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소아백혈병' 의사들 뭉쳤다…세계 첫 치료법 표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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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1층 로비에 고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부조가 설치돼 있는 모습. 장진영 기자

백혈병은 국내 소아암(연 1000명 발생) 중 가장 많다. 이 중 급성림프모구 백혈병(ALL)이 80% 차지한다. 연 250명가량 걸린다. 선진국은 완치율이 90%에 달하지만, 한국은 80%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국 소아암 의사 50~100명이 뭉쳤다. 의사들은 ALL 환자가 전국 어딜 가더라도 같은 치료를 받는 정밀의료 기반의 표준 치료법을 완성해 최근 적용하기 시작했다.

종전에는 해외의 항암 화학요법을 갖다 썼다. 그러나 약 종류, 조합 방식, 투약 일정, 치료 방침이 병원마다 달랐다. 이를 통일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관련 학회가 통일 작업을 하던 중 획기적인 도우미가 나타났다. 바로 고(故) 이건희 전 삼성 회장 기부금이었다. 이 전 회장 유족이 2021년 5월 소아암·희귀병 극복에 써 달라고 서울대병원에 기부한 3000억원이 기폭제가 됐다.

전국 소아암 의사들이 20여 차례 머리를 맞댔다. 최신 임상 진료 근거를 분석하고 열띤 토론,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쳐 지난해 9월 표준치료법이 완성됐다. ALL 환자를 표준위험군·고위험군·최고위험군·영아군·재발군으로 분류해 군별 최적의 치료법을 완성했고,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아 최근 임상 현장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5개 군별 치료 효과 연구는 서울대·서울아산·삼성서울·신촌세브란스·서울성모 등 소위 '빅5' 병원 교수가 주도한다.

소아암 환자들은 지난 2년가량 전장유전체 분석(WGS)으로 환자와 부모·조부모의 유전자를 통째로 분석해 돌연변이를 찾아냈다. 또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NGS)으로 미세잔존질환을 분석하는 검사(MRD)를 받았다.

MRD는 치료 후 1만분의 1개까지 암세포가 남아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항암치료마다 검사한다. 대개 3회, 많게는 10회 넘기도 한다. 종전의 현미경 육안 검사, 항원 검사 등과 차원이 다르다. 전국 16개 대학병원이 환자 500명에 1700회 MRD를 했다. 회당 100만원의 검사비는 기부금이 지원했다. WGS는 5개 대형병원이 주로 했으나 곧 11개로 확대한다.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을 기반으로 MRD를 활용해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을 치료하는 것은 세계 처음이다. 비용이 비싼 데다 표준화가 안 돼 다른 나라는 아직 엄두를 못 낸다. 이 검사 결과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진다. A군(6)은 백혈구 수 등을 따지는 기존 진단법을 적용하니 표준위험군 환자로 분류됐다. 그런데 WGS·전장엑솜검사 등을 해보니 위험인자가 나왔다. 센 항암 치료로 바뀌었고, 조혈모세포 이식수술도 필요한 듯했다. 그런데 MRD 검사에서 항암 치료 반응이 아주 좋게 나왔고, 이식수술이 필요 없게 됐다. A군은 곧 유지치료로 넘어가 완치까지 바라보게 됐다.

5개 군별 표준치료법이 나오면서 최적의 치료에다 반응 예측 효과 평가가 더욱 세밀해졌다. 강형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소아암·희귀질환지원 사업단 소아암사업부장)는 "국내 소아백혈병 전문가들이 협력해 최적의 치료법을 마련했고, 선진국 수준으로 완치율을 높일 수 있게 됐다. 다른 소아암도 이런 방향으로 가려 한다"며 "가능한 독을 줄여(항암제를 덜 쓰거나 약한 걸 쓴다는 의미) 치료해 아이들을 100년 살게 하고 사회에도 공헌하게 도와서 이 전 회장의 기부금 취지에 부합하겠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소아암은 '마이너 암'이라서 정부 관심이 매우 낮다. 이 전 회장 기부금처럼 큰 기부금이 없었으면 표준치료법 마련과 연구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은화 소아암·희귀질환지원 사업단장(서울대 어린이병원장)은 "이번에 국내 최초로 ALL 치료 프로토콜을 정립해 지속가능한 소아 의료체계의 교두보를 마련했다"며 "앞으로 전국 소아 환자가 최적의 치료를 받는 시스템을 구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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