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호주가 견제한 이유 있네…올림픽 메달 일군 김우민의 '폭풍 성장&a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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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민이 27일(현지시간) 파리 라 데팡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수영 자유형 남자 400m 결선에서 동메달을 확정한 뒤 주먹을 불끈쥐고 있다. 김성룡 기자

김우민(23·강원도청)은 막판 스퍼트 순간을 떠올리며 "사지가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유독 끝나지 않을 듯 멀게만 느껴지던 마지막 50m. '올림픽 메달을 위해 이 정도는 감당해야 한다'고 되뇌며 이를 악문 스물셋 청년은 마침내 3분42초50의 좋은 기록으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전광판에는 1위 루카스 마르텐스(독일·3분41초78)와 2위 일라이자 위닝턴(호주·3분42초21)에 이어 '3'이라는 숫자 옆에 김우민의 이름이 새겨졌다. 28일(한국시간) 2024 파리올림픽 수영 경영 남자 자유형 400m 결선에서 한국 수영에 12년 만에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김우민은 "터치패드를 찍고 관중석을 봤더니 태극기를 든 분들이 환호하고 계셨다. 그때 '아, 내가 메달을 땄구나' 알아차렸다"면서 "지난 3년간 고생하면서 준비한 시간이 동메달로 돌아온 것 같다. 동료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던 장면이 떠오른다"며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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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민이 27일(현지시간) 파리 라 데팡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수영 자유형 남자 400m에서 동메달을 딴 뒤 시상식에서 금메달리스트 루카스 마르텐스(가운데), 은메달리스트 일라이자 위닝턴(왼쪽)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김우민은 부산 중리초등학교 5학년 때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수영 엘리트반을 지도하던 하성훈 현 응봉초 교사가 "취미로만 수영할 게 아니라 대회에 한 번 나가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하면서 재미를 붙였다. 처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던 건 아니다. 부산체중 2학년 때까지 배영이 주 종목이었는데 번번이 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러다 중3 때 자유형이라는 '천직'을 만났다. 특히 박태환의 주 종목이었던 자유형 중장거리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처음 출전한 1500m에서 전국 대회 4위를 했고, 400m에 집중하면서 기량이 급성장했다. 고교 땐 국내 정상의 선수가 됐다. '황선우'라는 천재의 등장에 환호하던 한국 수영이 서서히 '김우민'이라는 이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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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 올림픽 수영 자유형 남자 400m 동메달리스트 김우민의 어린 시절. 유년기 때 두류 수영장에서. 사진 올댓스포츠

국가대표가 된 김우민의 터닝포인트는 호주에서 찾아왔다. 대한수영연맹은 2022년 4월 황선우와 김우민을 포함한 자유형 대표선수 4명을 호주 멜버른으로 보냈다. 호주의 전설적인 수영 지도자 이언 포프 코치의 지도 아래 6주간 특별 훈련을 받게 했다. 김우민은 그 직후 출전한 6월 헝가리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 자유형 400m에서 기존 개인 기록을 3초 가까이 단축한 3분45초64로 세계 6위에 올랐다. 수영 관계자들은 물론 김우민 자신도 "이렇게 단시간에 이렇게 많이 기록이 줄어들 줄은 몰랐다"며 깜짝 놀랐을 정도다.

지난해 2월엔 호주 브리즈번에서 호주 경영 대표팀 지도자 출신인 리처드 스칼스 코치와 손잡았다. 스칼스 코치는 이번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위닝턴을 키운 스승인데 특히 김우민의 잠재력을 눈여겨 봤다. "개인 최고 기록 경신에 만족하지 말고 아시아 신기록에 도전하라"고 격려했다.

