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할머니 유언 따라 태극마크…'독립투사 후손' 허미미가 웃었다

본문

17222953180211.jpg

은메달을 들고 활짝 웃는 허미미. 뉴스1

 "할머니께 오늘까지 유도 열심히 했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자신의 첫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허미미(22·경북체육회·세계랭킹 3위)는 활짝 웃었다. 허미미는 30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샹드마르스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여자 57㎏ 결승에서 골든스코어(연장)를 포함 6분35초간의 혈투 끝에 세계 1위 크리스타 데구치(29·캐나다)에 반칙패를 당했다.

일본계 캐나다 선수인 데구치는 이 체급 최강자. 허미미는 지난 5월 세계선수권에서 데구치를 꺾고 우승했지만, 이번엔 아쉽게 패했다. 허미미는 연장 2분 35초에 데구치에게 안다리걸기를 시도하다가 위장 공격 판정을 받고 반칙패했다. 당시 허미미와 데구치는 나란히 지도 2개를 받은 상황이어서 더 아쉬운 판정이었다. 위장 공격이란 실제 공격할 의도가 없으면서도 그런 것처럼 거짓으로 꾸미는 행위다. 일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인 선수가 그 상황을 면피하고자 '방어를 위한 공격'을 했을 때 위장 공격 지도를 준다. 유도에선 지도 3개를 받으면 반칙패로 기록된다.

17222953181652.jpg

생애 첫 올림픽에서 시상대 오른 허미미(왼쪽). 뉴스1

평소 밝고 긍정적인 성격의 허미미는 결승전이 끝난 뒤에도 씩씩했다. 그는 "위장 공격일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경기의 일부니까 어쩔 수 없다. 금메달을 따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결승전에까지 나가서 정말 행복했다. 올림픽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메달을 따서 너무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아쉽긴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결승전에까지 나가서 정말 행복했다.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며 웃었다.

생애 첫 올림픽에서 일군 허미미의 은메달은 금메달 못잖게 값지다. 한국 여자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건 2016 리우올림픽 정보경(48㎏급) 이후 8년 만이다. 동시에 한국 유도가 파리올림픽에서 처음으로 획득한 메달이다. 앞서 이틀간 치러진 남녀 4개 체급에서는 메달이 나오지 않았다. 허미미는 "이제부턴 경기가 남은 언니, 오빠들을 열심히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17222953183064.jpg

데구치(왼쪽)와 잡기싸움을 벌이는 허미미. 연합뉴스

허미미는 이번 올림픽에서 '천적'으로 꼽혔던 선수를 넘어서며 경험과 기량면에서도 한 단계 올라서는 값진 경험을 했다. 그는 8강에서 몽골의 엥흐릴렌 라그바토구(세계 13위)에게 절반승을 거뒀다. 라그바토구는 허미미보다 세계랭킹은 낮아도 올림픽에 앞서 허미미에게 3전 전승을 거뒀던 선수라서 이번 올림픽에서 그 어떤 선수보다 껄끄러운 상대였다.

허미미는 재작년과 작년 세계선수권 동메달 결정전에서 라그바토구에 번번이 패했고, 올해에도 아시아선수권 결승에서 만나 또 무릎을 꿇었는데, 가장 큰 무대에서 멋지게 설욕했다. 허미미는 "(4년 뒤엔) 나이를 먹었을 테니까 체력이 더 좋을 것 같다. 다음 올림픽에선 금메달을 꼭 딸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허미미는 한국 유도에 혜성처럼 나타난 ‘특급 신예’다. 2002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허미미의 아버지는 한국 국적, 어머니는 일본 국적이다. 조부모는 모두 한국 출신이다. 일본 유도의 특급 유망주였던 그가 한국 땅을 밟은 건 2021년 세상을 떠난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할머니는 “손녀가 꼭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돼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할머니의 뜻에 따라 허미미는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그해 경북체육회 유도팀에 입단했고, 이듬해인 2022년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후 각종 이번 올림픽을 포함해 각종 국제대회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며 한국 유도의 간판으로 우뚝 섰다.

17222953184505.jpg

4년 뒤 올림픽에서 금메달에 재도전하겠다고 밝힌 허미미. 연합뉴스

허미미는 "할머니께서 한국에서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면 좋겠다고 하셔서 한국을 택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청 잘해주셨다"며 "나는 할머니만 믿고 따르며 살아왔으니 한국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허미미는 독립운동가 허석(1857~1920년)의 후손이기도 하다. 경북체육회 김정훈 감독이 허미미의 할아버지가 허석 선생의 증손자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애국가 가사를 미리 외웠다던 허미미는 "못 불러서 아쉽다. 다음 올림픽에서는 꼭 부르고 싶다"고 4년 뒤를 기약했다.

현재 허미미는 일본 명문 와세다대(스포츠과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이다. '경기를 마쳤으니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도 "파트너들이 많이 도와줘서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다. 파스타를 무척 좋아해서 먹을 예정"이라며 활짝 웃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30,529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