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똘레랑스의 나라답다, 스포츠계 이끄는 이민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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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내 한 빌딩에 달린 프랑스 농구 국가대표 빅터 웸반야마의 대형 광고판. 파리올림픽을 통해 화합을 강조하는 프랑스는 이민 2세 선수들을 앞세워 대회 홍보에 나섰다. [AFP=연합뉴스]

“웸반야마 유니폼은 품절입니다.”

22일 프랑스 파리 샤를레의 한 대형 스포츠용품 매장. 물건을 파는 점원은 ‘품절’이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프랑스 남자 농구대표팀의 ‘신성’ 빅터 웸반야마(20·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유니폼을 사려는 손님이 줄을 잇자 매장 측은 따로 웸반야마 유니폼 관련 응대만 하는 점원을 배치한 것이다.

웸반야마는 2023~24시즌 미국프로농구(NBA) 데뷔 첫 시즌부터 돌풍을 일으킨 특급 스타다.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입단한 웸반야마는 2m24㎝의 거구에도 가드처럼 빠른 드리블에 3점 슛까지 펑펑 터뜨려 ‘외계인’라는 별명을 얻었다. 데뷔 시즌 평균 21.4점에 10.6리바운드, 3.9어시스트, 3.6블록슛을 기록해 만장일치로 신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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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체조 선수를 모델로 한 올림픽 홍보 현수막. 피주영 기자

웸반야마 만큼이나 프랑스인의 관심을 받는 선수가 또 있다. 남녀 유도의 수퍼스타 테디 리네르(35·남자 100㎏ 이상급)와 클라리스 아그벵누(32·여자 63㎏급)다. 웸반야마가 26일 개막하는 파리올림픽에서 프랑스의 차세대 ‘국민 스타’를 예약했다면 리네르와 아그벵누는 이미 프랑스의 ‘유도 국민남매’로 불리는 수퍼스타다. 두 선수 모두 파리올림픽에서 ‘라스트 댄스’를 앞두고 있다.

리네르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역대 최다인 11차례나 우승한 스타다. 남자 유도 최중량급에서 역대 최고의 선수로 불린다. 키 2m7㎝, 몸무게 140㎏의 거구인데도 화려한 기술을 펼쳐 ‘신계의 선수’로 불린다. 올림픽에선 2012 런던, 2016 리우 대회에서 2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8강에서 탈락하며 ‘한물 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11번째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홈에서 열리는 파리올림픽에서 세 번째 금메달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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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 거리 광고판에 실린 프랑스 여자 유도 국가대표 마들렌 말롱가. 피주영 기자

여자 유도의 아그벵누는 리우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데 이어 도쿄올림픽에서는 프랑스 유도 최초로 2관왕(개인·단체전)을 차지했다.

이들 세 명의 선수에 대한 프랑스의 높은 관심은 파리 시내를 1시간만 걸어도 실감할 수 있다. 거리의 건물 외벽, 대형 현수막, 지하철 역사, 광고판 등 파리올림픽 홍보물 대부분을 리네르, 아그벵누, 웸반야마가 장식했다.

미디어도 이들을 주목한다. 파리올림픽 공식 홈페이지는 지난 22일 리네르의 마지막 도전을 집중 조명하는 특집 기사를 게재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수퍼 루키 웸반야마가 이끄는 개최국 프랑스가 미국 ‘농구 드림팀’의 올림픽 5연속 금메달을 저지할 가능성이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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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도 레전드 테디 리네르. [AFP=연합뉴스]

파리 샹젤리제의 대형 스포츠용품 매장에선 웸반야마의 농구 유니폼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 가게 점원 에릭은 “유럽축구선수권이 열린 이달 초까지만 해도 축구 스타 킬리안 음바페(축구)의 유니폼이 인기였는데 최근 올림픽 열풍이 불면서 웸반야마의 프랑스 농구대표팀 유니폼이 날개 돋친 듯 팔린다”고 말했다.

이들 셋의 공통점은 프랑스 ‘이민 2세’라는 점이다. 웸반야마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이다. 아그벵누의 부모는 토고 출신이다. 아그벵누는 프랑스-토고 이중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리네르는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의 과들루프 섬 태생이다. 프랑스령이지만, 기후·문화·환경 등이 모두 달라 사실상 다른 나라로 봐야 한다.

올림픽에 나오지 않는 프랑스 최고 스타 음바페는 아버지가 카메룬, 어머니는 알제리 출신이다. 6년째 프랑스 태권도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정우민(38) 감독은 “프랑스 스포츠는 과거엔 백인의 전유물이었는데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프랑스는 유럽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나라”라며 “이제 ‘다양성(Diversity)’은 프랑스 스포츠의 힘이다.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갖춘 다양한 인종·문화권의 선수들을 발굴한 뒤 프랑스의 체계적인 시스템과 결합해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올림픽에 나선 프랑스 태권도 대표팀 4명 중 3명이 이민 2세다. 프랑스 르몽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프랑스 이민자 인구는 700만 명에 달한다. 이다 도시(55) 숙명여대 프랑스 언어문화학과 교수는 “프랑스는 파리올림픽을 계기로 ‘화합된 하나의 프랑스’를 보여주려고 한다. 다양성이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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