김우민은 그해 7월 열린 후쿠오카 세계선수권에서 다시 3분43초92까지 기록을 단축하면서 세계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아시아 선수 중 이 종목 세계선수권 결선에 오른 선수는 김우민이 유일했다. 이미 아시아 최강의 자리를 확인한 그는 지난해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독주에 가까운 레이스를 펼치면서 3분44초36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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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민이 27일(현지시간) 파리 라 데팡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수영 자유형 남자 400m 결선에서 역영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김우민은 이후 목표를 올림픽 상대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 1월 5일부터 2월 3일까지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주 6일간 매일 12시간씩 주당 60㎞를 헤엄치는 '지옥 훈련'을 소화하고 돌아왔다. 수영 대표팀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체력왕' 김우민도 혀를 내두를 만한 강도였다. 호주 경영 국가대표를 여럿 배출한 베테랑 지도자 마리클 펄페리 코치가 이들의 훈련을 전담했다. 대한수영연맹 관계자는 "김우민이 펄페리 코치와 호흡도 잘 맞고, 훈련의 내용과 강도에도 크게 만족스러워했다"고 귀띔했다.

그 성과는 눈부셨다. 김우민은 '올림픽 전초전'이었던 지난 2월 도하 세계선수권 자유형 400m에서 3분42초71의 개인 최고 기록으로 깜짝 우승했다. 한국 선수의 세계수영선수권 금메달은 2011년 상하이 대회의 박태환 이후 13년 만이었다.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 때 기록을 2년 사이 무려 3초 가까이 앞당기면서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호주도 이때부터 '세계선수권 우승자' 김우민의 상승세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호주 수영의 자랑인 위닝턴과 사무엘 쇼트가 파리에서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다툴 거라 여겼는데, 올림픽 직전 김우민이 강력한 경쟁자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호주수영연맹이 느닷없이 '4월 16일부터 8주간 외국인 선수의 호주 전지훈련을 금지한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한국 대표팀은 예정했던 추가 훈련 계획을 전면 백지화해야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정훈 수영대표팀 총감독은 "쇼트와 위닝턴을 위협하는 김우민의 체력과 상승세를 집중 견제한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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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민이 27일(현지시간) 파리 라 데팡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수영 자유형 남자 400m 동메달을 딴 뒤 시상대에 올라 두 팔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결국 김우민은 훈련 일정을 4월 1일부터 15일까지로 대폭 축소해 부랴부랴 호주로 출국했고, 황선우 등 다른 선수들은 아예 호주 훈련을 포기했다. 호주는 심지어 자국 올림픽 대표팀 코치들에게 "올림픽 전까지 외국인 선수를 지도하지 말라"는 지시도 내렸다. 펄페리 코치의 지도 방식을 좋아했던 김우민에게는 아쉬운 결과였다.

심지어 펄페리 코치는 파리 현장에서 만난 한국 취재진에게 "호주에서도 한국에 있는 코치를 통해 김우민이 발전하는 모습을 꾸준히 지켜봤다. 위닝턴과 쇼트뿐 아니라 김우민도 충분히 메달권에 들 수 있다"고 덕담했다가 호주수영연맹의 징계를 받을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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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민이 27일(현지시간) 파리 라 데팡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수영 자유형 남자 400m 결선에서 힘차게 스타트를 끊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김우민은 올림픽 출격을 앞두고 "내가 (대회 첫날 열리는) 400m에서 꼭 메달을 따서 그 뒤에 출전할 선수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그 행복한 기대를 고스란히 현실로 이뤄냈다.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힘을 쏟아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호주의 쇼트마저 밀어내고 메달을 지켜냈다. 활짝 웃는 그의 목에는 "이걸 차면 없던 힘도 생긴다"던 '가족 목걸이'가 반짝거렸다.

김우민은 "다른 동료들도 나로 인해 남은 경기에서 자신감과 용기를 얻을 것 같다. 자유형 200m(황선우)와 단체전인 계영 800m에서도 또 하나의 기적이 탄생하지 않을까"라며 "시상대 위에서 울컥하는 순간이 있었지만, 잘 참았다. 힘들 때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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