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AI 전쟁은 '데이터 보급전'…HBM 뒤이어 SSD의 시간이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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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경기 여주시 일원에서 열린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한미연합합동 공중재보급훈련에서 미국 공군 수송기 C-130이 투하한 보급품이 낙하산에 달려 강하하고 있다. 사진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작전엔 실패해도, 보급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격언처럼 보급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인공지능(AI) 전쟁 역시 마찬가지. 생성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기존 데이터를 토대로 추론 능력을 발휘해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올해 반도체 업계를 뜨겁게 달궜던 고대역폭메모리(HBM)가 ‘히트 상품’이 된 것도 탁월한 보급 능력에 있었다.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가 AI 연산을 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제때 공급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반도체가 HBM이기 때문. AI 전쟁이 ‘데이터 보급전’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래서 이 전쟁의 승패는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를 설계하고 제조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느냐에 달렸다.

하지만 HBM 혼자서 AI에 필요한 모든 데이터 공급을 맡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바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HBM이 최전방에서 비행기를 타고 일분일초를 다투며 데이터를 뿌리는 특수부대라면, SSD는 후방에서 보급 전반을 책임지는 본부에 비유할 수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 AI 시대 HBM의 뒤를 잇는 차세대 메모리 시장으로 SSD를 주목하는 배경이다.

SSD의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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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지난 25일 SK하이닉스는 올 2분기 16조423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밝혔다. 분기 기준 역대 최고 매출이다. 이날 실적발표 후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SSD는 단일 제품으로는 HBM 다음으로 많이 언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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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지난 1월 내놓릉 소비자용 SSD 신제품 '990 EVO'. 사진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는 크게 D램·낸드플래시의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D램은 주로 빠른 정보처리에 쓰이는 메모리 반도체다. 이 같은 D램의 장점을 극한으로 끌어낸 제품이 HBM. 반면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를 계속 저장할 수 있어 스마트폰·PC 등에서 데이터 저장장치로 쓰인다. 여기서 낸드를 주축으로 활용해 만든 스토리지(저장장치)가 바로 SS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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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의 온디바이스 인공지능(AI) PC용 소비자 SSD 제품 'PCB01'. 사진 SK하이닉스

원래 SSD는 소비자용으로 주로 쓰였다. 하지만 AI 시대가 열리면서 서버에 저장해야 하는 데이터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고, 기존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의 대안으로 고용량 SSD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기업용 SSD(eSSD) 시장이 마침내 열린 것. 막대한 데이터를 담을 공간이 필요한 상황에서 eSSD는 이제 HBM과 더불어 AI 모델을 빠르게 구동하기 위한 첨단 메모리 필수품으로 떠올랐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SSD의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줄면 결국 AI 가속기의 성능도 전체적으로 좋아진다는 뜻”이라 말했다.

메모리 3사, SSD에서도 전쟁

AI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데이터 보급부대도 덩달아 바빠지고 있다. 구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를 비롯한 전 세계 데이터센터에서 eSSD를 찾기 시작하면서 SK하이닉스의 2분기 eSSD 매출은 직전 분기보다 50%가량 뛰었다. 삼성전자 역시 하반기 eSSD 신제품 출시를 예고했다. 김석 SK하이닉스 낸드플래시 마케팅담당 부사장은 “그동안 D램에 국한됐던 AI 메모리 관련 수요가 스토리지 영역으로 확산되며 고용량 제품을 중심으로 eSSD 수요가 연초 예상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eSSD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45%), SK하이닉스·솔리다임(32%), 마이크론(10%), 키옥시아(8%) 순. ‘메모리 빅3’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은 HBM에 이어 eSSD 시장에서도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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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와 솔리다임. 사진 SK하이닉스

낸드에서도 압도적 우위를 지키던 삼성전자에 SK하이닉스·솔리다임이 도전하는 모양새다. SK하이닉스가 2020년 10월 인수한 솔리다임은 고용량 eSSD에 특화된 기술력을 보유했다. 이에 한때 적자 규모가 7조원에 이르러 SK하이닉스 부진의 원인으로 평가받던 솔리다임 인수도 조금씩 재평가를 받고 있다.

eSSD의 눈부신 성장에 잠시 가렸지만 기존 소비자용 SSD 제품도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올해 서버(클라우드) 기반의 AI에서 eSSD 시장이 열렸듯 온디바이스AI를 위한 소비자용 SSD도 결국엔 주목 받게 될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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