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 대선? 이제 아무도 모른다"…리셋 버튼 눌러버린 바이든 [바이든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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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CNN 스튜디오에서 열린 대선 후보 TV 토론에 참석해 연단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바이든의 결단이 모든 걸 뒤집었다. 대선 판도가 변했다.”(스테판 슈미트 아이오와주립대 교수)

“트럼프가 아직 우세하지만 선거가 ‘미지의 영역’에 들어갔다.”(로버트 슈멀 노터데임대 교수)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81) 대통령의 재선 도전 포기로 지각변동을 맞은 미국 대선의 향후 전망에 대해 미 현지 정치 전문가들은 중앙일보에 이같은 진단을 내놨다.

투표일(11월 5일)을 107일 남긴 시점에서 미 대선이 ‘리셋’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재선에 도전하고 싶었지만 (후보직에서) 물러나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 당과 국가에 최선의 이익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주 후반 자신의 결정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속 당의 과반 이상 대의원을 일찌감치 확보해 공식 후보 선출 절차만 남겨둔 현직 대통령이 대선을 3개월여 앞두고 중도 하차한 건 미 역사상 처음이다. 지난달 27일 대선 후보 TV 토론을 계기로 제기된 건강 이상 및 인지력 저하 논란이 방아쇠를 당겼다.

이어 민주당 안팎에서 불붙은 후보 사퇴론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등 당내 영향력이 큰 ‘빅샷’이 연이어 등을 돌리면서 입지가 급격히 줄었다. 지난 13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총격 후 건재함을 과시하며 강인한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한 것도 고령 리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바이든에 결정타가 됐다.

‘바이든-트럼프 전현직 대결 무산’

이로써 ‘역대급 비호감 대선’으로 불린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와 바이든 간 전현직 대통령의 재대결은 무산됐다. 미 대선 구도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에 휩싸이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대선 후보직에서 물러나며 자신과 3년 반 동안 국정을 함께 이끌어온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대통령 후보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바이든은 “이제 힘을 모아 트럼프를 이겨야 할 때”라며 “카멀라 해리스가 우리 당 후보가 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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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멀라 해리스(오른쪽) 미국 부통령이 2021년 6월 17일 워싱턴 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법안 통과 기념 행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민주당은 해리스 부통령 중심으로 대오를 정비하려는 모습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해리스 지지’ 선언을 밝혔다. 바이든 사퇴 시 잠룡 후보군으로 거론됐던 이들 상당수도 지지 대열에 합류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SNS를 통해 “트럼프 당선을 막으려면 해리스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고 했고, 조시 셔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도 “민주당에 최선의 길은 해리스로 신속하게 뭉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워싱턴포스트(WP)는 “민주당 상ㆍ하원 의원과 주지사 총 286명 가운데 159명이 ‘해리스 지지’를 표명했고 현재까지 로이드 도겟 하원의원 1명만 경선을 주장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의회 영향력이 큰 의원 단체 ‘의회 흑인 코커스’(CBC)와 신민주연합(NDC), 진보 성향 의원들로 구성된 ‘스쿼드’ 등도 해리스 지지 대열에 가세했고, 미 50개 주의 민주당 조직을 이끄는 주(州)당 위원장들이 이날 오후 해리스 지지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다만 오바마 전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은 바이든의 ‘결단’을 “최고의 애국자”라며 높이 평가하면서도 해리스 지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다른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진다면 새 후보 선출이 자유 경선 형태로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해리스 “대선 당선이 목표…트럼프 이길 것”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를 받게 돼 영광”이라며 “이 지명을 받고 당선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또 “민주당을 단결시키고 미국을 통합해 트럼프를 물리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기존 바이든 선대위도 대선 캠프 명칭을 ‘해리스를 대통령으로’로 이름을 바꿨으며 민주당 전국위원회는 해리스의 대선 출마를 반영한 후보 관련 서류를 이날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에 제출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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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직 사퇴를 발표한 21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앞에서 한 남성이 바이든 대통령의 결단에 감사함을 표하는 팻말을 들고 서 있다. AFP=연합뉴스

현 단계에서 대선 후보 승계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이는 흑인ㆍ인도계 여성 해리스가 공식 선출되면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대결 구도는 성별ㆍ나이ㆍ인종 등 여러 측면에서 확연한 대비가 된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대 도널드 트럼프 간 대결 이후 8년 만의 남녀 대결이 재현되며, 해리스(59)보다 19세 많은 트럼프(78)의 고령이 더 부각될 수 있다. 또 백인 대 흑인ㆍ아시아계라는 인종 간 경쟁이란 구도도 짜여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을 겨냥해 “비뚤어진 조 바이든은 대선 출마에 부적합했다. 확실히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도 부적합하다”고 비판했고, 바이든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해리스 지지를 밝힌 데 대해선 “해리스는 바이든보다 (내가) 이기기 쉽다”고 했다.

“미 대선 ‘미지의 영역’ 들어서”

이날 중앙일보 긴급 설문에 응한 미국 전문가들은 “이제 미 대선의 판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입을 모았다. 슈멀 교수는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고, 슈미트 교수는 “미국 정치사에 매우 흥미로운 순간”이라고 했다. 슈미트 교수는 민주당이 그동안의 경선 결과를 무효화하고 8월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후보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는 ‘완전 개방형 전당대회’를 치르는 방안이 표를 모으는 데 한층 유리할 것이란 의견도 밝혔다.

지금까지의 트럼프 박빙 우세 구도가 ‘해리스 대 트럼프’ 대진표 완성 시 변화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웬디 쉴러 브라운대 교수는 “트럼프는 성공적인 전당대회와 강력한 팬덤, 암살 미수 사건으로 인한 동정표 등 여전히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면서도 “그가 만일 자제력을 잃고 해리스에 대해 불쾌한 공격을 가하거나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면 중도ㆍ무당파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표를 던질 수 있다”고 했다. 토마스 슈워츠 밴더빌트대 교수는 “트럼프는 여전히 우위에 있있지만 좌충우돌식 캐릭터를 감안할 때 해리스에게 당선을 안길 수 있는 ‘대형 실수’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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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민주당에 약 600억 기부금 쇄도 

열세였던 민주당 입장에선 적어도 “경기장을 바꿀 수 있는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웬디 쉴러 교수)는 분석도 나온다. 바이든 사퇴 소식이 전해진 이날 민주당엔 하루 만에 약 5000만 달러(694억원)에 달하는 기부금이 들어왔다. 2020년 선거 이후 민주당에 들어온 일일 기부금 액수 중 가장 많은 수준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민주당 기부금 관리 사이트 ‘액트 블루’(Act Blue) 분석 결과를 토대로 “바이든 사퇴 전 시간당 기부금은 약 20만 달러(약 2억7800만 원)에 그쳤는데 사퇴 이후 시간당 1150만 달러(약 160억원)로 크게 뛰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의 하차 소식에 민주당 강세인 실리콘밸리의 업계 리더들은 결단을 높이 평가하며 사의를 표했다. 민주당의 오랜 후원자인 리드 호프먼 링크드인 공동 창업자 겸 회장은 SNS 글을 통해 “재선을 쫓지 않은 것은 역대 미국 정치인 중 가장 이타적인 행동 중 하나”라고 높이 평가했다.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의 전 부인 멜린다 게이츠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 공동 설립자도 “백악관에서 보여준 리더십에 큰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누가 대통령 후보 적임자이냐를 놓고는 의견이 갈렸다. 호프먼 링크드인 회장은 “해리스가 적절한 시기에 맞는 인물”이라고 했지만,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공동창업자는 “민주당 대의원들은 경합주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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