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고객∙판매자∙결제사 다 피해"…이커머스 민낯 드러났다 [팩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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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 티몬·위메프의 대금 정산 지연 사태로 지난 십수년간 ‘혁신’이라고 평가받던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고 있다. 몸집 불리기에 집중했던 플랫폼 사업자의 ‘시스템 에러’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다. “플랫폼 사업자는 중개만 할 뿐 책임지지 않는다”는 해묵은 비판이 다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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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몬·위메프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가 이어지는 2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위메프 본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무슨 일이야

28일 IT업계에 따르면 티몬·위메프 사태 초기 혼선을 빚었던 소비자 환불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카드사와 간편결제사, 결제대행업체(PG)들이 티몬·위메프 결제 취소에 협조하면서다. 네이버페이는 이날 티몬·위메프에서 네이버페이로 결제한 금액에 대한 결제 취소·환불 요청을 받는다고 공지했다. 네이버페이 측은 “공지사항 안내 링크를 통해 결제·구매 내역 페이지 캡처 화면을 첨부하면 48시간 이내에, 최대한 빠르게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토스페이·카카오페이도 환불·결제 취소를 위한 절차를 시작했다. PG사들도 이번 주 내로 결제 취소나 이의 제기 신청 절차를 개시할 전망이다.

하지만 티몬·위메프로부터 정산금을 받지 못한 판매자(셀러) 피해는 여전히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당국이 업계를 조사해 파악한 미정산 금액은 지난 22일 기준 위메프 195개사 565억원, 티몬 750개사 1097억원 수준이다. 이는 지난 5월치 판매대금 미정산금만 산정한 것으로 향후 6~7월 미정산분이 추가되면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승자독식 플랫폼 비즈니스의 이면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은 ‘독과점’을 지향한다. 판매자가 많아지면 이용자가 늘고, 이용자가 늘면 판매자가 많아지는 ‘네트워크 효과’ 선순환을 구축하기 위한 것. 플랫폼 기업들이 무리해서라도 몸집을 키우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시장 독식 플랫폼의 횡포가 문제로 지적돼 왔다. 시장을 장악한 플랫폼이 과도하게 수익을 내려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거대 온라인 플랫폼을 규제 대상으로 사전 지정한다는 내용의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법) 제정을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잘 되는 플랫폼이 아니라 부실해진 플랫폼이 촉발한 문제라는 점에서 기존 문제와는 양상이 다르다. 티몬·위메프의 모기업인 큐텐의 구영배 대표가 부실한 재무 상황에서도 공격적으로 기업 인수에 나서면서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로 번졌다. 국내 대형 플랫폼 한 관계자는 “이커머스 분야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무리하게 몸집을 키우려 출혈경쟁을 벌였고 결국 감당할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실을 초래한 건 플랫폼이지만 피해는 플랫폼을 둘러싼 모두에게로 전가되고 있다. 카드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플랫폼 사업자가 부실해지면서 제대로 책임지지 못하고, 그 손실을 소비자·판매사·결제사 모두가 나눠 떠안고 있다”며 “그나마 소비자 피해 문제는 결제사들이 손실을 떠안으면서 해법을 찾고 있지만, 판매자 피해 문제는 해결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티몬·위메프 입점 업체 한 대표는 “부실해진 플랫폼이 정산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서 우리뿐 아니라 거래처까지 연쇄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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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몬·위메프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빌딩에서 열린 티몬.위메프 피해 입점 판매자(셀러) 대책회의에 참석한 한 판매자가 머리를 쥐고 있다. 연합뉴스

규제론 힘 얻지만 문제는 디테일 

원인은 다르지만, 중개만 할 뿐 책임은 상대적으로 적게지는 플랫폼 관련 법 규정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티몬·위메프 같은 플랫폼은 관리 사각지대에 있다. 전자상거래법상 온라인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한 소비자가 환불 또는 청약 철회를 요구하면 판매자는 이를 3영업일 내에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플랫폼 거래 구조상 일차적인 환불 책임은 플랫폼 입점 업체들에 있다. 공정위는 2021년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커머스 플랫폼의 판매자 정산 주기와 판매 대금 보관 방식 역시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 티몬·위메프의 경우 물건 판매 후 판매사에 정산하기까지 70여일이 소요됐다. 대기업 유통사는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라 상품이 판매된 달의 말일을 기준으로 40~60일 이내에 판매 대금을 정산해야 하지만 전자상거래엔 관련 법 규정 없다. 때문에 티몬·위메프가 정산 전 판매 대금을 유용했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티몬·위메프는 통신판매중개업자여서 대규모유통업법 적용이 안 돼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던 것”이라며 “티몬과 위메프 같은 중개업자(플랫폼)도 유통 규제에 포함시킬 것인지부터 논의하고, 포함이 안 된다면 구매자가 물건을 받았다는 점을 확인하는 대로 정산금을 지불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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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강남구 위메프를 찾은 피해 고객 등이 온라인과 고객센터를 중심으로 환불 접수를 받겠다는 안내에 항의하며 건물 내부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티몬·위메프는 이커머스 플랫폼인 동시에 결제를 대행하는 2차 PG이기도 하다. 전자금융감독규정에 따라 금융위원회로부터 허가 받은 업체가 경영상 취약점이 발견될 경우 경영 개선 명령 내릴 수 있다. 하지만 티몬·위메프 등 PG사는 허가업체가 아닌 등록업체여서 관리 대상에서 빠졌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 PG사에 대한 금융당국의 영업 규제 근거가 있었다면 피해가 그마나 줄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 법은 플랫폼 기업들의 독과점 문제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부실해서 생긴 이번 사태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아직 문제의 원인이 면밀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플랫폼 전반의 규제를 강화하자는 건 혁신 경제에 부정적인 신호만 줄 수 있다”며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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