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낙태권·다양성 vs 이민·경제…해리스·트럼프 결국 ‘악마만들기’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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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2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됨에 따라 오는 11월 치러질 미 대선의 대진표가 공식 확정됐다. 맞대결을 펼치게 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은 나이·인종·성별·경력·이념·정책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서 있다. 때문에 향후 두 후보의 대결이 치열한 ‘문화전쟁(Culture war)’의 모습을 띨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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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AP=연합뉴스

미국 사회의 양극화가 극심한 가운데, 상극인 두 후보는 낙태·국경 정책·인종 등 주요 이슈에서 날을 세우고, 범죄자 프레임·색깔론 등으로 상대방 비난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엔 무당파, 부동층을 설득해 표를 더 얻는 대신 상대방을 '더 악마화'해 지지층을 결집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이 깔렸다.

낙태 vs 이민…집토끼 흥분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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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생식의 자유(Reproductive Freedom)' 구호와 함께 플로리다주의 낙태금지법 시행에 반대하는 내용의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두 후보는 자신이 유리한 이슈에 집중하고 있다. 해리스는 낙태권 이슈를 통해 반(反) 트럼프 전선 구축에 나섰다. 지난달 29일 아이오와주가 임신 6주 이후 낙태를 금지하는 법을 시행하자 해리스는 “이 법은 트럼프 낙태금지법”이라고 부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투표”라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대통령 시절 임명한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으로 인해 2022년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보편적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했다는 점을 부각하며 여성 유권자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낙태 이슈를 트럼프·공화당이 함부로 비판할 수 없다는 점도 노렸다. 미국 내 낙태권 옹호 여론이 금지 여론보다 우세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월스트리트저널과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 조사에서 응답자 약 55%가 임신한 여성이 원할 경우 합법적으로 낙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AFP통신은 “낙태권 이슈가 부각되면 트럼프가 온건·중도 성향 유권자들과 멀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초강경 우파 공약을 쏟아내는 트럼프도 낙태 이슈만큼은 ‘로우 키’를 유지한다. 전국 단위의 낙태 금지를 주장하는 대신, 연방대법원 판단의 취지에 맞게 각 주가 알아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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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에서 열린 유세현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대신 트럼프는 “해리스는 실패한 국경 차르(Border czar)”라고 부르며 불법 이민 문제의 책임이 해리스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리스가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민 문제 해결을 위해 중남미 국가와의 외교 업무를 맡아왔지만, 유화적인 정책으로 미국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주장이다.

트럼프는 “바이든보다 훨씬 더 나쁘고, 더 자유주의적인 해리스가 4년 더 집권하면 미국인들은 이민 범죄로 대규모로 살해될 것”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트럼프 측은 지난달 30일 공개한 광고에서 1000만명 이상의 불법 월경 및 범죄 증가, 남부 국경을 통한 펜타닐 유입 등의 사례를 열거한 뒤 해리스가 ‘약하고 실패했으며 위험하게 진보적’이라고 비판했다.

다인종 정체성 vs 백인 결집

해리스는 자메이카인 아버지와 인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인종 미국인이다. 해리스 측은 인종적 다양성이 젊은 유권자와 유색인종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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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유세 현장에서 트럼프 캠프 측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미국 최초의 인도계 상원의원에 당선됐다는 옛 기사 제목이 담긴 포스터를 보여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는 이를 역으로 공략 중이다. 그는 지난달 31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전미흑인언론인협회(NABJ) 초청 토론에서 “항상 인도계였던 해리스가 갑자기 흑인으로 돌아선 문제에 대해 누군가는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소셜미디어엔 “미친(crazy) 해리스는 인종적 정체성 등을 이용하는 완전한 사기꾼”이라고 공세를 높였다.

트럼프의 막말은 백인·남성·블루칼라로 상징되는 핵심 지지층인 ‘성난 백인’ 표심을 자극하는 전략일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캠프로선 인종 이슈를 강조할수록 다양한 의제에 관심이 분산됐던 (백인) 유권자들을 하나로 결집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트럼프 측은 바이든 정부의 일원으로 인플레이션 등 경제 실정에 대해 해리스가 연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의 이런 공격이 역풍을 불러올 거란 시각도 있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추가로 트럼프가 결집할 '성난 백인' 표는 거의 없다”며 “트럼프의 인종 관련 발언은 오히려 선거에 무관심했던 유색인종의 참여를 이끄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나쁜놈, 더 나쁜놈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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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유세현장에서 한 지지자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 란 문구가 적힌 모자를 쓰고 있다. AFP=연합뉴스

두 후보의 팽팽한 대결은 양극화된 미국 정치 상황에서 예견됐던 일이란 분석이 나온다. 각종 사회 문화 현상에서 진영 간 입장차가 뚜렷하기에 민주·공화 간에 큰 폭의 지지율 등락이 있기 어려워서다. 서정건 교수는 “사실 트럼프 암살 미수 사건은 공화당원만 흥분했을 뿐 지지율 상승에 큰 파급력이 없었다”며 “오히려 민주당의 위기의식 고조로 바이든이 사퇴하고 해리스가 등장하며 반트럼프 전선 회복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건 결국 상대방을 ‘더 나쁜 놈’으로 만들어 ‘내 편’을 투표소로 더 많이 이끄는 것이다. 해리스가 지난달 30일 첫 대선 광고에서 자신을 ‘겁 없는 검사’로 내세우며 트럼프의 ‘중범죄자’ 이미지와 대비시키고, 트럼프가 “해리스는 나라를 망칠 급진좌파 미치광이”라고 색깔론을 제기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서정건 교수는 “현재로썬 무당층 유권자 확보보다 각자 지지층을 투표소로 끌어내는 능력에서 승패가 결정될 것”이라며 “두 후보는 상대방 후보의 이미지를 더 나쁘게 보이게 하면서 자신의 선거전략에 부응하는 지지자를 끌어모으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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