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가 움직이자 1·2인자 만났다, 14년만에 또 與분열 막은 정진석 [who&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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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등 인사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초반 2년을 혹평하는 인사들은 “정치는 없고 통치만 있었다”는 표현을 쓰곤 했다. 정치적 유연성 대신 법적 타당성을 고려해 국정운영을 해나가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정을 이끄는 윤 대통령이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2년 동안 회담하지 않았던 걸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그랬던 윤 대통령이 4·10 총선 패배 이후 “이제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한 뒤 중용한 인물이 정진석 비서실장이다. 경제 관료 출신 김대기·이관섭 전 비서실장과 달리 5선 국회의원 출신인 그를 두고 ‘정무형 비서실장’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런 정 실장의 진가는 지난달 30일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90분 회동에서 드러났다. 총선과 7·23 전당대회를 거치며 윤·한 갈등이 증폭됐다는 징후가 커지던 차에 지난달 24일 대규모 만찬 행사에 이어 정 실장이 배석한 3인 회동까지 조기에 성사되며 당정 분열의 우려를 불식시킨 것이다. 회동 이틀 만에 친윤계 정점식 전 정책위의장이 스스로 물러나며 친윤계와 친한계의 감정 소모전도 소강 상태를 맞게 됐다.

한 대표와 물밑 조율을 거쳐 회동을 성사시킨 정 실장이 여권 분열의 급한 불을 끈 건 처음이 아니다. 과거 정 실장은 3선 의원 시절이던 2010년 7월 금배지를 떼고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정무수석으로 긴급 투입됐다. 이명박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던 세종시 수정안이 당시 국회의원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반대로 본회의에서 최종 무산된 뒤 후폭풍으로 청와대 개편과 개각이 이어졌던 때다. 박 전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올라 직접 반대 토론을 하자 친이계는 “항복하는 사람 등에 칼을 꽂았다”고 하는 등 친이·친박의 갈등이 극에 달했었다. 분당의 우려마저 나오던 상황에서 정 실장은 부임 한 달여 만에 이·박 회동을 성사시켰고, 분열하지 않은 당시 여권은 2012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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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4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4년 전의 상황을 기억해서인지 정 실장은 전당대회 과정에서 대통령실 참모진에게 “당정 갈등이 생기면 대통령실도 감당이 안 된다”며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특히 ‘wait and see(기다리고 지켜본다)’ 기조를 강조하며 대통령실이 전당대회에 개입한다는 오해를 사전에 차단했다.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읽고 무시)’ 논란이 불거지는 등 자칫 당무 개입 논란이 번질 수 있었지만, 정 실장의 군기반장 역할이 불필요한 오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평가다. 정 실장은 4월 24일 부임 첫날에도 “대통령실은 일하는 조직이지, 말하는 조직이 아니다”며 ‘원 보이스’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일각에선 정 실장이 윤·한 사이의 가교가 될 수 있었던 건 윤 대통령과의 소통이 원활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 실장은 수시로 통화할 뿐 아니라 주말에도 관저로 가서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한다”고 귀띔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체코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난달 17일 밤에도 정 실장은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윤 대통령과 함께 보고를 받으며 기쁨을 나눴다. 한 참모는 “윤 대통령이 다른 사람보다 정 실장의 조언을 경청하는 거 같았다”고 전했다.

언론인 출신으로 국회 부의장과 당 비대위원장·원내대표 등을 맡았던 정 실장은 현안 파악도 빠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수석급 참모와 함께 평일 아침 티타임을 할 때면 주요 현안에 관해 깊게 파고들고 담당 수석의 입장까지 들은 뒤 그 자리에서 해당 현안에 대한 대통령실의 공식 입장을 정리한다고 한다. 대통령실 실무 인사는 “정치인 출신 비서실장이 오니까 일하는 사람 입장에선 업무가 수월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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