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하마스 수장, 테헤란서 피살…이란 “이스라엘에 복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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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취임식 다음날인 31일 새벽 테헤란의 숙소에서 공중 유도 발사체 공습을 받아 숨졌다. 테헤란 시민들이 하니야의 사진과 팔레스타인기를 들고 테헤란대학에서 테러 규탄시위를 벌이며 행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중동에 드리운 전쟁의 그림자가 한층 짙어졌다. 이스라엘과 휴전 협상 중인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최고 정치 지도자가 이란의 대통령 취임식 다음 날인 31일 새벽 테헤란에서 암살됐다. 전날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에선 헤즈볼라의 최고위 지휘관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사망했다. 몇 시간 만에 중동의 시아파 맹주 이란이 지원하는 두 무장 정파의 주요 인사가 연달아 숨졌다.

이에 따라 일부 진척을 보였던 가자 전쟁 휴전 논의가 다시 위기를 맞고,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충돌이 본격화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지난 4월 이스라엘과 제한적인 본토 공습을 주고받은 후 정면 대결을 자제했던 이란의 향후 대응에 따라 중동 전역으로 전쟁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가 이어졌다.

하마스는 31일 정치국 최고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테헤란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살해됐다고 발표했다. 이란혁명수비대(IRGC)도 성명을 내고 하니야가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 참석 10시간 만에 그의 숙소를 표적으로 한 이스라엘의 급습을 받아 경호원 한 명과 함께 살해됐다고 밝혔다.

이란 국영 매체들에 따르면 테헤란 북부의 재향군인 거주지에 머물고 있던 하니야가 이날 오전 2시 이란 국외에서 발사된 ‘공중 유도 발사체’의 공격을 받았다. 이란 당국은 발사체가 발사된 위치를 조사 중이다. 하마스와 이란의 발표대로 이스라엘의 소행이 맞다면 이스라엘의 이란 본토 직접 공격은 지난 4월 19일 이후 103일 만이다. 앞서 이스라엘은 지난달 27일 있었던 골란고원 축구장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달 30일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남부를 공습해 헤즈볼라 최고위 지휘관인 푸아드 슈크르를 제거했다고 밝혔다.

이란 지원 무장정파 지도자 잇단 피살…중동 확전 먹구름

슈크르는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오른팔’로 불리는 인물로, 가자 전쟁 발발 다음 날인 지난해 10월 8일부터 이스라엘에 대한 헤즈볼라 공격을 지휘해 왔다. 다만 헤즈볼라는 슈크르의 생사 여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마스 지도자, 헤즈볼라 최고위 지휘관의 잇따른 죽음은 이란이 대통령 취임식을 계기로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세력과의 연대를 과시하는 날에 발생했다. 하니야는 가자전쟁 휴전협상 과정에서 하마스를 대표해 협상장에 나섰던 인물이다. 이란 대통령 취임식엔 하니야 외에도 헤즈볼라 2인자 셰이크 나임 카셈,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이슬라믹 지하드(PIJ) 지도자 지야드 알나카라, 예멘 후티반군 대변인 무함마드 압둘살람 등 이른바 ‘저항의 축’ 지도자들도 참석했다.

이들은 취임식에 앞서 페제시키안 대통령,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면담했다. 특히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하니야는 포옹 후 함께 손을 들어올리며 승리를 다짐했다.

하마스 측은 즉시 보복을 다짐했다. 하마스가 운영하는 알아크사TV에 따르면, 하마스 고위 관계자 무사 아부 마르주크는 하니야의 암살은 “처벌받지 않을 수 없는 비겁한 행위”라며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암살의 장본인으로 이스라엘을 지목했다. 그는 “범죄자이자 테러리스트인 시오니스트 정권은 가혹한 징벌을 자초했다. 복수는 우리의 의무”라며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지시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니야 사망과 관련해 논평을 거부했다. 이를 두고 AP통신은 “이스라엘은 모사드 정보기관의 암살 작전에 대해선 공식 입장을 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스라엘이 휴전협상 중 공격을 단행한 이유와 관련, “만약 협상에 방점을 둔다면 지금 이런 식으로 이란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있는 지도자를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네타냐후 연정이 계속 전쟁 분위기를 유지해야 되는 상황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입장에선 각국의 친이란 무장세력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란 분석도 나왔다.

가장 큰 변수는 이란의 대응 방식이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4월 이스라엘 본토 공습보다는) 높은 강도의 보복이 있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이 교수는 다만 “지금 전면전을 해서 이란은 승산이 별로 없고, 이란이 핵을 쓰는 상황은 미국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두 무장 정파 요인의 사망으로 전면전 위험이 한층 커졌다고 지적했다. 미국 조지타운대 중동학 교수인 나데르 하셰미는 BBC에 하니야의 죽음을 두고 “이 지역(중동)은 그 어느 때보다 전면전에 가까워졌다”고 전했다. 하셰미 교수는 “이제 이란은 이 갈등을 확대할 모든 명분을 쥐게 됐다”고 전했다.

한편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하니야 피살에 대한 질문에 “전쟁은 불가피하지 않다”며 “이스라엘이 공격당한다면 이스라엘 방어를 계속 돕겠지만, 우선순위는 긴장을 낮추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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