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빚 못 갚겠다" 기습 회생 신청에...檢, 티메프 사기죄 칼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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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이미 지난주 구영배 큐텐그룹 회장에 대해 출국을 금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최대 1조원대 환불 및 정산 지연 피해가 우려되는 티몬·위메프(이하 티메프) 사태와 관련 큐텐그룹 차원의 자구책 마련을 지켜보면서 수사 착수를 검토해왔던 것이다. 법조계와 산업계에서는 수사 대상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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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새벽 서울 강남구 티몬 신사옥에서 정산 지연 사태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환불 현장 접수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뉴스1

나흘 기다린 檢…회생신청에 칼 빼들었다

30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 이준동)는 지난 26일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에서 관련 자료를 넘겨받은 직후부터 티메프 경영진의 사기·횡령·배임 등 범죄 혐의 여부를 검토해왔다. 다만 공식 수사가 개시될 경우 “자구책을 마련하겠다”는 티메프 측의 변제 의지가 꺾일 수 있어 물밑에서 법리 검토 등 수사 밑작업을 먼저 진행했다고 한다. 실제로 검찰은 수사 개시 전 해외 도피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지난 26일 법무부에 구 회장 등 경영진 3명의 출국금지를 요청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상황에서 티메프 양사가 지난 29일 오후 법원에 현금 흐름 악화를 이유로 “빚을 못 갚겠다”며 기습적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자구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곧바로 서울중앙지검에 전담수사팀 구성을 긴급 지시했다. 전담수사팀은 반부패수사1부 소속 검사 7명으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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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배 큐텐그룹 대표와 류광진 티몬 대표(왼쪽)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티메프 사태 관련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검찰, 위시 인수·판촉 압박 먼저 본다

향후 검찰 수사의 쟁점은 큐텐·티몬·위메프 등의 경영진이 지급 불능 상태를 언제부터, 어디까지 알았는지가 핵심이 될 전망이다. 이들이 판매사(입점 업체)들에게 제때 정산해주기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판매를 강행하고, 이렇게 번 돈을 대금 정산·환불 외의 다른 용도로 썼다면 사기·횡령·배임죄 등이 성립할 수 있어서다. 검찰과 경찰에는 해당 혐의로 경영진을 상대로 한 미정산 판매자들과 미환불 소비자들의 고소·고발장이 쌓이고 있다.

현재까지 큐텐 경영진의 이런 ‘방만 경영’ 정황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 2월 미국 쇼핑 플랫폼 ‘위시’를 1억7300만 달러(약 2300억원)에 인수하는 데 티메프 자금이 일부 사용됐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다만 일각에서 “위시가 2000억원대 현금을 큐텐에서 돌려받는 조건으로 인수가 체결된 것으로 사실상 공짜로 넘긴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 만큼 검찰은 위시 인수 과정에서 자금 관리 상의 횡령·배임 여부를 우선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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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텐이 올해 2월 인수한 미국 쇼핑 플랫폼 위시(Wish). 사진 위시 캡처

검찰은 또 양사가 정산 지연 사태 발발 직전인 지난 6~7월 대규모 현금 이벤트와 같은 판촉 행사를 벌인 점, 이달 초부터 5월 판매분의 정산이 밀리기 시작하자 불안해하는 판매사들을 상대로 “전산상의 오류”라고 축소 해명한 점 등이 사기죄의 기망행위에 해당하는지도 살펴볼 예정이다. 앞서 피해업체들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최근 몇 달 간 15~30%에 달하는 할인 쿠폰을 붙여달라는 판촉 압박이 컸다”며 “안 하겠다고 하면 노출이 안 되고, 그러면 판매가 안 된다. 매출 부풀리기 내지는 급전 확보에 이용됐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적자기업만 헐값 인수…무리한 상장 추진 화근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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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텐의 싱가포르 소재 물류 계열사 큐익스프레스. 중앙포토

e커머스 업계는 이번 사태의 배경에 구 회장의 무리한 계열사 상장 추진이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큐텐이 싱가포르의 물류 계열사 ‘큐익스프레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몸값을 부풀리고자 지난 2년간 티몬·위메프·인터파크커머스(쇼핑·도서)·AK몰과 같은 적자 쇼핑몰을 잇달아 헐값에 인수해왔다는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상장 계획이 어그러지며 원래도 부실했던 인수 기업들의 재무상태가 연쇄적으로 악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큐텐은 지난해 4월 티몬의 조직 개편을 통해 기술본부를 큐텐으로 통합하고 두 달 뒤엔 개발·재무 기능을 흡수했다. 큐텐의 티몬 인수 시점은 2022년 9월로 알려져있지만, 기존 주주들의 반대를 해결한 뒤 실질적으로 인수가 완료된 시점은 지난해 3월 30일이다. 인수 직후 조직 개편이 이뤄진 셈이다. 같은 해 4월 큐텐의 인수가 발표된 위메프의 경우 별도 조직 개편 공지 없이 인수 직후 개발과 재무 부문을 흡수 통합했다. 이후 티몬과 위메프는 영업·마케팅 부문만 제 기능을 수행하며 판매 목표량을 채우는 데 급급한 기형적인 운영구조를 띠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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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수사 확대될까…업계 “기존 주주도 일부 책임져야”

수사 대상이 확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상품권 돌려막기 등을 주도했던 것은 구 회장이 아닌 유동성 위기를 사전에 알아차렸던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 컨소시엄 등 기존 주주들”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큐텐이 티메프를 인수한 것은 1~2년 전이다. 그러나 금감원 공시에 따르면 양사가 자본잠식에 빠진 것은 2010년대부터다. 티몬은 마지막으로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2022년 말 기준 자본총계 -6386억원, 위메프는 지난해 말 기준 자본총계 -2398억원으로 둘 다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다.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들은 양사에 ‘존속 능력이 불확실하다’는 의견을 냈다.

티메프 사정을 잘 아는 IB업계 관계자는 “2015년 티몬을 인수한 사모펀드 KKR-앵커PE 등에 의해 거래 대금을 늘리기 위한 과도한 할인 판매 구조가 자리 잡으며 자본잠식 상태에서도 경영이 유지되고 적자가 누적돼왔다”며 “구 회장은 일종의 폭탄을 넘겨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주주들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단 취지다. 이와 관련 KKR 측은 중앙일보에 “저희와 상관없는 부분으로 별도의 대응 계획이 없다”고 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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