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시골길 5분 달리려 수십억 썼다…'제네시스 마그마' 속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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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보다 마니아 잡아라…모터쇼 새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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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웨스트서식스 치체스터는 뒤에 붙은 ‘체스터(chester)’에서 과거 로마군 주둔지였다는 점만 짐작할 뿐 특별할 것이 없는 동네다. 그러나 해마다 7월이 되면 이곳의 거리는 런던의 최고 부촌 못지않은 모습으로 변한다. 지난달 11일(현지시간) 치체스터를 찾았을 때 거리엔 영국 명차 롤스로이스, 벤틀리, 애스턴마틴을 비롯해 수퍼카 페라리, 포르쉐, 람보르기니 등이 수시로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열린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에 참가하려는 차량들이었다. 굿우드 페스티벌은 자신의 차량을 전시할 수 있고 직접 레이싱 트랙 위로 몰아볼 수도 있는 모터쇼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들의 눈에 들기 위해 부스를 열고 신차를 공개한다. 현대자동차의 독립 브랜드 제네시스도 고성능 라인업인 ‘GV60 마그마 콘셉트’와 ‘G80 전동화 마그마 콘셉트’의 실주행을 이곳에서 처음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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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1일(현지시간) 영국 웨스트서식스 치체스터에서 열린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에서 제네시스 GV60 마그마 콘셉트, G80 전동화 마그마 콘셉트 등이 힐클 라임 트랙을 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마그마 콘셉트 모델은 굿우드 페스티벌의 1.86㎞ 힐클라임 코스를 다른 차량 없이 5분간 독점하며 달렸다. 현장에서 수천 명이 지켜봤고, 유튜브 실시간 방송으로는 1만6000여 명이 보고 있었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에게 물었다. “이 5분을 위해 주최 측에 지불하는 비용이 얼마나 됩니까?” 그는 “마그마를 전시할 부스를 짓는 비용만 해도 10억원이 훨씬 넘어요. 그러면 참가비와 코스 독점 주행 비용은 대략 짐작할 수 있겠죠?”라고 답했다.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지만, 최소 수십억 원은 든다는 뜻이었다.

최근 자동차 기업들이 전통적인 국제 모터쇼 참가는 ‘패싱’하고 있다. 대신 대중에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굿우드 페스티벌 같은 행사에서 부스를 연다. 모터쇼 트렌드는 왜 이렇게 달라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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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클라임 트랙 주행을 준비하는 레이싱 차량을 보기 위해 모여든 관람객들. 윤성민 기자

◆“5대 모터쇼? 굳이 그 돈을 내고?”=과거 모터쇼는 자동차 기업들이 신차를 공개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무대였다. 2000년대에는 신차 발표뿐 아니라 ‘콘셉트카’ 공개경쟁까지 벌어지면서 모터쇼는 한층 더 치열한 경연장이 됐다. 자동차 기업들은 모터쇼에 자신의 차량을 전시하기 위해 줄을 섰다.

하지만 격세지감이다. 스위스 제네바 국제모터쇼는 지난 5월 “산업 변화로 중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119년 역사의, 세계 5대 모터쇼로 불리던 행사였다. 한 외신은 제네바 모터쇼 중단 선언을 ‘한 시대의 끝(The end of an era)’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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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예견된 종언이었다. 호황기 때 제네바 모터쇼엔 120여 개 자동차 제조사·부품사가 참여했고 방문객은 75만 명(2005년)에 육박했다. 그러나 올 2월 열린 행사에 참여한 완성차 업체는 6개에 불과했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모두 참가하지 않았다. 방문객은 16만8000여 명이었다.

나머지 빅4 모터쇼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미국 디트로이트 오토쇼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기간(1월)을 피해 개최 시기를 6월로 옮기기도 했다. 내년부터 다시 1월로 돌아온다. 프랑스 파리 모터쇼는 행사 기간과 전시 면적을 대폭 줄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IAA 모빌리티)와 일본 도쿄 모터쇼(재팬 모빌리티 쇼)도 참가 기업 수가 줄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내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5대 모터쇼에 참가하려면 한 번에 최소 몇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을 지출해야 하는데, 그에 비해 홍보 효과가 크지 않다 보니 ‘굳이 그 돈 내고 갈 만한가’ 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자동차에서 모빌리티로=모터쇼 인기 감소엔 코로나19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모터쇼를 개최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한다고 해도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제때 자동차를 만들어낼 수 없던 회사들로서는 홍보에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본질적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산업의 중심이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차를 비롯해 자율주행차·도심항공교통(UAM) 등 다양한 탈것(모빌리티)으로 확장되고 있는 영향이 컸다.

