 전면전을 자제해 왔던 한 후보 측도 반격에 나섰다. 정광재 캠프 대변인은 “여야의 (공소취소) 합의가 안 돼서 공소취소를 법무부 장관이 하기 어려웠다”며 “비상대책위원장 사퇴 요구를 받았음에도 지난 1월 패스트트랙 관련해 고생하는 변호인들 지원하려고 간담회도 주재했다”(CBS 라디오)고 설명했다.

이날 대응은 전날(21일) 밤 캠프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서 “사과할 것과 사과하지 말 것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등의 지적이 쏟아지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대화방에서는 1월 22일 당 비대위원장이었던 한 후보가 패스트트랙 사건 변호인단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어 격려한 일도 거론됐다. 이날은 윤·한(尹·韓) 갈등 속 이관섭 당시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한 후보에게 위원장 사퇴를 요구한 다음 날이었다.

대화방에는 “이런 사실 자체를 모르는 당원이 많은데, 우리가 반성할 문제다.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취지의 제안이 올라왔다. 캠프 관계자는 “대화방에는 한 후보도 속해 있었고, 실시간으로 대화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한 후보는 최근 주변에 “역대 어느 당 지도부가 나만큼 패스트트랙 사건의 법률적·정치적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적이 있었나”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여권 일각에서는 “법적으로 매듭짓지 못한 패스트트랙 사태가 향후 친한계와 비한계의 전면전을 자극하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패스트트랙 사태를 직접 겪은 비한계 중진과, 신진 세력으로 부상한 친한계 초·재선 의원의 인식 차이가 갈등의 골을 넓히고 있다는 것이다. 한 중진의원은 “친한계 의원 중 당시 현장에서 스크럼을 짜고 농성했던 사람이 누가 있나”라고 꼬집었다. 반면 친한계 초선 의원은 “경험 못 했으니 입을 닫으라는 얘기야말로 편 가르기”라고 했다.

틈새를 파고든 야권은 공세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당사자가 직접 범죄 행위를 증언한 것”이라며 “반드시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불법적 청탁을 받고 신고하지 않은 것도 수사 대상”이라고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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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6일 새벽 국회 관계자들이 쇠지렛대, 망치 등을 사용해 자유한국당 당직자들이 점거한 국회 의안과 진입을 시도하는 모습. 연합뉴스

패스트트랙 사건 기소 의원에 적용되는 형량이 높은 점이 갈등을 키워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 후보를 포함한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 23명은 ‘국회선진화법’이라 불리는 국회법 166조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유죄가 확정돼 5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나오면 5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이로 인해 21대 국회에서 수차례 “여야 공동으로 공소 취소를 함께 요청하자”는 대화가 오갔으나, 번번이 “왜 국민의힘을 도와주느냐”는 민주당 반대에 막혔다고 한다. 패스트트랙 사건의 여당 측 변호인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애초에 국회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안인데 법원 판단에 맡긴 것부터 사리에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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