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접받던 울산동백 추락…이름표 떼이고, 진달래에 자리 밀려

본문

17223877771574.jpg

울산 중구의 새 구화로 정해진 진달래. 사진 울산 중구

한·일간 근거 없는 역사적 논쟁으로 결론 난 울산의 오색팔중(五色八重) '동백나무'가 8년을 지킨 구화(區花) 자리마저 잃게 됐다. 앞서 울산시는 시청 앞마당에 심어 자랑하던 수령 41살 동백나무의 이름표(울산동백)를 떼고 안내판까지 다 뽑아버렸다.

울산동백은 1590년대 일본 장수가 아름다움에 반해 울산에 있던 동백나무를 일본으로 가져갔고, 이후 400년 만에 후손 동백나무를 국내로 다시 들여와 시청 마당에 심었다는 한·일 기원설에 따라 구화로 쓰이는 등 울산의 자랑으로 여겨져 왔다.

관련기사

  • 임진왜란때 가져간 '오색팔중'이라더니…울산동백 지위박탈, 무슨 일

  • 한·일 400년 사연 간직한 '오색팔중'은 진위 논란중, 무슨일?

  • 한·일역사 400년 증인, 울산시청 희귀 동백나무

  • 30년 전 日서 韓 돌아온 '오색팔중'...기시다 방문 앞두고 주목, 왜

울산 중구는 "울산동백 기원설이 역사적 사료, 학문적 근거가 없는 이야기로 울산역사연구소가 확인한 만큼 공식적으로 구화 지위를 박탈하고 대신 '진달래'를 쓰기로 했다"고 31일 밝혔다. 이에 따라 중구는 진달래를 새 구화로 확정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오는 9월까지 상징물 관리 조례 관련 절차가 끝나면 진달래가 중구의 최종 구화로 공표된다. 지자체 홍보나 서류 등 각종 자료에도 기존 동백나무 대신 진달래로 모두 바뀐다.

17223877773118.jpg

울산시청 마당에 있던 울산동백. 현재는 울산동백 이란 이름표를 치운 상태다. 중앙포토 사진 울산시

중구 관계자는 "주민들이 추천한 46종의 꽃 가운데 개나리·작약·진달래 3종으로 후보를 압축해 설문을 벌여 진달래로 결정한 것"이라며 "진달래는 생명력이 강하고 일상 속에서 쉽게 볼 수 있어 친숙한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울산동백의 지위는 지난해 기원설 진위 논란에 휩싸이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시 사단법인 한국습지환경보전연합 정우규 박사는 한 언론 기고문에서 "(울산시가) 동백나무에 대해 제대로 고증하지 않고 홍보에만 신경 쓰다 보니 엉터리 정보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일대사관 문화교육 담당 영사와 전 주일 교육관 등의 협조를 받아 조사했지만, 울산시청 앞마당에 심은 동백나무와 일본의 오색팔중산춘은 나무 형태, 잎 모양, 꽃피는 시기 등이 모두 달라 같은 나무로 볼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 문화해설사 역시 비슷한 시기 울산지역 언론사에 제보하면서 "교토 역사자료관에 '울산동백설화 근거나 사료(史料)가 있는지'를 물었는데 교토 측이 서면을 통해 근거가 되는 사료나 자료집 등은 공식 발간한 적 없어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혀왔다"고 전했다.

17223877774649.jpg

울산시청 마당에 있는 오색팔중, 울산동백으로도 불린다. 사진 울산시

그동안 울산동백은 임진왜란 당시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울산학성에서 처음 발견했다고 전해졌다. 이 동백을 일본으로 가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바쳤고, 히데요시는 자신과 인연이 있던 교토의 사찰(지장원·地蔵院)에 이를 기증했다고 알려졌다.

이후 1989년 한국예총 울산지부 관계자 등이 지장원에서 동백나무를 발견, 지역단체와 불교계 등이 반환 운동을 펼쳤다. 1992년 5월 후손 나무 한 그루가 한국으로 들어왔고, 그 나무가 울산시청 앞마당에 다시 심어졌다는 이야기가 울산동백 기원설의 핵심이다.

울산 중구청 인근에서 만난 회사원 이진형(36)씨는 "결국 확인 안 되는 한·일 기원설만 보고 구화로 정해 수년간 썼다는 것 아니냐"면서 "제대로 고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자체 이미지가 훼손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30,842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