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의정갈등 안 끝났는데…의대 당황케 한 의평원 "매년 평가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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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의사협회가 의대 증원 문제로 장기간 극한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15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과 방문객 등이 병원 내부를 이동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한 지역 의과대학장은 최근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으로부터 공문을 받았다. 2025학년도 입학정원이 전년 대비 10% 이상 늘어난 30개 의대를 대상으로 주요변화평가 계획(안) 등에 대한 의견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계획안에는 “올해부터 6년간, 매년 ‘주요변화평가’를 시행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학장은 “평가 일정, 내용 모두 의정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라며 “아예 평가를 못 받겠다고 할 순 없어서 평가 기준만이라도 완화해달라는 의견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의평원은 의대·의학전문대학원이 정원 변경 등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경우 계획서를 제출받아 평가하는 주요변화평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오는 30일 평가 설명회를 시작으로 9월엔 서류 접수, 12월엔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간다. 내년 2월 평가 결과에 따라 인증을 받지 못한 대학은 졸업생의 국가고시 응시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다.

평가 주기 짧고, 항목도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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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평원이 공개한 의대 주요변화평가안. 증원 시점부터 6년 간 매년 평가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평원의 주요변화평가 계획안에 대학들이 당황하는 가장 큰 이유는 평가 주기가 예상보다 짧아서다. 본지가 입수한 계획안에 따르면, 올해 시작되는 주요변화평가는 2025학번 신입생이 졸업하는 2029년까지 매년 실시된다. 지금까지 의평원 의학교육 인증평가는 직전 평가 결과에 따라 통상 2·4·6년마다 이뤄졌다.

안덕선 평가원장(연세대 의대 교수)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요구되는 교육환경이 매년 달라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준비상황을 확인해야 한다”며 “주요변화평가와 별개로 각 의대가 주기적으로 받는 정기평가, 중간평가는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정기적인 인증평가도 한번 받으려면 그해의 의대 내 행정력이 몽땅 투입돼야 한다”며 “이런 평가를 매년 한두 번씩 받으라고 하면 학교로선 부담이 크다”고 했다. 지역 의대 학장도 “인증평가 보고서를 쓰려면 별도 위원회를 만들고 직원들이 자료 조사를 거친 후 의대 교수님들이 각자 분담해서 쓰고 위원회가 다시 검증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매년 하는 인증평가도 이렇게 힘든데 의료계가 반대하는 증원을 위한 평가에 교수들이 참여하겠냐”라고 말했다.

평가 항목이 기존 평가보다 많다는 의견도 있다. 의평원은 정기 평가기준 92개 중 증원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준 51개를 선별해 주요변화평가를 실시할 계획이다. 2017년 서남대 의대생들이 전북대와 원광대로 편입되며 받았던 주요변화평가 당시 기준이 15개 항목이었던 것보다 세 배가량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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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평원 의대 주요변화평가. 상당히 촘촘한 재정확보계획을 요구하고 있다.

평가 기준도 상당히 촘촘하다. 이번 평가에는 강의실 등 교육기본시설 현황·확보 계획부터 학생 식당·매점 등 편의시설 확보 계획까지 모두 제출하도록 돼 있다. 그뿐만 아니라 2030년까지 등록금·교원인건비·교육병원 확충 등 의대 증원에 투입될 재정 확보 계획도 요구했다. 안 원장은 “이번 증원은 기존 학생 수에 비해 2~3배 이상 증가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점검 기준이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국립대 총장은 “아무리 교육부가 전폭적으로 예산을 지원한다지만 지금은 예산 액수, 교원 수도 정해지기 전이라 정확한 수치를 작성하기 어려운 항목들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립대 총장은 “전공의 파업으로 부속병원 손실이 큰 상황에서 정부가 융자 폭을 대폭 늘려주지 않으면 증원하지 말라는 소리와 같다”며 “이런 상황에서 지금 몇 년 후를 내다보고 내용을 써내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고 했다.

교육부 “사전심의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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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5학년도 수시 대학입학정보 박람회를 찾은 학부모가 상담을 받고 있다. 오는 20일까지 열리는 이번 박람회에는 전국 121개 대학이 참가해 진학 상담과 대입 진학 컨설팅 등을 진행한다. 뉴스1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가 반발에 “아직은 공식적으로 평가 기준이 확정된 게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도 “지난 5월 의평원에 평가인증 인정기관 재지정을 통보하며 주요변화계획서 등에 대해 사전 심의하겠다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에 대학 의견 등을 종합해 평가 기준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의평원과 교육부는 의대 증원을 놓고 대립했다. 의평원은 증원이 결정된 올 초부터 지속적으로 “의학 교육의 질 저하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교육부는 지난 4일 "중립을 지켜야 한다"(오석환 차관)고 경고했지만, 의평원은 "고유의 책무를 제대로 이행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방재승 전 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장, 의대생학부모모임(의학모),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등은 1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의평원의 평가 권한 행사를 방해했다”며 교육부를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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