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넌 또 출근해 퇴근은 없어”…재해석한 오르페우스, 묘하게 공감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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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하데스타운’은 죽은 아내를 되찾기 위해 저승으로 떠나는 오르페우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각색했다. 오르페우스의 비극적 결말은 운명의 비가역성을 상기시킨다. [사진 에스앤코]

“세상에서 가장 사나운 개는 거리에서 만나는 사냥개가 아니야. 그 놈은 으르렁대고 물기나 하겠지. 정말 두려운 개는 머릿속에서 울부짖는 개란다. 그 울부짖음이 사람을 미치게 하고 머릿속을 뒤엉키게 하지.”

오르페우스는 지하 세계에서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한 뒤 지상으로 올라가려 한다. 저승의 신 하데스가 그들을 돌려보내며 내건 조건은 한 가지.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 뒤돌아보지 말 것.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길을 떠나는 오르페우스에게 짧은 당부를 남긴다. 머릿속에서 울부짖는 개, ‘의심’을 조심하라고.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샤롯데시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사랑과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죽은 아내를 찾아 지하로 내려가 아름다운 리라 연주로 신들을 설득하고 구출에 성공하지만 마지막 순간 뒤를 돌아보고 마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했다.

지상과 극명히 대비되는 지하 세계의 연출이 흥미롭다. 오르페우스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넘버 ‘기다려줘’를 부르며 지하로 향할 때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지상의 빛을 표현하듯 천장의 조명들이 진자 운동을 하며 허공을 가른다. 오르페우스가 지하 세계 ‘하데스 타운’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세상 만물이 그의 노래에 감동해 저승 문이 사방으로 열리면서 무대가 넓어지고, 그 사이로 조명이 강렬하게 비추며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뉴올리언스 재즈와 포크 록을 결합한 37곡의 넘버가 귀를 즐겁게 한다. 트럼본·첼로·바이올린·피아노·드럼 등으로 구성된 밴드가 무대 위에서 라이브 연주를 펼친다. 오르페우스가 지하로 떠나며 에우리디케를 향해 부르는 ‘기다려줘’, 에우리디케를 돌려 보내지 않으려 하는 하데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부르는 ‘서사시’ 등이 하이라이트.

하데스타운의 통치자 하데스는 악덕 자본가로 그려진다. 하데스타운의 노동자들은 영혼을 담보로 노예 계약을 맺고 지하 광산에서 착취당한다. 그 작업장을 묘사한 ‘저 아래 하데스타운’은 “넌 또 출근해 또 출근해 퇴근은 없어 우린” “그 문 너머로 들어가 영혼을 팔아버렸으니까” “많은 영혼이 죽어야만 녹슨 기계를 돌리지” 등의 가사로 현대인의 공감을 자아낸다.

음악의 완성도는 이미 정평이 났다. 작품은 2019년 토니 어워즈 뮤지컬 관련 15개 부문 중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고 최우수작품상·연출상·음악상·편곡상·조명상·무대디자인상 등 8개 부문을 싹쓸이했다. 2020년에는 그래미어워즈에서 최고 뮤지컬 앨범상을 받았다.

이번 재연에는 초연 무대(2021)에 섰던 조형균·박강현이 오르페우스 역에 캐스팅 됐고 그룹 ‘멜로망스’ 출신 김민석이 새롭게 합류했다. 오르페우스에게 지하 세계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최정원·최재림·강홍석이 연기한다. 매력적인 저음으로 무대를 휘어잡는 지하의 신 하데스 역에는 지현준·양준모·김우형이 발탁됐다.

인터파크 관람평점은 10점 만점에 9.7이다. “한국 뮤지컬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음악을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조명 연출이 훌륭하다”는 평이 눈에 띈다. 공연은 10월 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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