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입속 지느러미』로 버티는 장마...10만부 MZ작가 조예은의 '비린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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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예은(31)은 23살이던 2016년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 수상과 함께 데뷔했다. 그 전까지는 공모전이나 문학상에 작품을 출품하기는커녕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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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소설가 조예은이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권혁재 기자.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한 그는 3학년 때 수강한 교양 인문학 수업에서 ‘좀비 소설’을 써내라는 과제를 받고 A4 용지 두 장 분량의 짤막한 단편을 썼다. 소설 주인공인 고3 수험생은 수능을 치르고 고사장 문밖을 나서자마자 온통 좀비로 뒤덮인 세상을 마주한다.
이 과제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어 청년 인턴 공고를 뒤적이던" 평범한 대학생은 학교 과제로 소설을 쓴 지 1년 만에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소설가로 데뷔했고, 27살에 쓴 판타지 스릴러 소설집 『칵테일, 러브, 좀비』는 10만부 베스트셀러가 됐다. 최근 신작 장편 『입속 지느러미』를 펴낸 그를 지난 9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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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 장편 『입속 지느러미』 표지. 사진 한겨레출판
- 학교 과제로 소설을 쓰기 전까지는 글에 관심이 없었다고요.
-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대기업에 취업하고 싶었던 평범한 학생이었죠. 수업 과제로 소설을 처음 쓴 게 23살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글쓰기가 재밌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으니 정말 운이 좋았죠.
- 첫 소설을 쓴 후 소설가로 데뷔하기까지 1년 남짓 걸렸네요.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요.
- 구직 준비를 했어요. 대학생 서포터즈로 블로그에 공연 리뷰를 올리는 일도 했고요. 그러다가 글을 더 써보고 싶어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에 작품을 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업 작가가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어요. 취업 준비와 글쓰기를 병행하는 데 큰 고민은 없었어요. 무언가 ‘재밌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했고 그게 글쓰기였거든요. ‘재밌는 걸 계속해야겠다’ 정도의 생각이었어요.
- 4년 후에 10만부 베스트셀러를 냈으니 무명 시절도 없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셈입니다.
- 베스트셀러는 다 운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여러 가지가 맞아 떨어져야 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게 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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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 단편집 『칵테일, 러브, 좀비』 표지. 사진 안전가옥
- 『칵테일, 러브 좀비』의 인기 비결이 뭘까요.
- 단편 4편을 모은 책이잖아요. 가볍게, 쉽게 읽을 수 있어서 순수 문학을 읽지 않는 분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연인 관계의 가스라이팅이나 환경 문제 등 2030이 관심 가질 법한 문제를 다뤘는데, 빙빙 돌리지 않고 쉽게 썼어요. 그때는 돌려 말하는 게 싫었거든요. (웃음) 그런 점을 좋게 봐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최근 출간된 그의 신작 장편 『입속 지느러미』는 작곡가의 꿈을 포기하고 공무원이 된 취업준비생 선형이 죽은 삼촌이 수족관에 남긴 인어 ‘피니’를 발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배경은 청계천 지하 수족관이다. 소설 속에선 끝없이 비가 내리는데, 책을 읽다 보면 어디에선가 비린내가 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SNS에서 ‘입속 지느러미’를 검색하면 ‘장마철에 읽기 좋은 소설’이란 태그가 따라붙는다.
- ‘물’의 이미지가 다양하게 등장하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 제가 바다를 좋아해요. 본가가 서해안 근처거든요. 서해는 동해와 달리 별로 아름답지 않잖아요. 저에게 바다는 꾸덕하고 까만 바다, 서해안의 바다거든요. 그러다 보니 비린내 나는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이 아닐까…제가 어릴 때부터 바다 괴물 이야기를 좋아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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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1849~1917)의 '더 세이렌'. 세이렌은 그리스 신화 속 인어로, 아름다운 목소리로 어부들을 유혹해 죽음에 이르게 한다. 중앙포토
- 인어 ‘피니’는 허밍 소리 만으로 선형을 홀려버립니다. 선형이 피니를 아끼는 마음은 사랑일까요.
- 선형은 작곡가의 꿈을 포기하고 공무원이 되잖아요. 피니는 미완의 꿈을 완성할 열쇠거든요. 그러니까 선형이 피니를 사랑하는 건 결국 자신의 꿈을 사랑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거죠. 저는 사랑하는 마음이 이기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이 꼭 쌍방의 아름다운 교류는 아니잖아요.
- 제목 ‘입속 지느러미’는 어떻게 나왔나요.
- 입속 지느러미 하면 혀를 떠올리실 거예요. 인어 피니는 처음에 혀가 잘린 모습으로 발견됐는데, 선형의 돌봄을 받으며 점차 혀를 회복해요. 그 모습을 제목으로 삼기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지느러미 하면 부드럽고 하늘하늘한 촉감을 떠올리실 텐데, 물고기 지느러미는 생각보다 딱딱하고 뾰족하다고 해요. 그러니까 입속에 지느러미가 있다면 입안이 피투성이가 될 수도 있겠죠. 이런 반전의 의미를 넣고 싶었습니다.
- 소설은 ‘인어’ 이야기지만 동시에 꿈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힙니다.
- 맞아요. 많은 청년들이 꿈을 이루려고 서울로 오잖아요. 그중 진짜 꿈을 이루는 경우는 극소수고요. 어쩌면 청년이 꿈을 이룬다는 얘기가 도시 괴담이 아닐까 싶어요. 저에게 현실의 도시는 ‘꿈의 무덤’ 같아요.
- 소설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뭔가요.
- 재미요. 재미가 전부는 아니지만요. (웃음) 이렇게 콘텐트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 동력은 재미라고 생각해요.
- 어떤 소설이 재밌는 소설일까요.
- 자극적인 사건이 연달아 터진다고 그걸 재밌다고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일단 캐릭터에 몰입이 가능해야 하고, 그 캐릭터의 심리 변화에 수긍할 수 있어야죠. 플러스로 적재적소에 사건이 터지는 소설, 그렇게 여러 요소가 잘 맞물리는 소설이 재밌는 소설인 것 같아요. 재밌다는 말 자체에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다’는 전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예은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정말 정말 운이 좋았다”며 “인터뷰를 하는 것도 기분이 좀 이상하다”고 했지만 재밌는 소설이 어떤 소설인지 말할 때 만큼은 막힘이 없었다. 작가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뭐냐고 묻자 “연령대와 성별을 초월하는 압도적으로 재밌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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