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공항 갔는데 항공권 취소 통보…"터질게 터졌다" 티몬 환불런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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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상거래 업체 큐텐과 산하 계열사 티몬·위메프 지급 불능 사태가 불거지면서 여행상품 등을 결제한 소비자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오전 김포공항에 도착한 김모(37)씨는 항공사로부터 비행기 표 예매가 취소됐다는 말을 들었다. 앞서 김씨는 가족 10명과 제주도로 5박 6일 여름휴가를 가기 위해 티몬에서 110만원을 주고 항공권을 구매했다. 하지만 출발 하루 전날 여행사로부터 “티몬에서 결제한 것과 별개로 다시 110만원을 입금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항공사의 온라인 체크인 문자까지 받았던 김씨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공항을 찾았지만, 실제로 표가 취소된 상태였다. 김씨는 “티몬에선 환불해준다는 말도 없고 여행사는 알아서 하라고 하니 울고 싶은 마음”이라며 “가족들에게 죄인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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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한 정모(37)씨는 항공사로부터 ″표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가족과 5박 6일 제주도 여행을 계획한 정씨는 티몬에서 비행기 표를 구매했지만, 출발 전날 여행사로부터 다시 돈을 내라는 통보를 들었다. 정씨는 결국 당일 공항에서 더 비싼 가격에 표를 구해야 했다. 사진 독자 제공

전자상거래 업체 큐텐과 산하 계열사 티몬·위메프 지급 불능 사태가 불거지면서 여행상품 등을 결제한 소비자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티몬이 중간 판매 업체에 정산 지연 상황을 통보하자, 하나투어·모두투어·교원투어 등 중간 업체들이 상품 판매·주문을 임의로 취소하면서다. 소비자 사이에선 이른바 ‘환불런’ 공포가 커지고 있다. 환불과 뱅크런(단기간 대량 인출 사태)을 조합한 표현으로, 티몬 등 회사의 부도 사태로 이어질 경우 돈을 돌려받지 못할까봐 우려하는 것이다.

이날 오후 3시 기준 피해자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엔 1000명이 넘게 모였다. 피해자들은 “티몬 등에서 직접 예약 취소 버튼을 누르면 안 된다”는 지침을 공유하기도 했다. 예약을 취소하지 말아야 여행사로부터 결제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다. 한 피해자는 “티몬 본사에 가서 공기청정기라도 가져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앞서 2021년 ‘무제한 20% 할인’ 정책을 내세우며 소비자를 모았던 할인 플랫폼 ‘머지 포인트’가 지급 불능 사태에 빠졌을 때 한 피해자가 본사에서 공기청정기를 들고 오는 사진이 화제가 된 것을 언급한 것이다. 이외에도 채팅방엔 “오늘 저녁 10시까지 티몬 본사 찾아갈 사람 모집한다”, “내일 오전 출근 시간에 가는 게 좋겠다” 같은 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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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소비자들은 중간 업체인 여행사가 플랫폼에 책임을 전가한다고 비판했다. 지난 5월에 하나투어에서 오는 9월에 출발하는 여행 상품을 구매한 회사원 이모(29)씨는 “여행사들은 상품을 취소해놓고 자기들은 책임 없다는 식으로 나온다”며 “정작 티몬에서는 취소도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답답해했다. 다음 달에 출발하는 여행상품을 결제한 이모(39)씨는 “티몬에 환불 신청을 하려면 여행사에 위약금으로 50만원을 내라는 문자가 왔다”며 황당해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수수료는 티몬에서의 환불과는 별개로, 고객이 예약을 취소하기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수수료를 과금하고 있다”며 “7월에 출발하는 상품은 정상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티몬·위메프 등에서 구매한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요기요 상품권이 취소됐다는 피해 사례도 나왔다. 온라인에서 요기요 상품권을 7~8% 할인된 금액에 사서 앱에 등록했는데, 갑자기 취소됐다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요기요 측은 “상품권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대행사가 임의로 취소한 것 같다”며 “상황을 파악해 고객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소비자들이 구제받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법무법인 정향 이승우 변호사는 “민사 소송을 진행할 경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대부분 소액이라 오히려 소송비가 더 많이 들 수 있다”며 “실익이 불분명한 상황이라 소비자보호원에서 개별적인 구제를 받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노종언 법무법인 에스 변호사도 “여행사는 여행 서비스 관련 문제를 책임지기 때문에 티몬과 여행사 간 계약을 살펴봐야 책임 소재를 따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여행사 측은 법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직접적인 보상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플랫폼 사업자의 지급중단을 예측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약관을 상품에 담은 적이 없다”며 “코로나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규모 여행사들은 물론이고 대형 여행사들도 티몬에 납품했던 물량을 자체적으로 보상할 여력이 전혀 없다”고 호소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터질 게 터졌다’고 지적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플랫폼 사업자들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온라인플랫폼 공정경쟁에 관한 법률 등 법제화 논의가 되고 있으나 여러 이해관계로 지연되고 있다”며 “플랫폼이 소비자들로부터 대신 받은 결제대금을 유용할 수 없게 감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결제 구조상 해당 상품에 문제가 됐을 경우 여행사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추후 비슷한 문제가 언제든 생길 수 있는 만큼, 상품 판매 시 이런 문제가 생겼을 경우 책임 소재가 어디인지를 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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