SNS·영상이 바꾼 ‘차 홍보’…“그돈 내고 5대 모터쇼 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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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우드 페스티벌에서 관람객들이 인도 출신 유명 레이싱 드라이버 카룬 찬독(왼쪽 두 번째)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윤성민 기자

사실 코로나19 이전부터 변화는 시작됐다. 2010년대 중반부터 1월이면 자동차 기업들은 모터쇼가 열리는 디트로이트가 아니라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다. 첨단 기술의 향연이 펼쳐지는 CES에 가기 위해서다. 지난 1월 열린 CES에 참가한 모빌리티 기업 수는 714개에 달했다. 지난해(300여개)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현대차만 해도 계열사 ‘포티투닷’과 함께 소프트웨어기반차량(SDV)을 중심으로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전기차, 인포테인먼트 신기술을 선보였다. ‘자동차’에서 ‘모빌리티’로 전환하는 흐름의 영향으로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IAA 모빌리티로, 도쿄 모터쇼는 재팬 모빌리티 쇼로 이름까지 바꿨다.

영국 자동차 전문지 ‘오토카’는 지난달 ‘누가 제네바 모터쇼를 죽였느냐’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오토카는 제네바 모터쇼 중단 결정의 이유 중 하나를 “소셜미디어와 영상으로 소비자를 직접 겨냥할 수 있는 시대에 제조업체들은 더 이상 모터쇼가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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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떠오르는 로컬 모터쇼, 대중보다는 마니아=그렇다고 자동차 회사들이 모터쇼 참가를 다 줄인 건 아니다. 5대 모터쇼 아닌 다른 곳으로 갈 뿐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모터쇼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고 있는 건 아니고,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국제’라고 붙어 있지만 사실상 로컬(지역) 모터쇼로 보던 행사들이 있었다. 가령 인도 델리 모터쇼나 인도네시아 국제오토쇼가 그렇다. 과거에는 그런 모터쇼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현지 판촉 차원에서 나가고 있다. 국제 모터쇼를 통해 전 세계에 신차를 알리는 방식에서 로컬 모터쇼를 통해 그곳의 시장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신 ‘로컬 모터쇼’엔 공들여…중국·동남아 등 시장별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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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024 베이징 국제 모터쇼(Auto China 2024)’에 참가한 현대차 전시관의 모습. [연합뉴스]

사실상 로컬 모터쇼였지만 이젠 5대 국제 모터쇼 이상의 위상을 가진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오토차이나 모터쇼다. 오토차이나는 1990년 출범해 1년에 한 차례씩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번갈아 개최된다. 지난 4월 25일~5월 4일 베이징 국제전람센터에서 열린 오토차이나에는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대부분 참여했다. 5대 모터쇼는 ‘패싱’ 했던 이들이 오토차이나 출석 도장은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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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국내 자동차 기업들이 중국만큼 눈독을 들이는 시장이 동남아다. 성장세가 빠르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아세안 지역 내에서 자동차 시장 규모가 가장 큰 인도네시아에 배터리부터 전기차 완성차까지 현지에서 일괄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면서 동남아 최대 모터쇼인 인도네시아 국제오토쇼(GIIAS)에도 참가한다.

자동차 기업들은 또 대중적인 모터쇼보다는 자동차 마니아를 대상으로 한 모터쇼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영국 시골서 열리는 굿우드 등…‘차 마니아 페스티벌’도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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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굿우드 페스티벌과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콩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 등이 대표적이다. 기존 모터쇼에선 자동차 제조사들이 일방적으로 신차를 소개하는 ‘쇼’를 했다면, 마니아들이 모이는 행사는 관람객들이 함께 다양한 이벤트에 참여하고 체험해 볼 수 있는 ‘페스티벌’로 운영된다. 올해 굿우드 페스티벌엔 약 20만 명이 참가한 것으로 주최 측은 추산했다.

이에 자동차 기업들도 소비자에게 색다른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개성 있는 행사를 더 중요시하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1974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했던 콘셉트카 ‘포니 쿠페’의 정신을 계승한 고성능차 ‘N 비전 74’를 지난해 콩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에서 공개했다. 굿우드 페스티벌에선 지난해 ‘아이오닉5 N’을, 올해는 마그마를 공개했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는 ‘기업’입니다. 기업은 시장과 정부의 한계에 도전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인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왔습니다. ‘기업’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더중플이 더 깊게 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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