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無에어컨 도시' 태백도 열받았다..."고랭지…

본문

17228028172095.jpg

폭염특보가 발효된1일 태백시 매봉산의 고랭지배추단지. 폭염에 망가진 배추들이 노랗게 죽어 있었다. 태백=정은혜 기자

고랭지배추단지로 유명한 태백시 농민들은 최근 ‘열 받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서늘한 이곳에도 폭염이 닥쳐 배추들이 곳곳에서 노랗게 말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해발고도 1200m가 넘는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인근의 40만평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고랭지 배추밭의 농민들은 8월 출하기를 앞두고 근심이 가득했다. 현장에서 만난 이정만(58)씨는 “겉으로 보면 멀쩡해 보이는 것도 지금 다 썩고 있는 상태”라며 “기후변화로 매해 출하량이 줄어 작년에는 30%에 불과했고 올해는 더 부족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고랭지까지 침투한 폭염…배추 농사 포기하는 농민들

기상청은 지난 1일 태백시에 폭염주의보를 발표했다. 전날까지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폭염특보가 발효되지 않았던 태백시도 한낮 기온이 33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매봉산 경작지도 고랭지의 이점이 사라지고 있다. 올해 40만평 중 30%가량이 휴경에 들어갔다고 한다.

기록적 더위에 “배추 절반 망가져”

17228028173477.jpg

김주원 기자

올여름 태백시는 1985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지 40년 만에 가장 높은 7월 기온(23.9도)을 기록했다. 35년째 고랭지 배추 농사를 지었다는 이모씨는 “지금 배추 절반은 망가졌고, 폭염을 일주일만 더 맞으면 전부 버리게 될 것 같아 내일부터 조기 출하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이 배추밭에서 90%는 출하해 경매 시장에서 정상가를 받아야 생계가 유지되는데, 출하량은 점점 줄고 경매가도 내려가 너무 어렵다. 몇 년 전부터 배추 농사를 그만두기 위해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17228028174909.jpg

매봉산 고랭지배추단지에서 20년째 배추 농사를 지어온 이정만씨가 단지 내 휴경지를 바라보고 있다. 태백=정은혜 기자

농작물 자연재해 보험이 있긴 하지만, 폭염은 재해로 인정받을 수 없어서 고랭지 농업이 몇 년 내로 고사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태백시 관계자는 “폭염에 초점을 맞춘 지원책은 아직 없고, 현재 병해충 문제가 복합적으로 있는 상황이라 시에서는 방재를 돕는 측면에서 농가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無에어컨 도시?…에어컨 설비 기사 제일 바쁘다

고랭지배추와 함께 태백시에 닥쳐온 변화는 ‘에어컨’이다. ‘폭염 프리존’으로 알려져 에어컨이 필요 없다는 태백시에서 최근엔 에어컨 설비 업체가 가장 바쁜 직종이 되고 있다. 11년째 에어컨 설치업을 하는 이영애(51)씨는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주말도 없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5~6년 전 태백에서 강한 폭염과 열대야가 나타나자 더위에 익숙하지 않은 태백 사람들이 깜짝 놀라 에어컨을 달기 시작했어요. 

이씨는 “에어컨 업체가 많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수요가 폭등하자 외지 업자들까지 와서 한꺼번에 에어컨을 달아놓고 갔다”며 “그런 탓에 수리 문의도 끊임없이 몰려든다”고 말했다.

17228028176281.jpg

17228028177678.jpg

31일 태백시내 한 아파트 외벽. 6년 전인 2018년 모습(사진 위)과 달리 세대별로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됐다. 태백=정은혜 기자. 카카오맵 로드뷰 챕쳐

5~6년 전만해도 오래된 아파트의 외부에 에어컨 실외기를 찾아보기 어렵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태백시 주민들도 “에어컨 없는 도시는 옛말”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내에서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장금옥(75)씨는 “태백에 30년 살았는데, 3년 전에 에어컨을 달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에어컨 실외기가 보이는 집이 거의 없었는데, 3년 전부터는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6월 폭염 이어 7월 열대야 신기록

17228028179065.jpg

김주원 기자

폭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국을 달구고 있다. 기상청의 여름철 기온 자료를 분석했더니 6월 폭염일수는 2.8일로 1973년 전국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았다. 7월에는 열대야 일수가 8.8일로 기존 기록을 깼다. 6월에는 가장 뜨거운 낮을 겪었고 7월에는 가장 무더운 밤을 보낸 셈이다.

40도 극한폭염 “8월 중순까지 최대 고비”

장마가 공식 종료된 8월부터는 열기가 더 강해지면서 폭염 피해도 커지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2일까지 폭염으로 인해 8명이 사망하는 등 1390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20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더위를 견디지 못해 폐사하기도 했다.

폭염과 습한 날씨로 인해 이번 주 전력 수요가 올여름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기상업체인 케이웨더 이재정 예보팀장은 “8월 중순까지가 폭염의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31,784 건 - 1 페이지