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英 흉기난동 참사에 反무슬림 시위 확산…유족 "폭력 멈춰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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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댄스교실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에 대한 영국 국민의 충격과 추모의 분위기가 가시지 않은 가운데, 범인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반(反) 무슬림 시위’가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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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지난달 31일 런던 화이트홀에서 열린 극우 시위 집회에서 시위대와 충돌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가디언·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전날 밤 영국 잉글랜드 북서부의 사우스포트의 거리에 수백명의 시위대가 쏟아져 나와 모스크(이슬람 사원)에 벽돌을 던지고 경찰관을 공격했다.

시위대는 경찰 차량은 물론, 거리에 주차된 일반 차량에 불을 지르고 상점 유리창을 깨고 물건을 약탈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폭력 사태로 경찰관 53명이 다쳤으며 골절이나 뇌진탕을 겪은 중상자도 8명 나왔다. 경찰은 이와 관련해 4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번 폭력 사태는 지난달 29일 이 지역 어린이 댄스교실에서 벌어진 흉기 난동 사건의 피해자를 위한 지역 사회 주도의 추모회가 열린 직후 일어났다. 사건 당시 댄스교실에선 여러 어린이들이 모여 춤을 배우고 있었는데, 한 남성이 칼을 들고 난입해 무차별로 흉기를 휘둘렀다. 이 사고로 6~9세 여자 어린이 3명 숨지고, 또다른 어린이 8명과 성인 2명이 크게 다쳤다.

경찰은 사건 당일 오후 칼부림 사건 용의자로 17세 소년을 체포했고, 이틀 뒤 살인 및 살인 미수 혐의로 기소했다. 미성년자에 대한 영국 법률에 따라, 경찰은 용의자가 인근 뱅크스 마을 주민이라는 사실만 알렸고 자세한 신원은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BBC는 용의자의 부모가 르완다 출신이고 용의자와 그 형은 영국 웨일스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카디프에서 태어났으며, 가족이 2013년 뱅크스 마을로 이사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이후 X(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선 용의자의 실명과 사진, 가족 관계 등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엄청난 속도로 확산됐다. 범인의 사진이라고 퍼진 사진은 대부분 피부색이 어두운 아프리카계 또는 아랍계로 추정되는 남성 사진으로, 몇몇 소셜미디어에는 울면서 도망치는 백인 어린이의 뒤로 무슬림이 흉기를 들고 쫓아오는 사진까지 등장했다. 또 이들이 이민자 신분으로 영국에 불법으로 들어왔다는 주장이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반 이민 정서’에 불을 붙였다.

경찰은 이번 폭력 사태의 배후에 극우 단체 ‘영국수호리그(EDL)’가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가디언은 일부 시위자가 “토미 로빈슨”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토미 로빈슨은 ELD를 공동 설립한 영국의 반 이슬람 활동가다. 경찰은 소셜미디어에 떠도는 용의자에 대한 정보가 사실과 다르다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과도한 억측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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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런던 중심부 다우닝 가 10번지 입구 밖에서 열린 화이트홀에서 열린 시위에서 한 시위자가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적힌 배너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하지만 극우 성향의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는 지난달 30일 X에 “경찰은 테러 사건은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단지 진실이 우리에게 막혀 있는지 궁금하다”는 글을 게재하며 사실상 극우 시위대를 옹호했다.

英 총리 "추모회를 폭력으로 모욕하지 말라"

현재 사우스포트 마을은 반 무슬림 시위대로 인한 난동으로 불에 타고 남은 검은 재와 쓰레기, 돌멩이가 뒤엉켜 바닥에 뒹굴고 있는 상황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엉망진창이 된 현장은 지역사회 단체와 마을 주민들이 치우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숨진 7살 소녀 엘시 닷 스탠콤의 어머니인 제니 스탠콤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폭력을 제발 멈춰달라”며 “경찰은 지난 24시간 동안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고 경찰과 유가족들은 이런 일을 겪을 필요가 없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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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사우스포트의 댄스교실에서 벌어진 흉기 난동 사고로 희생된 어린이. 엘시 닷 스탠콤(7), 베베 킹(6), 앨리스 다실바 이구아르(9). 로이터=연합뉴스

사우스포트 지역구 의원인 패트릭 헐리도 “(시위대는) 사망하고 다친 아이들의 가족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며 “그저 술에 취한 깡패”라고 지적했다. 이어 “17세 소년이 무슬림으로 밝혀지더라도 이같은 공격과 폭력 행위는 정당화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X에 “사우스포트 주민들은 우리의 지원과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며 “희생자를 위한 추모회를 폭력으로 강탈한 자들이 슬픔에 잠긴 지역사회를 모욕했다”고 폭력 시위대를 비판했다. 이어 “이들은 법의 완전한 힘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강경 대응을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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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영국 북서부 사우스포트의 흉기난동 참사로 희생당한 어린이들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꽃과 장난감. AFP=연합뉴스

극우 시위대는 31일 저녁엔 총리 관저가 있는 다우닝가 바깥쪽에서도 시위를 벌였다. 런던경찰청은 시위대에 다우닝가 입구의 특정 장소에서 벗어나선 안 되며 오후 8시30분까지 해산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지만 시위대는 빈 캔과 유리병을 던지며 경찰과 충돌했다. 이들은 “우리 아이들을 구하라” “토미 로빈슨”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가두 행진을 벌였다고 텔레그래프 등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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