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학원 때릴수록 커졌다…사교육과 전쟁 1년, 매출 31% 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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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치동 학원가. 서지원 기자

23일 오후 3시 서울 대치동 학원가. 여름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줄지어 대형 학원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학원들은 현수막을 내걸고 방학 특강 홍보에 한창이었다. A수학 학원은 “의대와 스카이(서울대·연세대·고려대)를 목표하는 최상위 1%의 고3과 N수생 대상으로 자체 교재와 사설 모의고사로 수업한다”고 했다. 한 단과학원장은 “킬러 문항 배제, 의대 열풍 등으로 대형학원들의 인기가 확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날 대치동에선 교육부 관계자들이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초등의대반 등 과도한 선행학습을 유도하는 곳들을 단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방학 4주 안에 고등 수학 과정까지 가르친다고 홍보했다.

경찰·국세청·공정위까지 나섰지만 학원은 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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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과 전쟁을 선언한 지 1년이 지났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성과는 미미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교사와 문제 거래, 교재 강제 판매로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조사를 받았던 대형 입시학원은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

교육부가 카르텔 척결을 목표로 사교육에 칼을 빼 든 건 지난해 6월부터다. 당시 윤 대통령은 교육부의 교육개혁 방안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수능에서 출제하면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이라며 “교육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 편(카르텔)이란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지나치게 어려운 수능이 되레 사교육을 배불리는 악순환 구조를 ‘카르텔’로 명명한 것이다. 이후 교육부는 곧장 학원에 문제를 독점 판매한 교사들을 감사원, 수사당국에 넘기고 수능 킬러문항 배제 방침을 밝히는 등 사교육 카르텔 혁파 정책을 내놨다. 대형 학원을 대상으로 한 국세청의 특별 세무조사,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도 뒤이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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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사교육 카르텔과 전쟁의 결과는 올해 중반부터 나오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 16일 지난해 전체 학원 탈세 추징액이 286억 원이라고 밝혔다. 전년 추징액 66억 원보다는 4배가량 늘었지만, 지난해 기준 27조 원에 달하는 사교육 시장 규모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한 학원가 관계자는 “조사 기간이 100일 정도로 길었고, 조사 대상 학원 관계자들 개인 통장까지 털었던 대대적인 이벤트였지만 실제로 추징된 금액은 학원별로 수억 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학원의 교재 강매 사안을 조사한 공정거래위원회도 지난달 “처벌 요건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대상 학원들을 무혐의 처리했다.

대형 학원들의 매출은 오히려 늘었다. 메가스터디교육은 2022년 8359억 원에서 지난해 9352억 원으로 증가해 ‘1조 원 매출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유아부터 고등, 대학사업 부문까지 전 영역에서 고르게 매출이 늘어난 영향이다. 시대인재를 운영하는 법인 하이컨시도 같은 기간 2747억 원에서 3605억 원으로 매출액이 31.2%가량 늘었다. 내년 3월 경기 용인시에 전국 최대 기숙학원을 여는 등 사업 확장도 진행하고 있다.

한 학원가 관계자는 “사교육을 잡겠다고 한 것도, 의대 모집인원을 늘리고 수능을 어렵게 내 사교육 열풍을 일으킨 것도 정부”라며 “이런저런 조사를 벌인 게 결과적으로는 대형 학원이 잘 가르친다고 광고한 한 격이 됐다”고 지적했다.

문제 거래한 교사, 송치는 24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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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환 교육부 차관이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열린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범정부 대응 관련 긴급 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당한 문제 거래로 수사 선상에 오른 교사들에 대한 처벌 역시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8월 교육부는 사교육 카르텔 부조리 신고센터를 통해 학원에 돈을 받고 문항을 판매한 교사 297명의 자진신고를 받았다. 당시 교육부는 “한 교사는 2018년부터 5년간 사교육 업체 모의고사 출제에 참여해 4억 8000여만 원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형사 처벌을 받을 교사는 일부에 불과할 전망이다. 경찰은 이달 22일 기준 입건된 관계자는 현직 교원 46명, 학원 관계자 17명, 기타 6명 등 69명이라고 밝혔다. 최대 문제 거래액도 2억 5000만 원으로 교육부 자진신고 당시보다 다소 줄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종결된 사안 중 전문적인 브로커가 개입하는 등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고 범행이 실행된 정황은 없었다”고 말했다.

킬러문항 배제→불수능…논란은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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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열린 4일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교에서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들이 1교시 국어 영역 시험 답안지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킬러문항 배제 역시 사교육 카르텔 척결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교육부는 학원에 문제를 사적으로 판매한 교사들이 수능, 모의평가 출제진으로 참여하면서 킬러문항을 둘러싼 ‘카르텔’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이를 해체하기 위해 문제 출제진을 대폭 변경하고, 킬러문항 배제를 위해 별도의 ‘킬러문항 점검단’도 만들었다.

갑작스러운 출제 방침 변경에 수험생은 혼란을 겪어야 했다. 또,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면서 불수능 논란을 더 키웠다. 킬러문항 배제 방침이 적용된 이후 시행된 9월 모의평가와 수능에서 전 과목 난도가 올라갔다.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선 절대평가로 치러진 영어 과목 1등급(90점 이상)이 1%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킬러문항 배제 방침이 결과적으로 사교육에 더 의존하는 역효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전 입학관리본부 전임대우연구조교수)는 “킬러문항 배제 이후 수능 출제진 그룹들이 바뀌면서 아직 안정적인 출제 경향을 못 만들어 내고 있다고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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