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와 폭염이 반복되는 여름철에 치매 노인들의 실종사고가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거센 폭우가 내린 지난 17일 오전 서울 중구 청계천 산책로가 물에 잠겨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2일 오전 6시 57분쯤 서울 종로경찰서 교남파출소에는 종로구 무악동 길거리에 “길 잃은 할아버지가 2~3시간째 우산도 없이 계속 비를 맞으며 서 있다”는 주민 신고가 접수됐다. 서울 전역에 호우 특보가 내린 이날 경찰이 출동했을 때 A씨(81)는 이미 장시간 부동자세로 서 있었던 탓인지 비에 쫄딱 젖은 채 몸과 입이 굳어 움직이거나 말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A씨의 두 손에는 발견 장소 인근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봉투와 지인들로 추정되는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종이가 들어 있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당시 출동한 이재열 경사는 “어찌나 봉지를 꽉 붙들고 계셨는지 손에 피가 안 통해서 하얗게 질려있었다”고 회상했다.

A씨는 전날 발견 장소 인근의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집에 돌아가는 길을 잃어 빗속에서 꼬박 10시간 이상 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종로구 소재 병원에서 약 4㎞ 떨어진 거리에 있는 은평구에서 가족 없이 홀로 사는 독거노인이었다. 경찰은 신원 파악을 통해 신고 접수 약 3시간 만에 A씨를 자택에 귀가시켰다.

폭우와 폭염이 반복되는 여름철에 치매 노인들의 실종사고가 집중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1~2023년 최근 3년간 치매 환자 실종신고 접수 건수는 연평균 1만4000여 건으로, 이 중 약 30%가 6~8월에 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겨울철(12~2월)보다 평균 67%가량 더 많았다. 활동량이 많은 봄·가을과 비교해봐도 여름철에 200~300건 더 많이 발생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지난 17일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서 빗 속에서 길 잃은 90세 치매 노인이 경찰 구조로 귀가하고 있다. 종암경찰서 석관파출소 제공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17일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서도 비를 맞고 서 있던 90세 치매 노인이 경찰에 구조되기도 했다. 혼자 산책을 나왔다가 집으로 가는 길을 잃은 것이었다. 앞서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치솟던 지난달 20일 고향에 간다며 홀로 익산행 고속열차에 탑승하려던 70대 치매 노인을 출발 1분 전에 경찰이 발견해 가족에 인계하기도 했다.

지구대 소속 한 경찰관(경감)은 “특히 장마철에는 아침저녁으로 서너 건씩 치매 노인을 찾아달란 신고가 들어온다”며 “비가 쏟아지면 평상시보다 시야 확보가 어렵고 수색 움직임이 불편해진다”고 말했다.

여름철 치매 환자 실종사고가 느는 건 무더위와 저기압·높은 습도 등이 치매 환자의 뇌 상태를 악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또 폭우 등으로 환경이 갑자기 바뀌면 지남력이 떨어져 상황 인지가 어려워진다. 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장마철 일조량이 줄어들면 치매 환자들의 우울·불안도가 높아지면서 배회, 망상 등 이상 행동 증상이 는다”며 “이 상황에서 외부 신체·사회 활동 감소로 사물 분간이나 환경에 대한 인지 기능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시간 위치 추적이 가능한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배회 감지기가 치매 노인의 신속 수색 대책 중 하나지만 보급률은 저조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치매 환자로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노인 14만 명 가운데 배회 감지기 보급률은 3.4%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등록 치매 환자 약 53만 명과 미등록 치매 환자 약 43만 명 등 전체 치매 환자(96만 명) 기준으론 0.48%에 불과하다.

이훈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그나마 널리 보급된 목걸이형·손목시계형 배회감지기도 치매 노인들은 불편하다고 잘 착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한번 착용하면 배터리가 오래 가거나 초소형화 모델로 배회감지기를 개발하면 좋겠지만, 예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