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차베스 동상 넘어뜨렸다…부정선거 항의 나선 베네수엘라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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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에 항의하는 베네수엘라 시민들과 이를 진압하는 경찰들. EPA=연합뉴스

베네수엘라가 대선 이후 혼돈에 빠졌다. 니콜라스 마두로(62) 대통령이 3연임 성공을 주장하자, 수천 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유”를 외치며 정부 측과 충돌하고 있다. 부정선거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수도 카라카스를 포함한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항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29일(현지시간) 야권을 지지하는 성난 시위대가 카라카스 도심에서 화염병을 던지는 등 과격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대가 남미 좌파 포퓰리스트들의 우상과 같은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동상을 넘어뜨리고, 마두로 대통령의 선거 포스터를 찢거나 발로 밟는 모습도 포착됐다. 일부 지역에선 총성도 들렸다. 시위를 막기 위해 투입된 군·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맞서면서 시위가 더 격렬해지는 모습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사망자가 나오는 등 피해도 커지고 있다. 현지 시민 단체인 ‘포로 파넬’(Foro Panel)은 이번 시위로 베네수엘라 북서부 야라쿠이주(州)에서 1명이 숨지도, 46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마두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로페스 국방장관은 이날 "군인 20명 이상이 (시위대가 쏜 총탄에 맞아) 다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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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9일(현지시간) 반마두로 카세롤라소 시위를 벌이는 베네수엘라 시민들. AFP= 연합뉴스

격한 항의만 벌어진 건 아니다. 남미 특유의 ‘카세롤라소(cacerolazo)’ 시위에 나선 사람들도 있다. 냄비를 뜻하는 스페인어 ‘카세롤라(cacerola)’와 두드린다는 뜻의 접미사 ‘아소(azo)’가 결합한 말로 냄비나 프라이팬을 두들기는 남미의 전통적인 무폭력 시위 방식이다.

이번 시위는 부정선거 의혹에서 출발했다. 서방 언론의 출구조사 결과와 너무 다른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가 개표 결과 발표 때문이다. 출구조사에선 ‘민주야권 연합’ 후보인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75)가 마두로 대통령을 두 배 넘는 득표율로 이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개표 결과뿐만 아니다. 지난 25년간 차베스에서 마두로로 이어진 좌파 포퓰리스트 정권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는 풀이도 나온다. 베네수엘라는 2018년 한 해에만 6만5000%가 넘는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는 등 경제 파탄이 장기화되고 있다. 설상가상 잦은 부정선거 의혹으로 제재를 받으면서 세계 1위의 원유 보유국인 데도 연료난에 시달리는 웃지 못할 참극도 벌어졌다.

이런 가운데 3연임을 선언한 마두로 정부는 부정선거 의혹 차단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일단 마두로 대통령은 “야당이 파시스트적이고 반혁명적인 성격의 쿠데타를 시도하고 있다”며 정국 혼란의 책임을 야권 탓으로 돌렸다.

베네수엘라 검찰은 대선 결과에 반발하는 야권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다. 타레크 윌리암 사브 검찰총장은 국영 TV 방송에 출연해 “일부 개표 시스템에 해킹 시도가 있었다”며 “야권 후보(곤살레스)를 돕기 위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당초 유력한 야권의 대선 후보였지만 피선거권을 박탈 당한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57)와의 연관성도 찾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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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가 마두로의 사진이 들어간 포스터를 짓밟고 걸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문제는 시위의 파급력이다. 이번 시위가 마두로의 전통적인 지지층인 서민 계층에서 터져 나왔다는 점에서 이전 시위와 양상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 가디언은 “시위대 중 상당수가 차비스모(차베스주의)의 근거지인 산비탈 빈민촌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몸에 국기를 두르고 시위에 나선 한 시민은 “실업자 신세에 교육을 받지 못한 젊은이가 부지기수”라며 “많은 사람이 변화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BBC에 말했다.

주변국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등 우파 성향 중남미 9개국 정부는 미국 주도로 창설된 미주 지역 내 최대 국제기구인 미주기구(OAS)에 개표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기 위한 긴급 이사회 소집을 요청했다. 멕시코 등 좌파 성향의 일부 국가들도 이번 사태에 대한 비판에 동참한 상황이다. 이에 마두로 정부는 페루 등 중남미 7개국의 외교관을 추방하는 등 맞대응에 나섰다.

한국 정부도 베네수엘라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29일 주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은 공지문을 통해 “대선 결과를 둘러싼 긴장 상황이 예상되니 동포 여러분께서는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며 외출 자제를 당부했다. 외교부는 베네수엘라 전 지역을 '출국 권고'에 해당하는 '여행경보 3단계(적색경보)'로 설정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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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쏘는 베네수엘라 경찰.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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